*** 잔다르크 생활 캠프
금요일, 이슬람의 일요일엔 노동자와 협력업체 관리자가 있는 2 캠프 사람들이 노래방과 만화방, 당구장 등의 위락 시설이 있는 1 캠프로 내려왔다. 2 캠프는 한국인들 외에도 베트남, 필리핀, 방글라데시, 태국 등의 넘쳐나는 노동자들로 인해 화장실이 막혀 못쓸 정도였다. 아침 식사 때마다 식판이 날아다녔고 죄 없는 여직원들이 노동자들로부터 온갖 욕을 얻어먹었다. 부실한 식사 때문이었는데 주문한 식량 컨테이너가 통관이 되지 않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상한 음식을 먹어 거의 식중독에 걸렸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죄 없는 직원들을 상대로 욕지거리를 하던 사람들이 정작 관리자들에게는 아무 말도 못 했다.
1 캠프에서는 같은 식사인데도 사람들이 얌전해서 노동자들의 무지막지한 불만족한 행위와 차이가 났다.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상황 설명에도 막무가내였다. 그저 먹을 게 있는 것만도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욕하는 가운데서도 불만이 없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설사에 걸렸다. 캠프가 비상이 걸렸다. 어떻게 그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음식이 괜찮아졌다.
캠프 간엔 걸어서 10여분 걸렸다. 캠프 주위엔 노동자들을 노리는 강도가 많았다.
캠프를 오가는 도로에 알제리 강도가 나타나 노동자를 칼로 위협하거나 공격하고 금품 갈취가 잦았다. 버스를 운용하기도 했고 민병대의 호위를 받기도 했으나 하루 종일 경비를 설 수 없었으므로 강도 사건은 계속 일어났다. 한두 명이 다니면 내리막길 인적이 없는 숲에서 갑자기 나타나 공격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양이었다.
어느 일요일, 두 명의 동료와 함께 2 캠프를 나섰다. 10세 정도의 애들도 ‘어이, 중국인, 먹을 것 좀 줘’하면서 다가왔다. 꼬마들이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언제든지 공격할 준비가 된 것처럼 위험천만하게 자극했다. 꼬마들은 모든 노동자들이 프랑스 말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과 혐오스러운 말들을 쏟아냈다.
“알리바바 짱깨 새끼들아, 빨리 너네 나라로 꺼져버려! 눈 찢어진 도둑놈들아 우리나라에서 도둑질 그만하고 먹은 거 다 토해내! 더러운 짱개들아!”
그 말을 듣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호통을 쳤지만 오히려 더 분노를 자극하며 접근할 뿐,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상대로 폭력을 쓸 수도 없고 좋게 타일러도 물러나지 않았다. 모른 체 계속 걸어도 끝까지 따라붙어 혐오스러운 말들을 계속 쏟아냈다.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다. 1 캠프로 내려가는 삼거리에 다다랐을 때, 꼬마의 손을 낚아채고 지나가는 어른들을 붙잡고 이 꼬마들이 하는 얘기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얘기를 들은 주변 남자들은 아이를 나무랄 생각도 없이, 오히려 내게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의도가 나쁘다고 언쟁이 붙었다.
“너희들은 자랑스러운 알라의 무슬림이다. 그럼에도 이런 혐오스러운 인종차별 발언을 아이들이 말하는데도 제지와 충고는커녕, 오히려 알제리 정부와 쏘나트락으로부터 초대받은 한국인들에게 비인간적인 짓을 서슴지 않고 있으니 무슬림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라!”
분노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고 그들과의 일전도 불사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불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듯, 결국 사과하고 물러났다. 꼬마들 때문에 기분을 상할 대로 상했지만 1 캠프의 안락한 분위기를 즐기며 이발과 매점에서 음식을 사서 혼자 2 캠프로 돌아가기 위해 언덕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꽤 가파른 경사길 중간엔 과연 사람들도 없이 풀숲이 높게 자라 있었는데, 거기서 두 명이 나타나 내게로 다가왔다. 앞에도 한 놈이 내려오고 있었고 뒤를 돌아보니 한 놈이 따라붙었다. 길가엔 꽤 넓은 콘크리트 배수로가 있었다.
뒤를 따라오던 놈의 눈과 마주쳐도 한동안 바라보았다. 앞에 나타난 두 놈은 들고 있던 식량 보따리를 만지자 밀어내고 싸울 준비를 했다. 생긴 것뿐만 아니라, 언행은 물론, 옷차림에서도 혐오스러운 북아프리카 인들은 수도 없이 봐왔고 문제를 만들어왔던 터였다. 그런 놈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난 외인부대원이다. 오늘 네놈들을 죽여주겠다”
앞에 있던 놈의 턱을 가격하자 고목처럼 쓰러지고 옆에 있던 놈을 배수로에 쳐 박았다. 순식간에 두 놈이 쓰러지자 나머지 두 놈이 줄행랑을 놓았다. 주먹에 쓰러진 놈을 배수로에 쳐 박고 유유히 길을 걸어 올랐다. 다시 코너를 돌아 2 캠프로 가는 길에 아침에 보았던 꼬맹이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2 캠프에서 1 캠프로 내려가는 길. 이 거리엔 한인들을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강도가 많았다.
대책을 마련해도 강도는 계속 생겼다. 캠프 내의 도난사건은 그저 일상이었다. 경비를 서는 놈들이 마약을 하고 한국인들에게 총을 겨누기도 했다. 말로만 들었지 눈앞에서 목격하니 눈 앞이 깜깜했다. 3조짜리 알제리 최대 공사였다. 필리핀, 베트남, 태국, 방글라데시, 중국, 심지어 키르키스탄에서도 온 사람들이 2 캠프의 주를 이루었다. 태국 애들과 베트남 애들의 패싸움 얘기라던가 현지 여자를 건드린 중국 애들을 알제리 애들이 죽였다는 얘기는 그저 흥미진진한 소문들이었다.
가만 보니 알제리인들은 한국인들을 도둑을 일컫는 알리바바라고 불렀다.
아마도, 알제리 땅에 들어와 돈을 벌어 간다고 그러는 모양인지 현장의 알제리 인들의 생각도 같았다. 오로지 일만 하는 사람들이 주변의 인식 따윈 필요 없다는 뜻인지 노동의 세상과 저잣거리 세상이 달랐다. 상호 간의 문화교류나 인식의 전환을 위한 지역사회 공동체와의 홍보가 전혀 없었다. 시내에 나가면 중국인이라 불렀다. 중국 인사인 '니 하오'로 부르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그들의 '니 하오'는 인사가 아니라 의도적인 모욕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화가 났다.
심지어 옆에 지나가면서 혼자 아랍어로 중얼거렸다. 욕을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냐옹'이라고 명백한 모욕을 하며 지나가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나는 멱살을 잡거나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불같이 화를 냈다. 그것이 알라를 믿는 젊은 무슬림들의 가여운 의식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모스크를 통한 홍보나 관공서를 통한 한국인 프로젝트로 다양한 국가 사람들이 알제리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홍보는 최소한의 인식 변화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