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 싸움짱
*** 한국인 작업자들
박 과장이 4명의 조수를 붙여 주었다.
현장과 관리 중간에서 코디네이션을 하라는 것이었다. 분야가 네 파트로 늘어났다. 업무가 많아졌지만 의외로 여유 시간이 더 많아졌다. 조수들에게 업무 지시를 하면 틀림없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네 명에 들어왔던 품질 관리 어린 여자 애는 항상 웃고만 있을 뿐, 일은 하지 않았다.
인력 관리 업무를 주자 자기 일이 아니라고 거부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본색을 드러냈다. 알제리 여자들은 잘 웃었지만 대부분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자리만 차지하는 일이 많았다. 품질 관리면 시키지 않아도 품질 관리의 일을 하면 될 것을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았다. 그녀를 돌려보내고 남자들끼리 업무를 처리해 나갔다.
하는 일은 늘어났지만 나는 현장에 있지 않고 현장과 사무실과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관리의 삼성은 웬일인지 나를 풀어주었고 나는 뜻밖의 잠재 능력을 확인했다. 그러나 새벽 별 보고 저녁 별 보는 일은 내게 맞지 않았다. 통역이 필요 없는 저녁 시간이 되면 현장 통제실에서 발주처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사무실에서 행정 업무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밤에 소장이 빨리 현장 컨트롤 룸으로 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한국인 인부들은 목수, 철근 등, 토목 관련 팀들로 이루어졌고 팀들마다 카르텔을 형성했다. 그러다가 철근팀과 시공팀이 시비가 붙었다. 엄청 싸움 잘하는 고수가 있었던 모양인지 한방에 자기보다 덩치 큰 시공팀 주먹을 제압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수선함 속에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다.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고 곧장 현장으로 이동했다.
현장엔 발주처 안전이 현장 토목 과장을 다그치고 있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싸움고수가 빠른 업무처리를 위해 작업이 금지된 곳의 작업을 위해 사전 탐색 중에 야간 당직을 서던 발주처 현장 관리자에게 걸려 쫓겨났는데 다시 되돌아 갔다가 또다시 걸렸던 것이다. 원위치로 돌아가라는 말에, 말이 통하지 않았던 싸움 고수가 열 받은 나머지 관리자를 밀쳤고 이 사태가 일어난 것이었다.
내가 들어가려 하자 과장이 고함을 치며 다가오지 말라고 큰소리로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상관하지 말라고 고함쳤다. 발주처의 현장관리자는 내가 잘 아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싸움고수가 일 욕심이 지나쳐 간섭에 열 받았으므로 잘못하면 싸움고수는 현장뿐만 아니라 알제리에서도 쫓겨날 수도 있었다. 과장이 안전관리자의 징계방안과 삼성의 대응책을 설명하고 있는 사이, 나는 다른 문을 통해 들어가 관리자를 직접 만났다.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무슈 리가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나 봅니다. 무슈 리가 모하메드 씨에게 사죄하게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공문을 작성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무슈 리가 사죄하면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이브라힘이 고민하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그와 동반해서 안전관리자에게 다가가 우리의 해결책을 제시하자 안전관리자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불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하던 김 과장은 영문을 몰랐지만 나에게 나서지 말라고 고함을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밖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싸움고수에게로 다가갔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싸움고수를 포옹했다.
'뭐하는 짓이요?!'라고 김 과장이 말했지만 무시했다. 내 언행이 그에게 이해될 리 만무했다.
포옹을 하고 싸움고수에게 속삭였다.
"현장에서 쫓겨날 수 있습니다. 자존심 좀 상해도 일은 해야 하니 못 이기는 척 사과하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 합니다. 듣자 하니 싸움고수시던데 이런 일로 맘 상하면 쪽 팔리잖습니까?"
잠시 후, 싸움고수는 그러겠다고 했다. 우리가 컨트롤 룸에 들어가 구석에 앉아 있던 이브라힘에게 들어가자,
"이 귀여운 토깽이 같은 자식들, 그래 내가 미안해부러!"
싸움고수가 웃으며 들어가 욕을 날리며 악수를 청했다. '미안하다고 그런다고' 통역을 해주자 악수를 하고 화를 풀었다.
관리부장이 나를 눈독 들였다. 공무 팀으로 스카우트한다는 말을 박 과장이 전해주었다.
박 과장은 스마트하고 친화적이었다. 삼성맨으로서의 우월의식이나 갑질 없이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사람을 우쭐하게 만드는 처신에 머쓱해지기도 했지만 나를 공무부와 관리 쪽으로 천거해주었다. 내가 공문 등을 작성하면 공무 쪽 통역 여직원들을 거쳐 수정 작업 후, 공무부장과 관리부장의 재가를 얻어 발주처로 가게 했다.
공무 부서의 통. 번역 직원들은 모두 여자였다. 나는 토목의 박 과장에게 관리와 감시, 통제와 갑질로써 대했다면 그러한 성과가 없었을 거라며 내 역량 껏 업무처리를 하게 내버려 둔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내가 업무를 보는 영역이 토목에서 공무, 관리로 늘어나자 조금씩 기고만장해져 갔다. 겸손의 미덕을 발휘하지 못하고 분수에 넘친 호의를 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노동자와 나와의 사이에서도 심각한 싸움이 일어날 뻔했다. 현장의 철근 팀들이 11시부터 버스를 불러 식사를 해버려 공무팀 지시로 버스 사용을 정시에 하게끔 조치를 취했더니 이 팀들이 단체로 내게 스트라이크를 걸어 아침 출근 버스에 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한 차장이 설득해서 데려왔는데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시비를 걸었는데 버스를 정시에 보내게 한 이유였다. 온몸에 문신을 한 철근 팀장이 총대를 멘 모양으로 밑에 쫄따구에게 지시해서 하는 말이,
"어이 전 차장, 전 차장이 통역으로 왔응께 오늘부터 쪼까 고생하소잉? 열심히 부를랑게"
그들끼리 재밌다고 키득거렸다. 관리자들이 노동자들과의 경계를 명백히 하라는 충고가 여러 번 있었지만 무시하고 같이 고생한 결과였다. 관리자들은 1 캠프와 환경 좋은 바닷가에 있었고 대부분이 노동자들인 2 캠프는 많은 인원에 비해 생활환경이 열악했다. 화장실이 막히고 물이 떨어져 씻다가 만 경우도 있었다. 1 캠프로 내려오라는 소장의 말에도 그들과 같이 생활하겠다며 남아 있다가 상심한 마음이 컸다.
조용히 그들의 면면을 다시 돌아보았다. ‘뭘 쳐다봐 ‘ 하면서 대장이 내게 주먹을 날렸다. 실망이 절망으로 변했다. 관리자들이 삼성 캠프를 사용하며 온갖 혜택을 다 누릴 때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2 캠프에 두고 편한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내 뜻은 순진한 의도였다. 힘 있는 관리자에게는 꼼짝도 못 하면서 선택한 대상이 나였다는 것이 더욱 한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