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장 이디르

구세주

by Massoud Jun



*** 생산장 이디르


생산장 이디르

알제리 GDP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국영회사 쏘나트락은 세계 8위로 프랑스의 Total 사와 맞먹었고 아프리카 최대의 시설과 생산량을 자랑하는 스킥다 정유공장 생산장 이디르는 서열로 따지자면 3위 정도 되는 사람이었다. 수시로 그의 사무실에 드나들어 같이 알제리 식 커피를 마시며 이슬람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스킨십을 좋아하는 그들처럼 자주 그들과 포옹했다. 그와 포옹하듯 자주 알제리 인부들의 먼지 묻고 기름 묻은 그들을 포옹하면서 쓰다듬었다. 그는 자상하고 호의적인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높은 사람인지는 몰랐을 정도로 수수한 옷차림과 신사적인 언행이 사람을 편하게 했다.


이디르뿐만 아니라, 부 공장장도 무전기만 가지고 다닐 뿐, '내 친구'를 입에 달고 살면서 살갑게 대하면서도 권위적이거나 가식적인 모습이 아닌, 동네 아저씨처럼 수수한 모습에 높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현장에 워낙 자주 실사를 다녔기 때문에 공사와 연관된 사람일 것으로만 생각했다. 알제리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지 않았던 덕분에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득했던 편견이 현장에 와서 그들과 부대끼면서 오히려 고향의 그리운 이웃을 만난 것처럼 편하게 다가왔다.


그런 경험은 내 의식마저도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느끼면서 현장의 활기와 더불어, 만나는 알제리 사람들과의 유대관계가 매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듯 신기했다. 거기에, 삼성엔지니어링의 조직 체계와 수준 높게 사람을 대하는 자세, 업무처리 능력이 조화롭게 어울려 최상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하는 게 즐거웠다.


발주처 현장 사람들은 나의 조치와 업무 해결 능력을 높이 샀다.

알제리 친구들을 상대로 화내지도 고함을 지르지도 않으면서 친구처럼 업무를 처리해내자 나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 냄새나는 화장실 교체나, 현장의 부조리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내게 했고, 박 과장에게 전달하면 틀림없이 실행했기 때문에 내 역할이 점점 중요해졌다. 물론, 현장에 프랑스어가 가능한 인력이 많이 부족한 데다 통역은 협력업체에 집중되어 있었고 역할이 모두 달랐는데 여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남자들도 다루기 힘든 알제리 인력들은, 한국인들을 중국인이라 비하했고 그 모욕의 수준이 참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음에도, 현장 로컬 인력뿐만 아니라 한국인들 마저도 여자 통역들이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인력 통제와 관리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 일을 나는 혼자서도 완벽하게 처리하고 오히려 협력을 이끌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협력업체 관리들이 나의 아침 조회를 멀리서 지켜보기도 했다.


그들과 나의 차이점은 감시와 통제에 의한 관리를 하느냐, 그들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며 존중과 협력으로 친구를 만드느냐에 있었지만 한국 현장에서처럼 관리만 해오던 사람들은 죽어도 이해하지 못할 업무 방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부들에게 자위행위하는 제스처는 그만큼 시간이 남아돌아 농땡이 치는 거냐는 의미여서 뜻을 아는 친구들이 재밌다고 깔깔거렸다. 거기에 푸셥을 시키면 그것도 벌이 아니라, 놀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젊은 인부들과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본 발주처 사람들이 지지해주었던 것이다.



*** 이디르와의 협상



한 차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휴대폰 저쪽에서 들렸다.


"아따 성님, 게이트 2에 포크레인 중장비랑 레미콘이 막혀 있는데 어짠가 알아봐주쇼잉?"


현장에서 확인해보니 경비대장의 지시라 했다. 당장 경비대장 사무실을 방문했더니 통화 중이었다. 그의 통화가 끝나갈 무렵 내 휴대폰이 울렸다.


『기다릴 필요 없이 가봐도 좋습니다. 무슈』


나는 두 말 않고 뒤돌아 나왔다. 경비 대장은 군인 출신이었다. 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므로 전용 운전수와 잠시 방황하다가 생산장 이디르의 사무실에 들르자 반갑게 나를 맞았다. 커피 마시러 왔다고 하자 비서를 시켜 커피를 주문했다. 우리는 잠시 이슬람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슬람에 대한 공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전 종교가 가톨릭이었기 때문에, 가톨릭의 불신이 이슬람의 불신으로 이어졌지만 이디르에겐 소재를 간단하게 종교에 대한 불신을 내비쳤다.


물론, 현장의 발주처 직원들과도 자주 비난을 일삼기도 했지만 그들은 웬일인지 비난에 관대했다. 그것처럼, 이디르도 이슬람 비난이나 불신에 대한 내 입장을 존중하는 듯, 미소로 답할 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판단하거나 결정할 능력이 없다며 겸손을 보였다. 나는 또한 그가 이룬 가족과 인생에 대한 성과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그가 정색을 하며 화를 냈다.


"무슈 마쑤드, 레미콘을 바다에 버리든 말든, 내 알바 아니오! 현장 상황을 보았소? "


생각해보았지만 문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600루베 공글 작업을 한다고 펌프카 두 대가 위치해 있었고 작업허가서도 받은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점이 떠오르지 않았다.


"삼성이 여기 온 것은 소나트락의 목적 달성을 위해 만족을 주기 위한 것인데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가 펌프카의 위치를 내게 물었다. 그 위치가 만약의 경우, 소방차의 통행을 방해한다는 것이 게이트 폐쇄의 이유였다. 나는 재발 방지와 문서화를 약속했다. 현장은 소방차가 다니기에 문제가 없을 정도였지만 문제 삼았다면 풀어내는 게 중요했고, 자극하는 것보단 재발 방지와 문서화를 약속했다. 나에게 그런 권한은 없었다. 문서화해준다는 것은 오래된 행정방식을 고수하는 그들에겐 업무 결과를 안겨주었기 때문에, 절차와 문서화는 효율적인 업무 방식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프랑스와 알제리의 전쟁을 소재로 커피를 홀짝거렸다. 알제리 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소재로 알제리인들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외인부대 출신인 것을 말했어도, 알제리의 자주독립에 대해 한국이 연합군과 미군에 의해 독립된 것과 비교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알제리는 프랑스 땅, 샤를 드골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고 알제리 영유권을 끝까지 주장했던 것이 외인부대 출신의 장교들이었다. 나는 1954년에 2.400km 길이의 아틀라스 산맥의 시작점인 바트나 근처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으로 촉발된 알제리 8년 독립전쟁에 대한 견해를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일본 치하를 거쳤다는 동질감과 독립 후의 바뀌어진 역사, 외인부대에서 배운 존중과 배려에 대한 이야기를 그는 묵묵히 내 대화를 경청했다.


이디르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며 아랍어를 구사했다. 곧 경비대장이 나타났다. 두꺼비 같은 경비대장이 나를 보자마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둘은 아랍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디르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얻은 거 없이 상심해서 현장으로 갔을 땐 정상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부공장장 모하메드


권위의식 없이 사람들을 대할 땐 미소를 잃지 않고 인부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해결해주려 노력했기 때문에, 인부들은 에이전시에 감히 덤벼들거나 쟁위 행위를 하지 않고 친절한 나에게 했다. 그들의 단결력은 대단해서 월급 명세서를 받은 다음 날 바로 파업했다. 파악한 결과 에이전시의 착취였다. 멀리 살지만 성실한 친구들에게 현장 컨테이너에서 자게 했고 절차를 거쳐 반장의 자리에 올렸다.


그들은 도둑질을 막았다. 그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설득했고 또 다른 친구들을 설득하니 불성실한 친구들이 없어졌다. 결혼하는 인부를 위해 주머니를 뒤져 한인 동료들에게 돈을 모아 축하금으로 쥐어 주었다. 그런 볼품없는 친구들을 모아 반장과 슈퍼바이저를 만들어주었다. 절차를 밟아 공무팀과 관리팀, 발주처에도 공문을 보내 하자가 없게 하니 달라진 현장과 인부들은 모두 내 편이 되어 있었다. 그런 내가 싸웠다고 하니 인부들과 이디르가 나를 구제하기 위해 나섰는데 그가 살라에게 한 말은,


"살라, 마쑤드가 외인부대 출신이라는 거 알아?"였다고 한다.


외인부대원은 알제리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살라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로부터 현장은 일사천리로 돌아갔다. 심심하면 작업 중지를 내리던 살라가 없어지자 박 과장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삼성 캠프 파티를 하는 동안 살라가 사라졌으니 내게 벤츠 10대를 사줘야 한다는 농담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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