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은 발주처 계열사인 토목업체 이네르가의 현장 책임자인 주비르와 회의를 진행 중에 있었다. 주비르는 나와 동갑이었고 삼성 스킥다 현장에서 일하다가 삼성으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하고 현장에서 쫓겨 난 당시 담당자였다. 그들은 삼성을 상대로 손해배상 재판을 걸었고 알제리에서 두 번 모두 승소했지만 스위스 국제 재판소로 삼성이 항고를 한 상태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의 이 프로젝트에 파견된 것이었다. 가관인 것은, 현대와 같이 일하게 될 주요 현지 협력업체인 이네르가와 에트르킵은 모두 알제리 국영기업체의 두 축을 이루는 소나트락과 소넬가즈의 자회사였다. 알제리의 대형 프로젝트는 모두 그들과 일해야 하는 것이 프로젝트 수주의 주요 조건이었으므로 수주를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난관이었다.
우선 그들은 너무 무능했다. 현장 인력관리와 공정 관리에 있어서 그들의 무능은 시공사의 발목을 매번 붙잡고 있었는데다 그 무능함을 시공사의 탓으로 돌리는데 전매특허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스킥다와 아르쥬 현장에서 잘 경험했고 답이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들과의 협업을 어떻게 하느냐가 프로젝트 성공의 열쇠임을 인식하고 준비해야 했다.
그들의 주요 특징은 우선 기술력이 없었고, 기술력이 없기 때문에 현장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현장을 다스리는 관리 능력 또한 형편 없었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현지 인력들이 오래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므로, 그런 현상이 알제리 전체 국책 프로젝트의 시스템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일부러 프로젝트를 늦춘다는 소문도 자자했다. 그것이 알제리 현장의 특성이었다. 그들에 비해 한국 업체가 너무 빨랐다. 그들의 특성은 또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발주처 자회사로써 시공사 발목 잡는 물귀신 작전이 그랬다.
「아침엔 커피 한 잔의 여유로, 오후엔 땀 나지 않게 천천히」
커피 한 잔 더 하시게쑤~~욱?
그 모토를 나는 좋아했다. 문제는 일해야 할 때도 그런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직원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도, 낮잠을 자러 사라져도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이, 오로지 일에만 매몰된 한국 업체와의 차이점이었다. 그들을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주비르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얘기만 하고 남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곤란한 일은 건성으로 대답하는 버릇이 있었고, 불리하면 곧장 역공을 펼쳤는데,
"이봐 주비르, 알제리 사람들이 말하기 좋아한다는 걸 잘 알아! 그렇지만 네 얘기를 하고 싶으면 남의 얘기를 들을 줄 알아!"
라고 말한 이후에는 웬일인지 서로 대화가 잘 통했다. 그런데 삼성에서의 일을 문제 삼으면 금방 돌변해서 삼성에게 책임전가를 하기 바빴다. 내게 도움을 요청하면 나와 김 위원은 그냥 악의 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업무 측면에선, 누가 보더라도 이네르가와 에트르킵은 한국업체의 걸림돌이었다. 알제리라는 그들 나와바리 특성을 제외하면 같이 일하지 않는 게 좋았다.
그런 이유로 삼성 엔지니어링은 이네르가와의 계약을 파기하여 소송으로 갔고 이네르가를 대신하여 여수의 진응 건설에게 토목 공사가 넘어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만약 이네르가와 개,보수공사(Revamping)를 계속했었더라면 삼성 엔지니어링의 3조짜리 스킥다 프로젝트도 망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직 그들의 진면목을 경험해보지 못한 현대는 벌써 내부 조직력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 발전소 경험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될 김 소장의 현장 통솔력은 카리스마 넘치고 자상하며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공정이 진행되지 않을 시, 해당 공구장들 앞에서 무겁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잡을 때면, 모두들 그 위압감에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의 카리스마를 느끼다가도 한 번 호통을 치기 시작하면, 안 그래도 무거운 분위기에 행여 보고라도 잘못해서 꾸지람을 들을까 모두들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는 분명이 잘못된 거였다.
소장은 공구장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지원해줘야 했다. 모든 공구장들이 자신만의 경험으로 파트 별,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공유해서 해결책을 찾게 만들어 회의에 주눅이 들지 않게 해야 했다. 그런데 저런 압박감 속에서 혼날까 싶어 쉽게 의견을 제시하는 이가 없었다. 그저 전전긍긍 자신에게 불똥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선생에게 혼나지 않으려는 학생처럼, 사람들의 머리를 먹통으로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 결과물로, 공구장들도 자기 파트로 돌아가면 부하 직원들에게 꼭 같은 상황을 되물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왜냐면, 그런다고 당장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들이 태반이기 때문이었다. 보다 더 원활한 공정을 위해서는 발주처와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했으므로 발주처 현장 소장 헨니쉬와의 유대관계를 쌓고 그의 부하 직원들과의 활발한 교류가 필요했다.
발주처의 헨니쉬, 철골과 토목의 에트르킵과 이네르가를 상대하기에 김 위원이 적임자였다. 헨니쉬나 이네르가 현장 책임자 주비르를 상대하는 김 위원의 말은 부드럽고 상쾌했다. 둘이 책상에 앉아 숙제를 푸는 친구처럼 다정하게 하나하나씩 설명을 해주며 같이 웃고 업무를 즐기면서도 핑계를 댈 수 없게 사소한 것까지 공문서화해서 최상의 협력을 이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친구 주비르는 현대 포르젝트에서 초반 같이 일하다 암 투병을 오래 한 뒤 결국 사망했다. 그의 명복을 빈다.
주비르를 사무실로 불러 공문서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빠져나갈 수 없게 인식을 시켰다. 둘이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사귀는 것처럼 다정하고 죽이 맞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묻어났다. 두 사람은 만나면 서로 즐거웠고 그 즐거움은 다른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용 부장과 김 도화를 제외하곤!
그렇게 금방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토목공사는 준족의 발전을 이루었고 나는 한국인으로선 이네르가와 최상의 조화를 이루는 적임자라고 믿었으나, 본사의 생각은 달랐다. 김 위원의 독설이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거였다. 그들의 입장에선 너무나 무능해서 채용 미스라는 판단을 한 나에게 단 한 번도 비난을 한 적이 없었다. 김 위원의 비난은 용 부장과 김 도화의 인성과 업무 처리 능력 또한 문제가 많았으므로 현장에서 사라지게 하려는 목적이었고 분명한 명분이 있었다.그러나, 소장의 철저한 신임을 얻은 둘로 인해, 결국 현장에서 떠나겠다고 한 것은 김 위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