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점심을 숙소에서 먹었으므로 왕복 시간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삼성엔지니어링과 같은 캐터링 회사와 계약을 맺은 덕분에, 한국어를 잘 하는 방글라데시인 둘이 숙소 식당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며 상주했다. 드디어 한식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기쁨은, 점심은 밖에서 먹더라도 저녁은 모두 모여 같이 먹는데, 직급별로 먹다 보니 내 앞은 항상 김 도화가 자리 잡았다. 밥 맛이 날 리가 없었다. 발이라도 스치면 감정을 실어 내 발을 찼다. 당장 일어나서 아구창이라도 날리고 싶은 생각이 온 몸에 스쳤지만 왜인지 내 인내는 깊었다.
점심을 끝내면 곧장 현지 전력공급 업체 소넬가즈 지사장과 소장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용 부장이 동반해서 셋은 현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었던 소넬가즈 지사에 들러 사장 방으로 올라갔다. 젊고 잘생긴 지사장은 커피를 대접하며 자신의 딸이 한류에 빠져 있다며 한국인들이 국책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세티프를 찾아 준 것에 감사했다. 소장이 사람 잘 사귀었다며 간단하게 간담회를 끝냈다. 소장이 현장으로 돌아가고 나는 수자원 공사를 방문하여 미비한 정보를 얻어 현장으로 복귀했다.
소넬가즈 세티프 지사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에 있을 때, 새로 온 재경부의 사원과 김수용이 내 방으로 들어와 담배를 요청했다. 키가 크고 귀티 나게 생긴 이 사원은 조심스러운 언행이 뭔가 불안한 듯 안절부절 못하고 초조했다. 직원 숙소를 구하기 전에, 김수용과 함께 파견되어 김 도화와 나의 현장 숙식 비용을 처리하면서 숙소를 구했는데, 알제 본사에 와 있던 관리부장으로부터 상상이상의 모욕과 수모를 당했다고 털어놓으면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힘겹게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느낀 회사 시스템에 대한 의견을 말하면서 나보고 어떻게 견디느냐고 물었다. 내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김 도화가 이 신입사원에게도 나를 모함하고 뒤에서 나를 조심하라고 욕했던 것일까?
“과장님, 김성동 부장 조심하세요. 성격 장난 아녜요!”
김수용이 단호하게 말했다. 장난 아닌 사람 두 명과 벌써 6개월 가까이 보내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말하는 장난 아닌 정도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근데, 오늘 오랑에서 같이 일하던 제 알제리 친구들이 현장에 갔을 텐데 애들이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던데 무슨 일 있었나요?”
몇 일 전, 용 부장이 펜스 설치 업체 선정을 위한 면담을 할 때 마지막에 들어왔던 팀을 두고 하는 얘기였다. 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네 친구들이면 미리 얘기를 하지 그랬어?’ 하면서 넘겼다.
“근데, 그 뚱뚱한 비서 애는 왜 뽑았어요? 예전에 면접보고 안 예뻐서 탈락시킨 애였는데!”
용 부장이 뽑은 파티마는 미모와는 무관했다. 처음엔 자유스럽게 일하다가 한국 드라마 중에 식당 셰프가 직원들 호통치는 장면을, 토목의 알리와 안전의 무스타파와 함께 파티마에게 보여주면서 이것이 한국의 직장 문화라는 설명을 보여준 뒤로는 꼭 그 드라마처럼 군기 잡힌 행동으로 토를 달지 않고 무조건 복종을 하던 싹싹한 여자였다. 내게 친구의 결혼식에 초대를 했지만 남녀가 엄격하게 구분된 알제리 결혼 문화에 대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둘째 치고, 김 수용이 여자에 대한 불편한 얘기를 나이차도 20년이 넘는 내게 쉽게 하는 것을 보면 내가 편한가 보았다.
다음 날, 현장에 컨테이너가 더 늘어나 한국에서 측량 팀이 증강되었고 관리부장과 김 수용도 현장에 본격적으로 캐터링 업체의 직원들과 함께 파견되어 현장과 숙소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알제 지사에서 소장인 전무를 선두로 전 직원이 현장 답사를 위해 몰려왔고 발주처 피엠 모하메드와 수칸, 보고 싶은 이 부장도 예의 개구진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야, 잘 지냈냐? 잘 하고 있는 거지? 안심하고 믿어도 되는 거지?"
"그럼요, 씩씩한 거 빼면 시체죠!"
그리고 처음 보는 현엔의 공무 팀 김경락 부장과 어린 티가 나는 한국인 여직원 통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장 직원들이 모두 나와 먼 길 온 그들을 떠들썩 하게 맞았다. 경비를 서던 마을 경비들과 경비소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이 부장을 보고 '저 사람이 내 보스야!' 하고 말했다.
마을에서 뽑은 경비원의 딸, 천사(말라이카)처럼 예뻤다.
김 수용이 김 성동 부장을 대동하고 헨니쉬에게 소개하기 위해 들른 사무실에서 간단한 대화 중에 헨니쉬의 말을 놓쳐 김수용에게 ‘좀 전에 뭐라 했지?’라고 묻자, 휴대폰으로 업무를 보던 김 수용이 대신 답을 해주었다. 대화 중에 상대의 말을 놓치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럴 때면 다시 되물어 의사를 파악하곤 했는데, 다른 통역에게 묻곤 했던 것이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모습으로 비칠 것이 부끄러웠다.
이윽고 발주처 피엠 모하메드와 수칸, 김 위원과 김경락 부장이 참여하는 회의에 통역으로 들어갔다.
“나는 피엠인데 두 분 중에 누가 나를 상대 해?”
김 위원과 공무 부장 김경락이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토목이면 김 위원, 공무면 김 부장으로 정리했다. 모하메드는 자신의 얘기를 내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나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노트에 그의 말을 빠르게 적어나갔다. 모하메드는 말을 많이 할 뿐,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내가 사무실에 있을 때, 누군지 알지 못하는 현대 직원이 허락도 없이 불쑥 들어와 현장 부지가 너무 낮다고 말했어. 내가 프로젝트 피엠인데, 그렇게 불쑥 찾아온 것도 깜짝 놀랐고 현장 부지가 지반보다 훨씬 낫다는 것도 놀랐어. 무엇보다 프로젝트 피엠에게 절차도 밟지 않고 그렇게 찾아온 것은 용납되지도 이해되지도 않아! 앞으로는 절차를 지켜 피엠의 직위를 존중해주길 바라고 재발 방지를 해 주길 바랍니다!”
그의 얘기는 자신이 피엠이니 존중해달라는 얘기였다. 내가 대화를 전달하는 사이, 모하메드는 내 말을 자르고 여직원 통역으로 바꿔주거나 영어로 해달라고 했고 수칸이 옆에서 ‘통역 잘 하고 있는데 왜 그래?’라고 말하자 모하메드는 내 눈을 말없이 오래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나 피엠이야' 라고 말하고 있었다.가소로웠지만 그의 대화를 모두 전달했다.
“무슨 통역이 그래!”
김 부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아무런 감정 없이 나머지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에 있을 때, 모하메드는 헨니쉬와 토목 직원을 동반해 토목 사무실로 찾아왔다. 소장이 김 위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그들의 등장에 눈길을 돌렸다.
“마쑤드, 소장에게 전달해 줘! 너희 토목, 미스터 킴 말야! 우리 직원들에게 거만하게 ‘어! 어!’ 하면서 요구사항에 대한 답은 하면서 한번도 해준 적이 없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면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마쑤드는 전달하지 않을 거야!”
옆에서 헨니쉬가 동료들 험담은 전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는 듯 나를 한 번 흘겨보면서 거들었다. 김 도화가 바로 옆에 있었고 아무리 미워도 이런 말은 전달해주고 싶지 않았다. 토목 조수 알리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메시지를 건네자,
"미스터 킴이 발주처 요청을 묵살한다고 합니다"
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