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 부장
회의를 마치고 현장 소방 시설 설치를 위해 세티프 소방서를 방문하러 현장을 떠났다. 메디아 마을을 지날 때마다 현장에 와서 일했던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내 아랍 이름 '마쑤드'를 부르며 아는체를 했다. 그들이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금방 구분했다. 아는 체를 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인사를 해서 조그만 두 마을에 유명 인사가 된지 오래였다. 밖으로 나오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길거리 먼지가 수북한 식당에선 양고기를 구워 팔았고 커피숍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망중한을 즐기면서도 가끔씩 자동차로 이동하는 여행객들이 잠깐의 휴식을 위해 들어왔다 가곤 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 들어가 운전수 이드리스와 커피를 마시면서 그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농사거리도 일거리도 별로 없는 마을 남자들만 모이는 곳이지만 사람들은 이웃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셀 정도로 서로간에 인정이 넘쳤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는 한국에서 왔고 한국과 중국은 문화와 언어가 완전히 다르니 오해는 말아주되 그들이 가진 이웃간의 정을 칭찬했다. 없이 살아도 행복하다는 것을, 가난의 서러움을 느끼게 사회현상화 된 한국인들의 경쟁에 의한 부의 쟁취가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과 비교되어 그들이 이웃과 나누는 정이 마치 우리의 잃어버린 사람 사는 정과 비교되었다. 그러나 젊은 친구들은 조심해야 했다. 오랜 경험으로 괜찮거나 그렇지 못한 친구들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긴 했어도 실상 대화를 하다보면 괜찮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악마적인 근성을 가지고 모욕을 주기 위해 접근하거나 도둑질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들엔 영수증이 발급되지 않았으므로 그냥 종이에 적어 사인을 하는게 다였다. 길거리에서 구운 양고기도 위생과는 상관 없어보여도 소금이나 머스타드에 찍어 먹어도 냄새도 없이 맛이 기가 막혔다. 마을 사람들과 자주 유대관계를 즐기면서도 한번씩 바가지를 씌우는 식당을 발견하기도 하면 '영광스러운 알라의 이름으로 부끄러운 줄 알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거짓말처럼 그들의 언행이 온순해졌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즐겁기만 했다.
소방서에서 일을 보고 수자원 공사, 전력 지원 업무를 마치고 현장 사무실로 돌아와 김 도화의 보고를 받고 있던 용 부장에게 귀환을 알리자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졌다. 잘 생긴 그의 얼굴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으로 괴상하게 일그러지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이 괴상하게 튀어 나왔다.
“야 이 새끼야! 너 어디 갔었어? 업무 하다 말고 보고도 없이 어디 갔다 왔어? 회의 보고서 작성해야 하는데 찾아도 없잖아! 너 이 새끼, 소장님께 보고해서 이 현장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할 줄 알아! 조금 있다가 봐!”
옆에서 업무를 보던 안전 최 원성 부장이 짜증스런 표정으로 내 팔을 잡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또 시작했네요. 일만 벌여 놓고 수습도 못하면서 무슨 일 생기면 남들 탓만 하니, 전 과장 괴로운 마음 이해합니다. 신경 쓰지 마소”
그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당장 이해를 해주는 척 했지만 그도 다를 바 없는 사람이란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도 근엄함을 유지하는 것 외에, 자기가 채용한 직원이 능력이 모자란다면서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스스로 처리해야 할 전반적인 안전 보고서도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자신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짓이 김도화와 같았다.
컨테이너 사무실이 있는 곳을 남겨두고 진행되는 터파기에 발전소가 들어갈 자 윤곽이 드러났다.
곧 용 부장이 밖으로 나와 담배 피우는 곳으로 왔다.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한 그의 표정은 좀 전에 보았던 일그러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무슨 훈계를 할 것이 뻔했다. 용 부장과 김 위원이 오고 나서 내 보고체계는 그들에게 옮겨 갔었다. 그러나 김 도화가 나에 대한 모함과 중상모략을 나 몰래 끊임없이 한 덕분에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불신을 전제로 했다. 여러 부장들을 공정회의에 앉혀 두고 회의를 주도하고 혼자 척척 해결을 해도 그들의 불신은 계속되었다.
그런 행위들은 김도화를 직장상사라는 말을 한 내 실수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새로 발령 받아 오는 사람들마다 어떻게 정신교육을 시키는지, 또 직접 경험하지 않고 남의 얘기에 확신을 가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상태였음에도 김 위원은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용 부장은 책임전가를 하는 입장이었다. 단 한 번의 비난 없이 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이는 김 위원 뿐이었다.
그때까지 대기업 공구장들에 대한 대단한 인식을 갖고 있는 내 의식은, 그들의 솔선수범과 현장 경험, 지식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감 대신에, 그들의 자리 보존과 책임에 대한 비난을 부하들에게 돌리는 것에 능한, 무능하고 부도덕한 모습을 발견한 것에 좌절감이 대신했다.
“너 임마, 어디 갔다 왔어?”
“현장 전력, 물, 소방 시설 배치하러 다니는 거 알잖습니까? 거기 다녀오는 거 뻔히 알면서 왜 그러십니까?”
“이 새끼가 어디다 대고 말대꾸야! 회의가 끝났으면 회의록 작성해야 할거 아냐!”
“회의록은 발주처가 작성하는 거고 회의 얘기는 순간순간 전달하면 담당자들이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걸 왜 제가 작성해야 합니까?”
“이 새끼가 그래도 말대꾸야! 야 임마, 마지막에 네가 했던 말들을 얘기해줘야 보고서 작성을 하잖아! 그건 그렇고 전력 공급 전봇대 설치는 언제까지 돼?”
“현장 진입로까지 들어와 있고 여기까지 오는데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세 번 말씀 드렸는데, 부장님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듯합니다."
용 부장이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저녁에 잠도 안 자고 늦게까지 소장님 연락 올까 소주 마시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것 때문에 괴로우신 것 같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현대건설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소장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것을 자신의 자부심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가끔씩 기분 좋을 때면 형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떠맡고 있는 역할이 자신의 역량을 초과하는 모양인지 부대껴 하는 모습이 역력해서인지 분노와 실망을 넘어 이제는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모두 잠든 밤에, 화장실을 간다고 불 켜진 회의실 겸 식당에서 김 수용이 가져 온 2리터짜리 소주를 맥주 컵에 따라 안주도 없이 숙소 식당에 앉아 혼자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잠도 안자고 술에 취해 자정이 넘어도 혼자 식당 겸 회의실에 혼자 앉아 기다리는 것은 혹시라도 서울 본사에서 언제 올지도 모를 전무의 전화였다.
용 부장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현장 외곽 펜스 설치 업체 선정을 위한 면담을 시작했다. 현장 사무실로 사용하는 세 컨테이너는 토목 팀이 하나를 썼고 용 부장과 안전 최부장이 한 동, 측량 팀이 하나를 써서 외부 업체나 손님이 대기할 공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조그만 현장 펜스 안에 들여서 대기하기에도 정신 사나워 한 업체가 면담을 마치고 나가면 경비들에게 손짓으로 나머지 업체를 들이게 했다. 그렇게 나머지 한 팀이 들어와 마지막 면담에 들어가고 나는 토목 사무실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