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실력자

김 현수 토목 전문 위원

by Massoud Jun


*** 토목 전문 위원



김현수 위원은 작은 키에도 업무 역량이 뛰어났다. 빈틈없이 예측 가능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고 현장에 투입해서는 수많은 공문을 뿌려 토목 분야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한 번에 정리했다. 약간 신경질적이면서도 대단한 추진력을 가진 그의 등장은 문서를 중요시하는 알제리 발주처에게 읽을거리를 주면서도 공정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헨니쉬를 비롯한 발주처 직원들이 좋아했다.


나이 들고 건강이 좋지 않았던 김 위원이 밖으로 나가 현장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이 현장은 평정되었고 나와 단 둘이 갑질을 일삼던 김 도화는 김 위원의 추진력에 눌려 기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지만 언제나 같은 차를 타고 김 위원과 대화를 나눌 때면 마른기침을 토해내며 우리 둘의 대화를 막았다. 그럴 때면 나는 김 도화를 차에서 끌어내어 죽도록 패 버리고 싶다는 살기 어린 충동을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김 위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전문위원은 직원 역량 평가에 참여할 수 없는 명예직임을 통탄했다.


"뭐 저런 새끼가 현장 관리자로 와서 통솔한다고 지랄이야, 저 새낀 현대에서도 더 이상 진급 못하고 만년 부장으로 김 소장 아니었으면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놈이야! 준비도 제대로 안됐고 회의 진행도 못할 거면서 무슨 공정회의를 한다는 거야! 참 내, 난 안 갈 거니까 지 혼자 잘해보라고 그래! 그리고 김도화 저 새끼가 토목 엔지니어야? 저 정도 수준으로 어떻게 현대 들어온 거야? 뒤 한번 캐봐야겠네!"


그의 독설은 시원하게 막힘이 없었지만 한 번도 현대를 비난하지 않았다.


김 위원은 영어로 공문을 작성해서 내게 타이핑을 하라고 첫 지시를 해서 돌려주면 연필로 수정을 수 없이 반복해서 자신이 원하는 문장을 만들었고 완성된 문장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공문을 작성했다. 영어를 잘한다고 소문났지만 한 번씩 문맥에 어긋난 문장을 찾아내면 김 도화보다 영어실력이 훨씬 낫다고 민망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문장은 어렵지 않았고 그동안 궁금하게 여기던 토목의 전문 용어가 쉽게 이해되어 도움이 많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김 도화에게 당해오던 끔찍한 기억이 그의 등장으로 사소한 것까지도 알려주지 않던 김 도화가 얼마나 악랄하게 갑질을 행했는지 자연스럽게 비교가 됐다.


김 위원의 수정하는 업무과정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직언했음에도 오랫동안 익숙한 업무 스타일을 살짝 수정하고는 그대로 고수했다. 그러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면서 수정을 요구하는 그의 스타일을 나는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성질이 급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를 비난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현대건설 한참 선배인 자신이 용 부장 같이 무능한 자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틈만 나면 용 부장을 욕했다. 그런 그도 나에게만은 친절하게 대하는 게 신기했지만 나에 대한 의존은 더욱 깊어졌고 내가 작성한 업무 보고서를 보더니 그렇게 작성하는 거라면서 작성과 보고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5월 중순으로 접어든 현장은 삭막하던 들판이 양귀비 꽃과 밀이 자라 장관을 이루었지만 오후가 되면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의 더위가 사무실을 엄습했다. 김 위원과 셋이서 사용하는 컨테이너 사무실 냉방기가 작동이 되지 않는다고 여길 정도로 허덕였다. 언덕 위에 자리 잡았던 사무실 터는 이제 우뚝 선 성채처럼 주변 터파기로 점점 잠식되어 가다가 덩그러니 홀로 남아 있었다.


거대한 언덕이던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는 현장 풍경은 비로소 전체 윤곽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광범위한 발전소 터는 어색하게도 계곡 아래 자리 잡은 것처럼 경계선에서 바라보면 한눈에 들어왔으므로 테러가 빈번한 알제리 특성상 보안과 안전에 취약해 보였다. 현대 엔지니어링은 설계상 사무실을 현장 안에 설치할 예정이었다. 한국에서 오는 대부분의 협력업체들은 입구 양쪽으로 폭넓게 자리 잡았으므로 주변 농가의 밭들을 모두 갈기 위해 주민 보상 문제로 땅 주인들과 공청회가 진행되어 보상 협의에 들어갔다.


땅 주인들은 앞장 세우고 나타난 그 주의 정치인은 사람들 앞에서,


“한국인들이 땅 주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을 시에는 알제리에 들어온 것을 환영받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마을 주민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땅 보상문제는 발주처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었음에도 현대에서 공청회를 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치인이 주민들 앞에서 눈에 훤히 보이는 쇼를 벌이던 것이 너무 아마추어적이었다.


주민 공청회



용 부장이 요청해서 헨니쉬와 주간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안전 부장으로 온 최 원성 부장이 요청한 안전 기본 규정에 대한 불문을 작성하고 요청한 대로 작성되었는지 확인하여 전달하고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그런데, 최 부장이 고용한 조수와 작성해야 하는 문서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는지 안절부절못하면서 ‘아! 어쩌지? 아! 어쩌면 좋지!’ 혼잣말을 하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근엄한 얼굴로 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무게를 잡으며 '조'를 '분대'로 표현했다고 사소한 단어에 딴지를 걸던 모습과는 반대의 모습을 보여 내 황당함이 절망감으로 표현됐다.


주간 공정회의 가운데 헨니쉬와 대화를 나누는데, 고개를 숙이고 무의미한 손가락 놀이를 하는 용부장



현대 중공업에서 안전 부장을 하다 왔다고 했다. 한국 기업 특성상, 아랫사람에게 지시하고 보고받으며 근엄함을 유지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호통만 치면 되는 업무가 누워서 떡 먹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에서, 자신의 업무를 대신해줄 부하가 외국인인데 국제 안전 자격증을 가진 기본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엘리트이니, 업무지시가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임기응변으로나 개인역량으로 해결할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 특징이 책임전가였다. 그러나, 오롯이 자신의 지시를 받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책임전가를 하지 못하므로 저러는 것이 예상 못한 바가 아니었음에도 한심해서 비웃음이 나왔다. 존중에 의한 협업을 이루었더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었을 것이다.


“헨니쉬가 물어보면 아직 완성 못했으니 완성되는 대로 전달한다고 하면 됩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파견되어 와 있는 한국인들 중에 유일하게 자신의 업무처리를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김 위원이었다. 그러나, 현장 소장인 전무도 현재까지의 경험으론 책임전가와 닦달에 특화되었지, 전체적인 매니지먼트를 잘 진행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 쪽 인원은 토목과 안전, 전기밖에 없었으므로 회의 내용은 간단했다. 김 위원은 저런 무능한 놈과는 회의를 하지 않겠다고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터였고 용 부장이 헨니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회의 과정이 궁금했다. 내가 작성한 기본 안전 보고서를 헨니쉬는 한번 훑어보고 ‘잘 이해했다’면서 최 부장이 안절부절못하던 보고서는 묻지도 않고 넘어갔다. 토목분야에서는 알제리 직원이 보고를 했고 사무실 경비 부분에 와서 경비들 초소와 서치라이트를 언제 설치하겠느냐고 묻자, 용 부장은 갑자기 고개를 떨구고 예의 버릇인 손가락으로 무의미한 낙서를 했다.


“조만간 바운드리 안으로 이동해야 하니 그때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귓속말로 그렇게 말하고 의사를 전달하자, ‘당장의 곤란함을 벗어나려 거짓말하는 게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보시다시피 터파기가 이제 이곳 사무실만 남겨두었고 설계도상 현장 사무실 터는 이미 완료가 되었으니 예정대로 진행되면 한 달여 소요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임시초소와 서치라이트를 당장 알아보고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전력을 끌어올 수 있는 시기에 대해 물었다. 내가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자연적으로 둘만의 대화가 오갔다. 전력 공급은 이제 막 전력 설치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전력 지부 직원이 이유 없이 피하며 일부러 늦추다가 담당 여직원과 지점장에게 강력한 클레임을 걸자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이다. 헨니쉬는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면 벌써 설치가 끝났을 거라고 장담했다. 물론, 뇌물만 바쳤다면 말이다.


미리 인지하지 못한 남의 얘기를 전달하기는 어려웠지만 혼자서 충분히 업무를 숙지하고 들어가면 대화하길 좋아하는 알제리 사람들과는 농담도 하고 커피도 마셔가면서 즐겁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역을 거치면 걸리는 시간과 어감상 전해지는 메시지가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기 때문에 원활한 회의 진행이 어려웠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 자부심은 통역은 말이나 전달하고 문서 번역만 하면 되는 역할로만 이용했고 그렇게만 일하고 있었다.


현장의 전반적인 코디네이터로 활용하지 않고 한 곳에 묶어두고 휘어잡으려 들었다. 삼성 엔지니어링에서 경험했던 자유롭고 역량 있는 코디네이터의 경험이 현대 엔지니어링에 와서는 고졸 출신의 무능한 통역이라는 악몽을 겪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