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사무실은 사람들로 넘쳐나 밖으로 나가 현장 경비원들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세 명의 경비원들은 모두 아인자다 마을 사람들이었고 나이대가 비슷했다. 그들이 집에서 가져 왔다는 커피를 내놨다. 그 커피를 ‘사랑과 채찍의 커피’라고 명명하자 다 같이 웃었다. 아내가 만들어 준 사랑이고 커피 마시고 돈 벌어오라는 채찍이라는 의미를 같이 공감했다.
경비들은 아이들을 가끔 데리고 와 현장 구경을 시켰다. 11세 이하의 여자 아이들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지만 히잡을 쓰자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으로 변했다. 그들의 집에 초대 받아 저녁을 대접 받기도 했지만 성인 여자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내륙 깊이 들어온 시골마을일수록 성인 여자들의 모습을 거리에서 발견하기도 힘들었고 집에 초대 받아가도 소개시키지 않는 것을 종교적 전통이라고 했다.
달콤한 커피를 음미하며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밖으로 나와 멈추는 사람들 없이 모두 쉬지 않고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필요치 않은 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직장을 잃는다는 위기감이 아니라, 너희들 손해라는 자만심에 가까웠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김 도화와 용 부장 같은 양아치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이었다. 현대 엔지니어링은 내게 용 부장과 김 도화 같은 자들이 바글거리는 곳이었다.
“마쑤드, 넌 왜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
경비가 물었다. 근 3개월 가까이 현장을 지켜본 그들이 지켜 보기에도 내가 한국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글쎄, 너희들이 더 좋기 때문이겠지!”
퇴근을 하면서 알제 지사에서 온 사람들의 차량을 얻어 타고 숙소를 향하던 중에 기사가 엉뚱한 길에 들어섰다. ‘저 길로 가야 하는 거 아냐?’라고 묻자, ‘내가 운전 해’라고 단호하게 답하자, 같이 타고 있던 알제리 동료가 ‘말에 예의가 없네’하고 되받았다. 가끔 만날 수 있는 부류였다. 차고에 주차하고 올라가려는데, 차고지 창고를 관리 사무실로 쓰는 곳에 김 수용이 우리를 반겼다. 반가운 인사를 하고 ‘운전수 애 교육 좀 시키라’고 하자, ‘누가 감히 과장님한테 못된 짓을 했어요?’ 라고 마음에 쏙 드는 말을 해서 웃었다.
김 수용의 업무 처리 능력은 뛰어났다. 개인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유대관계와 신중함, 상대에 대한 배려와 현지 인력을 다루는 능력까지 탁월했으므로 대부분의 현지 직원들은 그가 면접을 보고 채용하면서 급여도 지불했다. 따라서 관리와 더불어 회계부분도 담당하는 전천후 인재인데다 모두들 좋아할만한 후덕한 외모를 풍겼다.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니 직접 채용한 미모의 여자가 업무에 열중하다가 얼굴을 마주치고 인사를 했다. 대단한 미모였다. 짜식, 여자 보는 눈은 있어서……
커피 한 잔 하시게쑤~욱?
위층으로 올라가자 김 도화가 최 원성 부장을 붙잡고 그 동안 잘 지내던 운전수 이드리스를 ‘앞잡이’로 쓰기 좋다고 험담을 하다가 내가 들어가자 말을 멈추었다. 우리는 이미 1개월 이상 업무 연계가 없었다. 김 도화는 일일 업무보고에서 나를 제외시켰고 나도 역시 제외시켰다. 토목 정보는 김 위원과 연계하고 있었으므로 하는 짓이 점점 양아치로 변해가는데도 주변 사람들이 그가 하는 동료에 대한 모독과 비방을 듣고 따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원들이 늘어나자 8인실 숙소를 측량의 박 대수와 같이 썼다. 나보다 한 살 위인 그는 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김 위원과 소장과 같이 현대건설에서 오랫동안 일한 것을 자랑 삼았고 그들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는데, 측량 팀으로 부른 사람이 김위원이었다. 아침부터 현장으로 측량을 하러 다녀, 현장에서도 서로 왕래가 없었다. 새로 오는 모든 사람들은 나와 단둘이 인사를 하는 일이 없었다. 모두 김 도화를 거쳤기 때문에 나와는 인사도 없이 대면대면 했고 김위원만이 예외적으로 김 도화의 모함에도 나와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사원 직급을 가진 박대수를 직급에 대한 의식이 없는 나는 ‘박 선배’라고 부르는 것을 그는 좋아했다. 처음엔 자신이 현대에 근무한 햇수가 얼마인데 고작 사원 직급을 주느냐고 혼잣말로 푸념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대우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한 달여 가까이 지내본 결과, 권위의식이 없고 서글서글하면서도 걱정 없는 나를, 그 동안 김 도화에게 들어왔던 말과 다르자 친구로 지내자면서 그 동안의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