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크라

사하라 사막의 관문

by Massoud Jun


'불가능 해, 불가능한 일이야!'


라고 혼자 말하면서 훠이훠이 손을 휘저으며 이스마의 아버지는 모스크에 나타났다.


"므슈 준, 이 결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소중한 딸을 당신에게 줄 수 없어요! 나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내 딸이 내 말을 어길 경우에는 목을 잘라 버릴 겁니다! 내 사랑하는 딸을 죽을 때까지 내 품에 품고 살지라도 당신에게 줄 수 없어요!"


반대를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저렇게 과격한 표현을 사용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그 표현은 그만큼 청혼에 반대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리라! 덤덤하게 캠프로 돌아오면서 만약에 허락을 했더라면 내 반응은 어땠을까?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세상의 모든 환희가 가슴에 벅찬 감동을 주었을까? 이스마의 아버지와 나는 스킥다 해변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을까?


청혼 거절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에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란 전제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미, 결혼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버린 마음 한 편에 플랜 B를 활용하기로 했다. 이스마의 아버지는 실직 상태였고 그의 아들은 국제 안전자격증으로 스페인 회사의 안전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급여는 알제리 인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액이었다. 그만큼 그들의 업무에 관한 철두철미함에 대해서는 의심에 여지가 없었으므로 그들을 한 곳으로 채용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숙소로 돌아오자 이 차장은 강 박사와 김 과장을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 진수성찬을 대접했다. 통관 업무를 보던 업체 책임자도 불러 같이 마련된 자리였다. 대부분의 통관 업무를 끝낸 삼성은 여유가 있었고 현대는 이제 막 시작해서 강 박사가 총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지 통관 한국 업체와 한 자리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 언제나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대우 건설의 오랑 현장에 안전 과장으로부터 채용 제의가 들어왔다. 어떤 경로를 통해 나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메일 속의 내용은 한국 대우건설 본사에서 면접을 보라는 것이었다. 이윽고, 대우 건설이 진행 중인 부그줄 신도시 건설현장의 안전 부장에게서도 채용 제의가 들어와 때 아닌 특수를 누리는 와중에도 그들이 나를 알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그리고 부장 자리를 원했다. 아니면 직급이 없는 코디네이터로써 발주처로부터 협조를 이끌어 내거나 현지 하청 업체로부터의 절대적인 협력뿐만 아니라, 알제리 현지인들이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게끔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독립된 자리를 원했다. 그러한 경력이 없다하더라도, 지난 경험에 비추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했기 때문에 충분한 자신이 있었다. 더욱이 인성이 바탕이 되지 않는, 갑질의 대가들과 함께 일해 본 경험으론 명령체계는 한 두 사람에게 두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장비 도난이나 캠프에서 일어나는 도난 사건 등을 정직하고 충실한 알제리 친구들을 사귀어 방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업무 성과였다. 그들로 하여금,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고 좋은 추억을 쌓는 것이야말로 다음 프로젝트 수주에 기여하는 훌륭한 영업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시덥잖은 월급쟁이 생활로 한정된 업무에 얽메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한국의 업무 특성상, 그러한 자리를 주거나 맡길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알제리 현장을 잘 알고, 발주처의 성향도 잘 알고 있으므로 협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현대엔지니어링 임원 면접 때도 부장 자리를 원했지만 '부장 역할을 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없다'는 답변에 대화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대우와 인연이 없었다. 서울에 가서도 대우건설 사무실을 방문하지 않았던 것이다.





5년 전에 찍은 호텔, 레스토랑, 주유소의 아이들, 더 이상 이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김 수영은 비스크라 현장으로 발령 나 있었다.

현장 파견 직원 숙소와 프로젝트 초기 필요한 관리 지원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호텔에 머문다고 했다. 비스크라까지 김 수영을 잡으러 갈 목적으로 나는 먼저, 아인아르낫 프로젝트에 상기와 토마, 이 부장을 세티프 밖에서 만나 삼성 캠프에서 주문한 회를 같이 먹었다.


사무실은 모두 현장 안으로 이동을 했고 창살 없는 감옥처럼 현대엔지니어링 직원들이 밖으로 나가려면 현장 검문소 두 곳을 지나야 했다. 밤이 되면 현대 사람들은 사무실 뒤의 숙소에서 캠프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창살 없는 감옥처럼 오로지 일만 해야 하는 업무 태세를 유지했다. 모두가 퇴근해도 현장 내 철책 안에 갇힌 그들의 밤은 잠을 자는 것 외엔 오로지 업무 밖에 없다는 의지로 보였다.


한국의 대기업이 해외 프로젝트를 나가면 대부분 현장 밖에 캠프를 설치하는 것에 비해 현대는 현장 내에 생활 캠프를 설치하고 협력업체들은 외부에 사무실과 숙소를 따로 건축했기 때문에 업무와 휴식의 경계가 없는 것이 눈에 선했다. 프랑스인들이나 스페인 등의 유럽 국가들은 도시의 호텔이나 빌라, 리조트 등을 빌려 업무와 숙소를 완전히 배제하게 배치하여 현지인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 짓는 것에 비하면 출퇴근 시간의 경계를 허물어 계약서에 명시한 근무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보통 해외 프로젝트를 나가면 본사 근무보다 급여체계가 높기 마련인데 현대 엔지니어링의 연봉은 삼성 엔지니어링보다 높았다. 보통 해외 체류비용이 따로 나왔지만 현대는 급여에 포함시켜 현지 비용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돈을 찾아 쓸 수 없어 고생했던 기억이 끔찍했다.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주말이면 지중해의 유명 도시 베자이아나 프랑스인들이 건설한 콘스탄틴 등, 유명 관광지를 다닌다고 했다. 유럽인들은 개인 차량을 빌려 주말에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이해할 수 없는 관리 방법이었다.






이번에도 모하메드가 비스크라까지 수고하기로 했다. 세티프를 거쳐 비스크라까지는 340km로 5년 전에, 동서 고원 고속도로 지질 조사 업체로 알제리에 처음 왔을 때 만났던 바트나 도로를 만나 눈에 익은 곳을 지나며 익숙한 호텔에 들렀다. 점심을 먹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5년 전 사진을 보여주며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아이들 사진을 보며 이 아이들은 이제 성장해서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하면서 지난 사진을 보며 이 곳에서 한 달여 머물렀던 추억을 상기했다.


2011년 알제리 동서고원고속도로 지질조사 때 만난 호텔 주유소의 아이들과 직원들



오후 퇴근 시간 즘 되자 비스크라에 도착했다.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는 본격적인 관문인 비스크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로코까지 뻗어있는, 알제리 독립 전쟁의 격전장 아틀라스 산맥을 지나야 했다. 산맥을 깎아 만들어 놓은 도로를 지나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비스크라는 이스마가 대학을 다녔던 곳이라 더욱 특별한 이 곳엔 우기 때 발생한 계곡 주변으로 아름드리 야자수들이 숲처럼 둘러싸여 드 넓게 펼쳐진 황량한 사막과 어우러져 신비한 세계가 펼쳐졌다.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는 관문답게 벌써부터 후덥지근한 열기가 호텔에 가득했다.


사하라 사막의 신비한 풍경을 배경으로 영화 촬영을 온 무리가 호텔 수영장 주변의 바에서 한가로운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비스크라 프로젝트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한 1조 6천억의 복합화력 외에도 한화건설이 1기를 건설하기로 해서 선발대로 온 한국인 노동자들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호텔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았는지 호텔은 대부분 한국인들이 차지했고 알제리 프로젝트에서 만난 여러 협력업체 현지 소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이스마와 결혼하게 되면 아버지 역할을 부탁했던 이 소장도 있었다. 우리는 뜻하지 않은 만남에 뜨겁게 포옹했다. 이미 까맣게 변해버린 그의 알제리 생활이 벌써 7년을 넘겨간다며 웃음을 지었다. 강직하고 고집스러운 얼굴은 한국에도 자주 못 간다며 푸념했지만 왠지 그의 얼굴이 이스마의 아버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키와 어투가 비슷했다.


비스크라로 향하는 아틀라스 산맥을 깎아 만든 도로가에 솟은 야자수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비스크라로 넘어가는 사하라 사막의 관문엔 폭우로 생긴 계곡에 야자수가 멋지게 펼쳐 있다.


김 수용은 다른 호텔에 있었다. 저녁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현대엔지니어링을 쫓겨나다시피 나온 것엔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퇴사하는 일이야 당연한 것이었다. 자격증이 없어 발주처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고 일을 못해 쫓겨난 것도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현대가 원하는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과 발주처 모하메드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웠다. 그렇다고 나와 맞지 않으면 그뿐, 임 피엠이나 소장, 모하메드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다만, 김 수용이 현엔 사무실에서 만나 '여기서 뭐하세요'라고 조롱하고 휴대폰을 본부에 일부러 두고 온 것을 용서하기 힘들었다. 그 말에는 조롱뿐만 아니라, 현대 직원이 누구든 알제리 현장에 못 오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던 오만함과 자신과 아무런 업무 연관관계도 없는 내 퇴사를 마치 자신이 결정한 것처럼, 다 알고 있으면서 고의로 하는 말이었다. 퇴사할 때, 마지막 사내 전산망 메신저로 '대접 잘 받았으니 고맙게 돌려주겠다. 기대해도 좋다'라고 메시지를 보냈었다. 김도화를 손보기 전에 김수용을 손 봐야겠다고 먼 길을 찾아온 것이었다.


밤이 되고 저녁 시간을 끝내고 김 수용이 있는 호텔로 갔다. 그 곳에도 아르쥬 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삼영기업 직원들이 있었다. 호텔 주변을 확인하고 로비에 김 수용의 호실을 물었다.


그들은 아침에 떠나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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