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마르사 항구

엘 마르사에서의 시험

by Massoud Jun


*** 천국인가, 시험인가?



그중에, 처음으로 머리카락이 남성들에게 성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아니라, 네 헤어스타일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려주고 언제든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게 히잡을 쓰지 않기를 바랬다. 그녀는 내 말을 귀담아들으며 하소연하듯 코란에 적힌 율법이라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현대엔지니어링에서 같이 일했던 파티마를 예로 들며, 그녀는 한국에서 히잡을 쓰진 않지만 제사 지내지 않은 고기와 알코올이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아 그 어떤 한국인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혼자 식사한다고 말하고 설득하려 노력했다. 파티마는 점심으로 싸들고 간 샌드위치에서 고기와 안 먹는 것들을 다 덜어내고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같이 레스토랑에서도 식사를 같이 못할 정도로 알코올이 들어갔는지, 구성품이 무엇인지 꼬치꼬치 캐묻고 아주 한정된 음식만 먹었다.


여러 번 그런 일이 계속되자 나도 그녀와 같이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슬림으로서의 충실한 교리를 지키기 위해 점심에 행하는 그런 까다로운 음식 구별은,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을 오히려 알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려 두 손을 들게 만들었다.


그런 일 이후로, 그녀와의 접촉은 더 이상 없었지만 음식을 가려먹거나 투정을 부리면 혼났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스마를 설득했다. 한국에선 어른들이 차린 음식을 가려선 안되며 어른들이 주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기아와 빈곤은 방치하면서 신은 어째서 신성한 음식을 가려 먹게 하여 믿는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분하였는지 따졌다. 이윽고 만약우리가 프랑스에서 살게 된다면 제사 지낸 음식을 먹으면 되지만 프랑스에서 파는 이슬람 음식은 위생과 신선도 면에서 다른 음식과 구분된다고 설명하면서 그녀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녀는 그러면 제사 지낸 음식을 먹자고 했다.


라마단 이후, 3일 동안의 축제 기간 동안 알제리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즐긴 만찬


한국은 기독교의 반대로 할랄 음식이 전파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에서부터 여러 이슬람 국가 사람들이 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와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고 전라남도 지역의 어부들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로 이뤄져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왔지만 그들을 위한 기도 시설은 하나도 없었다. 한국식 노동문화에 동화된 무슬림들은 본국처럼 업무 중에 빠져나가 기도를 하거나 라마단 기간이라고 음식을 먹지 않는 일은 없었다. 술은 먹어도 고기는 먹지 않았고 무슬림을 위한 기도 시설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 완벽하게 한국 사회에 동화되었다.


그런 한국이지만 밤에 여자들이 돌아다닐 정도로 치안이 완벽하지만 천국처럼 변해야 할 이슬람 국가 알제리는 오히려 밤에는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이 전 세계 기독교 제1의 국가가 되고 교회가 비즈니스로 편의점만큼 많이 퍼진 것과 그들이 행하는 온갖 악행들을 먼 나라 이야기처럼 설명하면서 우리는 프랑스에서 살게 될 거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인들은 인종 차별주의자들이야, 나의 마쑤디! 큰 아버지가 일드프랑스에 사시는데, 프랑스는 살 만한 곳이 못된다고 항상 말씀하셨어!"


"이방인으로써, 프랑스어도 모르고 외인부대 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감동받았던 것은 프랑스가 다스렸던 식민지의 잔혹한 잔상이 아니었어. 한국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36년간 받았지! 우리 글과 풍습을 잃고, 총명하고 멋진 풍류를 잃어, 오롯이 우리의 것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야! 그런데 한국인들은 남북한 전쟁으로 초토화된 한반도에 새로운 국가를 반세기만에 건설해서 프랑스 근처까지 추격했어! 그런데 외인부대에 와서 식민지에 앞장섰던 그 잔인한 군대에 근무해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아주 절실히 깨달았어!


차별과 편견 없이 모든 국가의 병사들은 동일하게 대했고 부하들의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프랑스의 장교들은 솔선수범하면서 책임감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어! 복지와 사회제도는 훌륭했고 한 국가의 성장이 오랜 진통을 겪으며 서서히, 그러나 올바르게 성장한다는 게 무엇인지 배웠어! 오히려 내게 인종차별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심어준 것은 다름 아닌, 북아프리카인들이었어! 그러나, 알제리에 오고나서야 그것도 편견이라는 것을 깨달았지! 알제리 본토 사람들이 거칠고 위험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라져버린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훈훈한 정이 느껴진다는 것을 말이야! 그러기에 이스마도 세계를 경험해봐야 해! 세상은 너무나 넓고 다양하며 즐거운 것들이 너무 많아!"


"그래도 프랑스는 내게, 우리나라에게 너무 끔찍한 곳이야, 나의 마쑤디! 어디를 가든 나의 종교적인 신념은 절대로 버리지 않겠어! 약속해 줘, 나의 마쑤디! 알라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이스마의 종교적인 신념은 경험을 통해서 서서히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전지전능한 알라(하느님)도 이루지 못한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세계이며, 신념이 없다하더라도 자신이 구축하고 추구하는 행복의 모양이 종교적인 신념보다 못할 리 없었다. 그러므로, 차마 '알라를 믿으며, 그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5계명을 지킬 자신이 없다'고 말하긴 힘들었다. 아무리 사랑의 힘이 종교적인 신념보다 깊다고 믿는다 한들, 이성이 지배하는 의식과 마음이 시키는 말이 목구멍에서 마른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나의 알라는 너야!"

"......"

"......"


오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햇빛 아래 너무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었으나 초록 빛 바다는 바람한 점 없이 황홀했고 깊은 바다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부두의 테트라포트 한 켠에 자리 잡고 앉은 우리의 시선 속 동화속 그림 같은 풍경은 가슴 떨리게 아름다운 이스마가 옆에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마디 한마디 말들이 이 달콤한 황홀경을 깨트릴까 염려되어 나에게도 이스마에게도 타는 갈증에 목젖을 적셨다. 말을 하고서도 '아...... 씨! 이게 아닌데......'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예수의 심정이, 월계수 나무 아래 열반의 경지에 다다른 부처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아! 사랑에 빠지지 말걸!]


"좋은 답변이야! 하지만 부족해!"


[아! 신이시여! 왜 저를 고난에 빠지게 하시나이까!]


알제리 친구들은 내게, 결혼은 한 여자의 목줄에 메여,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야 하며, 하나도 벅찬데 어찌 두 세명의 마누라를 생각할 수 있겠느냐고 내게 꿈깨라는 메시지를 여러번 전했던 터였다. 그녀가 내 목에 매단 목줄을 끌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아련거렸다. '아! 알라 때문에 내 인생 종치는구나!'


El Marsa 항구


우리는 벌써 한국과 알제리, 프랑스를 주무대로 다니면서 각기 다른 문화와 종교를 경험할 것이기 때문에 불교인이 모두 머리를 깎고 다니지 않는 것처럼, 무슬림 여자들만이 히잡을 착용해야 할 의무는 어디에도 없으니, 마음으로 충실하자고 다시 제의했다. 그러면서 신혼여행을 메카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그럴 수 없다면서도 단호한 거절의 표현이 아니라 무슬림의 삶은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러면서도 자신 이외의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말했다.


"가만있자, 내 나이 47이니, 한 90살 되면 사랑에 빠지겠네~? 것도 알라가 남자에게 허락한 건데 그건 왜 안돼?"

"그건 무조건 안돼, 나의 마쑤디!"


우리는 오후가 될 때까지 한 곳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집에 직접 만든 거라고 간식거리를 가져와 같이 먹었고 이스마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오후 5시에 개종 의식을 했던 모스크에서 그녀의 아버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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