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4월이 되자 나는 프랑스를 들러 몽블랑을 혼자 올랐다.
2011년에 혼자 등반하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서도 등반을 완료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오래 남은 탓에, 불쑥 혼자 찾아온 나를 알펜 로즈 조 사장은 반갑게 맞았다. 보무도 당당하게 다시 등반을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정상 등극은 실패한 채, 알제리에서 먹은 양고기가 채워 놓은 배둘레햄 탓으로 돌렸다. 나이를 먹은 데다 그동안 몽블랑을 오를 정도로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현실을 의지 하나만으로 찾은 오만함이 빚은 예상된 실패였다.
알프스 몽블랑을 오르는 Le Signal( 르 시냘)
그리고 다시 파리로 귀환해, 오를리 공항에서 저가 항공 에글 아쥐르를 타고 안나바에 도착했다. 새신랑 우사마가 나와 기다려 주었다. 삼성엔지니어링 이 차장이 흔쾌히 숙소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외인부대가 만드는 와인과 쏘씨송을 선물로 가져갔다. 그리고 현대엔지니어링 본사에서 보았던 파리에서 유학하고 박사학위를 딴 강박사와 김 과장이 통관을 위해 잠시 머물 수 있게 이 차장에게 부탁해서 캠프에 숙소를 얻었다. 정리 단계에 있는 캠프는 많은 인원이 티미문 프로젝트를 위해 현장으로 떠나 덩그러니 썰렁했다.
저녁을 강박사와 같이 캠프에서 꽤 먼 벨뷰 호텔 레스토랑에 예약했다. 이스마를 소개해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강박사의 동생도 하시 마사우드에서 알제리 여성과 만나 결혼을 했던 터였다. 알제리 여성과 결혼한 한국인 넷 중에 둘이 현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스마는 오후 5시 이후면 집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특별히 나타났다. 이 번 알제리 행은 이스마가 불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로부터 허락을 받기로 한 시간이 벌써 10개월이나 흐른 뒤였다. 내일도 업무가 있었지만 이스마의 공구장에게 미리 연락해서 하루 데이트를 위해 시간을 비워달라 요청했었다.
김 과장이 불어를 못했던 관계로 옛 동료들과 영어로 대화가 진행되자 나는 침묵했고 김 과장과 강박사가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영어가 전공인 이스마도 대화에 어색함 없이 화기 애매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이스마는 저녁을 먹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으로 보여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얘는 머리에 뭐 이런 걸 썼노?'하고 신기해했다. 설명하기 뭐 해서 '어머이, 거기는 햇빛이 뜨겁다 아입니까! 참말로!'하고 웃어넘겼다. 평생 외국 한 번 나가보지 못한 어머니에게 프랑스를 구경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었다.
스킥다 해변의 호텔 '벨뷰' 테라스
모하메드는 이번에도 우리를 위해 수고를 해주었다. 밤문화 탐방을 위해 우리에게 안내한 곳은 절벽을 깎아 만든 근사한 바였다.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 남녀 무리가 입구를 가득 채우고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고 우리는 안쪽에 앉아 있는 세 명의 젊은 여성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 곧 축구 경기를 보던 그룹의 탄식 소리가 들렸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이봐 친구들! 내가 알제리가 이길 수 있게 응원해줄 테니 따라 할래?"
"좋아, 중국인! 네 응원을 보여줘 봐!"
"벌써, 한 마디 말로 내 응원 의지를 없애버리네! 얘들아, 난 한국인이야! 한국인 해봐!"
"한국인!"
"좋아! 좀 약해! 나의 멋진 등장에 여친 뺏길까 봐 시기와 질투할 남자 애들 목소리 크게 안 할래? 다시 한번, 나는 뭐?"
"꼬레앙!"
"좋아 좋아! 으흐흐, 지금부터 내가 왼손을 밑에서 위로 올리면 왼쪽에 있는 너희들이 우~~ 하면서 목소리를 키우는 거야! 자, 시작!"
애들이 금방 따라 하며 분위기에 휩쓸렸다. 두 손을 땅의 기운을 받아 끌어올리듯이 하자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양쪽에서 우~~ 하고 소리를 냈다.
"이 번엔 알제리! 하면 1, 2, 3 외치고 박수를 치는 거야, 앞 번과 꼭 같애, 알제리!"
"1, 2, 3, 짝짝짝! 알제리! 1, 2, 3, 짝짝짝! 우~~~ 우~~~ 알제리! 1, 2, 3 짝짝짝!"
응원이 리듬을 타자 신난 애들은 축구는 제쳐놓고 내 동작과 구령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목소리가 사래에 걸려 기침을 콜록거리자 애들은 재밌다고 배를 잡았다.
"알제리에 살자!"
"알제리에 살자!"
"굿! 알제리 승리!"
자리로 돌아오자 열화와 같은 성원이 이어졌다. 옆에 앉아 있던 여자 셋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나중에 애들이 다시 나를 불렀다. 다시 한번 떠들썩한 응원을 마치자, 운짱을 해주던 모하메드가 '현대엔지니어링은 소중한 자산을 놓쳤어'라고 말했다. 늦은 시간에야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