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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킥다 방문

by Massoud Jun



소장은 내게 삼성 엔지니어링 현장에 남아 있을 철골을 구할 수 있을지 철골 전문가와 스킥다 방문을 지시했다. 연세가 지긋한 철골 전문가는 말이 별로 없었지만 사원이란 직급을 달고 있었다. 그런 장인들을 보면 마음 속에 깊은 존중이 우러났다. 현대 같은 대기업에서 세계를 다니며 이뤄낸 성과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 일구어 놓은 전문가라는 직책은 그의 삶을 공경하게 만들었다.


마무리를 위해 삼성엔지니어링 스킥다 현장에 남아 있는 전무와 미팅은 잡고 구체적인 자재 구입 내용은 전문가가 삼성 자재 창고 관리자와 논의하면 될 터였다. 이번 미션을 끝으로 나는 3개월 비자가 만료되어 귀국해야 했다. 귀국과 동시에 2주 유급 휴가가 내정되어 있었다.


마침 콩스탕틴 비행장에서 알제 공항으로 돌아가는 귀국 편 비행기가 확정되었고 다음 날 귀국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오전에 볼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알제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시간은 여유가 있었지만 스킥다에서 콩스탕틴 공항으로 가는 길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삼성 관리부에 메일을 보내 아침에 미팅 약속이 잡혔다. 마무리를 앞둔 현장을 총괄하는 상무와 수석이 나를 반겼다. 그들은 업무 외엔 대부분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검소한 임원들의 겸손한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자신감이 넘쳤던 현장 공사 총괄, 서 상무도 토목 하도 업체의 새파란 과장이 대들어도 아무 말 없이 듣던 일이 새롭게 다가온 것처럼, 현대엔지니어링의 임직원과 전적으로 비교가 됐다.


짧은 미팅을 마치고 철골 전문가가 자재 창고로 떠나고 나는 이스마를 만났다. 내가 온 사실을 안 그녀는 만면에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이스마의 아버지가 고려해보겠다고 다음을 기약한 내용은, 이스마도 부정적으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허락한 일이라 그 이후의 일은 생각지도 못한 채, 한국인 마쑤드가 이스마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는 회사에서도 마을에서도 금방 소문이 났다. 우리는 현장 사무실 밖의 휴게소에서 추후 일어날 일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한 편, 현대에 알제리 여성과 결혼한 김 수용의 아내가 임신한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태어 날 아이의 혈통에 대한 관심이 많아, 결혼 선배인 김 수용을 롤모델로 삼았다.


3주째 금식 중인 이스마는 많이 야위어진 모습이었다. 대부분은 라마단 기간에 살을 빼고 라마단이 끝나고 3일 동안 벌어지는 축제 기간엔 진수성찬으로 식사를 해서 금방 살이 쪘다. 남자들은 눈의 띌 정도로 표시가 났지만 여자들은 그 와중에도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는 모양인지 대부분 요가 학원에서 몸매 관리를 한다고 했다.


알제리 친구 빌랄리 가정에 라마단이 끝나자 초대받아 방문했다. 평상시보다 거나하게 차려 낸 음식은 한국인 손님이 왔다고 잔뜩 정성을 들였다.


철골 전문가는 일을 마치고 우리가 대화 나누는 휴게소로 와서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 잠시 서성거렸다. 오늘부터 내 휴가가 시작된다는 말을 전하고 우리는 자리를 떴다. 차 안에서 나는 곧장 골아떨어졌다. 성격 좋은 운전기사가 콩스탕틴 공항에 도착했다며 나를 깨웠을 땐 이미 이륙 시간이었다. 그러나 알제리는 빈자리가 있으면 출발하지 않는 일이 잦았으므로 후다닥 공항으로 뛰어 들어가 확인했지만 비행기는 랜딩 준비를 마친 후였다.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기사는 돌아오자마자 내가 차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공항에 늦은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비난을 시작했다. 늦은 이유를 탓하지도 않았는데 비난이 내게로 오자 황당해서 빡친 내가 열을 받기 시작했다. 사람 좋게 서글서글하던 그의 이미지가 일그러지며 차량 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콩스탕틴에서 비행기를 놓쳤다고 보고하고 숙소에 도착하자 모두들 저녁을 마치고 회의를 준비 중이었다.


식당에서 이것저것 찾아 밥을 비벼 먹고 있었다. 회의에서 빠져나온 김 수용이 기사들 월급을 자신이 주는데 왜 자기에게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질타했다. 밥을 먹다 말고 가만히 그의 얼굴을 한 번 들여다보고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용 부장을 비롯해 김 위원에게도 전달했기 때문에 모를 리가 없었다. 밥을 먹다 말고 아구창을 날리려다 참은 거였다. 식사를 끝내고 차를 타고 세 시간 걸려 알제 사무실 겸 숙소에 도착해 알제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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