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마단 기간
현장은 한 달간의 라마단에 돌입했다.
나는 이슬람 개종 사실을 감추고 숙소에 김 성동 부장이 냉장고에 비치해둔 맥주를 얻어 마셨다. 그는 나와 단 한마디 대화도 없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베란다에서 밖을 보며 담배를 피우자 김 수용이 가만히 나를 안아 안으로 끌어들였다. 라마단 기간이라 이웃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였다. 알제리인들의 라마단을 나는 '현상(phénomène)'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슬람에서 정한 5 계명 중,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시간(새벽 세 시부터 밤 9시까지) 체내에 아무것도 흡입할 수 없고 성행위뿐만 아니라, 폭력, 화, 탐욕, 중상모략까지도 금지되는 것을 라마단이라고 불렀다. 외인부대에서 아프리카 차드와 지부티에서 라마단을 두 번 경험했지만 이슬람 국가인 것은 알았어도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아, 라마단이 무엇인지, 이슬람에 대한 것도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 기간 동안 외출이 금지되었거나 사람들이 없는 곳만 찾아 오지 탐험을 다녔는지도 몰랐다.
알제리에서는 세 번, 합하면 다섯 번의 경험이었다. 2012년, 3개월간 알제리 동서 고원 고속도로 프로젝트의 지질 조사 때 처음으로 현장에서 라마단을 실시하는 무슬림들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리고 금식 기간 동안 의무를 시행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 전쟁 수행 중인 군인(노동자 포함)
- 장거리 여행자
- 어린이나 노약자나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
-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여성
- 월경 중인 여성
- 중병 환자도 포함됐다.
라마단 기간만 되면 노동자들이 현장에선 곳곳에 널브러져 잠을 자거나 현장에 있어도 정상적인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을 쓰지 못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삽의 3/1도 채우지 않고 찔끔찔끔 삽질을 하는 그들의 작업 특성상, 라마단 때는 그런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 한국인들은 흡연장소나 식사 후, 휴게소에서 쉬려 해도 의자를 차지하고 널버러진 노동자들을 보며 한 마디씩 욕을 했다.
그러나, 발주처의 엔지니어나 임직원들은 금식을 하고 있다는 의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절제와 정신력이 강했고 그 와중에도 일상과 다를 바 없이 일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그런 양면적인 풍경은 사실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금식은 누군가 지켜보지 않으면 확인하기가 힘들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멀쩡했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현장을 벗어나 어딘가에서 널브러진 노동자들은 대부분 젊거나 어렸다. 누군가 제지라도 해야 했지만 불성실하고 혐오스럽게 벤치를 차지하고 잠을 자는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거나 욕을 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그런 노동자들과 하루 종일 같이 일할 수는 없었다. 라마단 기간 동안 현지인들을 출근시키지 않게 하거나 오전만 근무하고 퇴근시키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작업 중, 현장 이탈이나 불성실한 직원들은 징계안을 마련하는 것이 라마단을 핑계로 현장이 멈추다시피 하는 몰상식을 피할 수 있었다.
광활한 사막에 양탄자를 깔고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의 멋진 모습 이슬람 국가에선 기도하는 무슬림 앞을 오가거나 금식하는 사람들 앞에서 음식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예의에 어긋난 짓으로 간주됐다. 따라서 그들과 같이 일하는 비무슬림 외국인들은 본의 아니게 그들 앞에서 담배도 음식도 먹을 수 없어 곤혹을 치러야 했는데, 어딘가에 짱 박혀 담배를 피우다가도 담배 연기를 보고 누군가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많은 음식점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뜻하지 않은 라마단 동행은 내게도 힘들고 눈치 보이는 기간임엔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너는 무슬림이 아니니 자신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네가 진짜 무슬림이다'라고 답하며 엄지 척을 세웠다.
라마단과 함께 대민, 대관 업무를 보고 있던 나는, 만나던 사람들과 라마단 인사를 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농담 삼아 이슬람 세계의 라마단 기간에 들어온 것을 환영했지만 약간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면서도 그들의 입에서 나는 냄새를 피할 수 없었다. 일상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생활에, 주변에서 커피 한 잔 마시려 해도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탓이었다.
현대에 채용된 알제리 기사들은 말이 없었지만 그들 앞에서 눈치 보여 준비한 물을 마실 수도 없었다. 그들은 물로 입 안을 헹구어도 마시지는 않았다. 대식가인 내게 라마단은 괴로운 기간임이 분명했다. 자기 일과 종교적인 율법에 충실한 이스마의 잔소리가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후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