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사마의 결혼식
마을 회관 같은 우사마의 결혼식장엔 동네 언덕배기 같은 곳에 있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우사마와 포옹하고 남자들은 신부를 볼 수 없느냐고 묻자, 여자들은 다른 편에서 피로연을 펼치고 있고 가서 볼 수 없다는 말을 전했다. 과연 우사마의 피로연 자리엔 대부분 현장에서 일하던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가운데 우사마의 어머니가 여성 가족들과 함께 미혼인 우사마의 친구들 손에 그림을 그려주고 있었다. 그 그림은 미혼 남녀가 빨리 결혼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했다. 그때서야 북아프리카 여성들이 손에 그린 손등에 그린 그림의 의미를 이해했다.
가운데 아래 우사마, 오른쪽 반 백이 동일산업에서 안전관리를 하던 왕재수
남자들끼리만 모여 춤을 추는데, 여자들 쪽에선 아들을 둔 엄마들이 신부의 하객들을 보며 은밀한 맞선을 제안한다.
새신랑 우사마,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으다.
외간 남자 앞에서 화장을 하면 히잡을 쓸 수 없고 여성의 머리카락을 보여줄 수 없는 이슬람 특성상, 마을 회관 가운데에 차양을 쳐서 따로 놀았다. 신랑신부 입장이나 주례사 같은 이벤트 없이 따로 따로 춤을 추고 놀았다. 음악 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몇 번 가봤던 클럽의 음악소리처럼 귀가 아플 지경인데도 이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음악이 바뀔 때마다 춤을 추는 단조로운 파티였다.
술과 고기가 없으므로 취해서 흔들리는 사람도 없었다. 참석했던 한국 사람들은 초기 단계만 보고 돌아갔다고 했다. 축제는 알콜과 여자인데, 제일 중요한 두 가지가 빠진 축제가 무슨 의미인가! 오호통재라! 김빠진 콜라를 들이킨 것처럼 맛을 잃은 파티장을 보는 것 같았다. 축의금을 전달하고 싶어도 접수하는 곳이 없어 단조롭고 떠들썩한 파티는 계속되었다.
알제리에서 결혼식은 일주일간 계속된다고 했다. '동서고원고속도로 지질 조사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제법 큰 도시의 호텔에 머문적이 있었다. 마침 호텔에서 내려다 보이는 집 마당에서 성대한 결혼잔치가 벌어졌는데, 말을 타고 총을 들고 전통 옷을 입고 집 마당까지 들어와서는 하늘을 향해 총을 쏘면, 혀를 차면서 소리를 내는 알제리인들 특유의 괴성으로 모두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음악 소리는 과하게 컸지만 결혼 잔치는 모두에게 축복을 주었기에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구경을 나왔다. 그러나, 여자들은 구경도 할 수 없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였다. 젠장!
집 마당에 텐트를 치고 하객들에게 음식과 술을 대접하며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던 정감 가는 전통이 사라진지 오래라, 한국의 혼례의식도 마을 사람들이 상부상조의 전통을 나누고 예쁜 새색시와 입이 귀에 걸린 새신랑을 보는 마을 잔치가 그리웠다.
정해진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는 현대 결혼식은 비즈니스로 변해버린 탓에 정감도 옛 것에 대한 그리움도 찾아볼 수 없던 아쉬움이, 우사마의 결혼식도 알제리 전통의식을 찾아 볼 수 없는 아쉬움을 주었다. 이런 파티에 익숙하지 않으면 오래 있기 힘들었다. 옛스럽고 사람들의 정이 넘치는 중에, 선남선녀들의 뜨거운 눈빛이 처절한 전장처럼 오가는 사랑의 쟁탈전! 온 동네가 떠들썩 하게 잔치를 벌이던 그런 그리운 모습이!
밤이 내린 시간에도 같은 패턴의 파티는 계속되다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마을 곳곳을 다니며 차량을 빵빵거리며 돌아다니다가 한 곳에 내려서 다시 춤을 추고 경적을 울렸다. 지나던 차량들도 열심히 경적을 울리며 차량이 정체되어도 차에서 내려 같이 춤을 추고 가기를 반복했다. 프랑스의 결혼 풍습과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요란했다. 프랑스의 결혼식은 조용히, 돈 들이지 않고 시장이 조용하게 결혼 신고서에 사인해주는 것으로 끝나고 나머지는 하객들이 알아서들 즐겼지만 아직까지 서로 간의 정이 남아 있는 이슬람의 축제는 술이 없어도 요란했다.
모하메드와 나는 그들 무리에서 빠져 삼성 캠프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