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순서대로 일렬 횡대로 사람들 뒤편에 들어가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밀착을 했다. 모스크 내부 기도실이 가득차고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밖에 양탄자를 까는 모양이었다. 기도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하는 대로 아무런 의미도 모르면서 따라 한 기도는 채 5분도 못되어 끝났다. 기도를 하는 중엔 이맘(목사)의 한마디 말도 없이 끝난 5분도 채 안 되는 기도 시간이 정말 다행이었다. 헌금을 요구하지 않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친구의 간청에 교회에 따라 갔다가 들어갈 때나 나올 때, 헌금함 옆에 서서 무언의 강요를 하던 목사의 웃는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야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바닷가 마을에서 면 소재지로 이사를 했었다. 다섯 채밖에 없는 바닷가 시골 마을은 조그만 꼬맹이가 돌아다니기엔 그만그만한 동네들이 십리길 근처라도 너무나 먼 거리였고, 언덕 너머에 있는 친구들 집도 어둠이 너무 무서워 돌아다닐 수 없는 무서운 마을, 바닷가 촌구석에서 면 소재지로 나가자, 언덕배기에 하나 있던 성당에 초딩 친구들 따라 갔던 것이 요한이란 세례명까지 갖고 있었다.
집보다 넓은 성당 내부와 밤에도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뛰어놀 공간, 동네 형 동생들과 동네 여자애들까지 성당에서 성모 마리아의 품 안에 모일 수 있었던 그 기억은, 종교에 대한 신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준비된 각종 연극과 찬송가 등으로 학교만큼 큰 존재로 자리 잡았다.
주말이 되면, 진주 칠암동 본당에서 오는 외국인 신부님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종교적이되 전혀 알 수 없는 성경 공부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신부에게 바치는 고해 성사는, '지경이를 짝사랑해서 죄를 지은 것 같다'느니, '친구들과 싸워 못된 놈들 혼을 내주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는 얘기에도 성스러운 모습으로 들어주고 죄를 사해 주던, 정말 철부지 동네 꼬맹이는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거대한 파티를 하는 성당의 일요일 미사를 푸짐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좋아했다. 미사를 드리는 주말은 늘 잔치가 있었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공동체라는 소속감도 모르면서 마냥 좋았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대회랑
그렇게 프랑스로 건너 가, 20년간 프랑스 자전거나라 가이드와 지점장을 겸하면서 로마교황청은 물론, 터키에 있다는 성모 마리아의 집, ‘에페소’까지 방문한 적이 있는 여행 전문가에 종교사까지 두루 섭렵한 잡학다식 한 종교 전문가까지 되었던 관계로, 믿을 수 없는 것이 종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종교에 대한 역사 공부는 신앙에 대한 신뢰보다 불신으로 다가와 깊고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프랑스 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교회 근처를 얼씬거려본 적이 없었다. 유럽의 성당들은 위대한 건축물로, 한국의 교회는 사람들의 맑은 정신을 갉아먹는 희생 없는 신앙, 비즈니스화 된 사회 악이란 의식이 가슴 속에 자리잡게 되었던 것은, 만났던 한국 교회 사람들 대부분은 비 종교인과 비교되게 위선과 거짓, 권모술수와 그들끼리의 공동체 속에서 높고 강력한 비상식의 성을 쌓아놓았다고 믿었다.
프랑스의 숱한 아름다운 고딕건축 문화 유산들인 성당들은, 대성당 노트르담만 제외하곤 거의 모두가 신도들이 찾지 않는 아름다운 고딕 건축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파리의 성당들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유년시절, 종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 때 언덕배기의 조그만 성당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궁륭들의 웅장함과 파이프 오르간이 온 몸을 감싸는 듯한 전율에, 채광창을 통해 들어오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은 나약한 인간이 절대자인 신을 받아 들이는 신성함은 마치 천국인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세계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종말을 고하고 어쩌다 한국이 새로운 개신교도들의 신천지가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편의점보다 많은 교회와 말끔히 차려 입고 찬송가를 부르거나 복음을 전파하는 신도들의 위선적인 언행을 보는 일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내가 모스크에 와서 알라를 숭배하는 기도에 무릎을 꿇고 조아리면서도 복잡한 마음이 교차했다. 사랑을 위한 위선자의 모습이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스스럼 없이 우리에게 접근 한 이유는 혹시 한국인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아이들은 한류 광팬이었고 조숙했기 때문에 접근해서 스킨십에 거리낌 없었다.
이맘은 마이크를 잡고 몇 마디 말을 하더니 갑자기 모하메드가 나를 이맘에게 데리고 나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내게 익숙했다.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한 파리 유명 관광지에서 숱한 여행객들을 상대로 투어를 다닌 경험과 여러 프레젠테이션 경험이 있었으므로 마이크를 맡긴다고 해도 종교사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시간과 조건이 허락한다면, 삼성엔지니어링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알제리 곳곳에서 알제리 정부와 계약관계를 맺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러 왔으므로 여러분들의 협조를 바란다거나, 중국인으로 부르거나 ‘니 하오’라고 인사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실례가 된다는 매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 자리는 내가 개종을 한다고 어떤 의식을 거행할 자리였기 때문에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었다.
“네 예전 종교가 어디였는지 물어”
“가톨릭”
“그러면 지금 이슬람으로 개종하겠느냐고 물어”
“네”
“다음과 같이 따라 하래!”
“아쉬아두 안나 라 일라 하 일랄라, 아쉬아두 안나 모하메드로스 룰라(알라 외의 신은 없으며 모하메드가 진실한 사도임을 선언합니다!”
사람들이 ‘알 함두릴라(신께 찬미합니다)!’하고 탄성을 자아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하나씩 나와 나에게 포옹하고 지나가며 ‘알 함두릴라’하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포옹을 하며 지나가다가 어떤 나이든 사람은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았다면서 향수를 건네주었다. 다른 이는 칸두라(원피스 같은 무슬림 남자들의 대표적인 복장)를 주었고 누군가는 머리에 쓰는 오마니를 건네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밖으로 우르르 몰려 나온 사람들 속에서 큰 키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사람이 내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가 누군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쏘나트락 생산장 이디르였다. 언제나 그랬듯 두 팔 벌려 다가가 가만히 포옹했다.
“오랜만이야 마쑤드, 그때 왜 갑자기 사라진 거죠?”
누군가 내 존재를 생각해준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짧게 있다 간 곳이지만 생산장 같은 사람으로부터 기억되는 것도 그렇고 나의 재등장을 반겨주는 것도 그랬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우리의 재회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때 이후에 마쑤드의 존재를 삼성에 물어봐도 모르더군요! 이번에 다시 온 건가요?”
“이번엔 세티프에 복합화력 발전소 프로젝트에 현대엔지니어링 소속으로 왔습니다, 무슈 이디르. 가급적 자주 뵈러 오겠습니다. 조만간 이슬람과 결혼할 것 같으니 참석해 주시구요!”
“오 그래요? 누가 행운의 여신인가요? 마쑤드처럼 사람 마음을 훔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을 차지한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죠!”
“삼성에서 같이 일했습니다! 조금 후엔 그녀의 아버지를 이곳 이맘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 그래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거군요. 마쑤드를 만나면 그녀의 아버지도 좋아할 겁니다. 행운을 빌어요!”
이디르가 악수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현대 엔지니어링과 계약을 맺은 대표가 아는 체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