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종 의식
모하메드는 회사 차라면서 신형 폭스바겐을 끌고 나타났다. 삼성엔지니어링 프로젝트 구매 담당 현채 직원이던 모하메드는 프랑스 공구업체 힐티 지사에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대부분 우사마와 친구 사이라 일부러 수고를 해준 거였다. 세 시간 걸려 도착한 스킥다는 고향처럼 포근했다. 삼성 캠프로 들어가 숙소를 배정 받고 이 차장을 찾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현대에 얘기를 하고 싶어도 말이 나올 것 같아 차량을 지원해달라는 얘기를 할 수 없었다. 이 부장에게만 결혼식에 참석한다고 말했던 터였다. 마음에서 멀어졌지만 급여를 받더라도 소속감이 사라져 가고 대기업의 조직력과 행정력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커녕, 오히려 혐오감이 한 가득 마음 속에 자리잡은 상태였다.
임 피엠은 내게 조직생활을 해보지 않았다고 단언했지만 그런 조직 생활은 엄연히 잘못된 거였다. 한국식 조직생활은 일제 식민치하 군대식 모델이었다. 매니저가 책임져야 할 의무를 부하들에게 책임전가하고 부하들에게 일감을 몰아주며 비열한 아부로 라인을 잘 타야 살아남는 조직 생활이 정상일 수 없었다.
프랑스 외인 부대라는 군대조직은 한국 회사보다 훨씬 편하고 자율적이었으며 심지어 복지에 있어서는 한국 군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더욱이 매니저가 책임 맡은 일을 부하들에게 책임 전가하거나 회피, 비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일들은 양아치 병장들이나 하는 짓이었고 질 나쁜 동료들이나 하는 짓을 현대엔지니어링에서 만난 자들은 일상으로 삼았다. 그들과 떨어져 나오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해수욕장의 쌍둥이 아이들
우리는 해수욕장이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손님이라곤 하나도 없는 근사한 지중해 호텔에 카페 테라스 마주 앉았다. 뜨거운 지중해성 기온이 8km나 늘어선 스킥다 해수욕장을 가득 메운 인파를 따뜻하게 감싸고 가족끼리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함성이 가득한 해수욕장은 의외로 시원했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햇빛의 강렬함과 조화를 이루는 평화로운 주말이 모든 근심을 잊게 하는 듯, 무심하게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해수욕장에서도 긴 치마와 히잡을 착용하고 있었다. 비키니를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해수욕을 즐기는 여자들은 대부분 옷을 입고 물 속에 들어갔다. 아르쥬 해수욕장에서 본 이후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이러한 풍경을 부질 없다 여기면서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이슬람 남자들은 비 이슬람 국가에 가면, 살갗을 드러내고 마음껏 성적 어필을 하면서 활보하는 여성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여성들의 머리카락과 피부가 성적 흥분을 유도한다 하여 히잡과 부르카를 입히는 그들의 나라 여자들에게 씌운 알라의 말씀이, 속 좁은 남자의 편협한 시각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아 남자 무슬림들은 알라에게 죄의식을 느낄까?
낯선 땅, 낯선 종교와 문화 속에 들어와 있는 현실이 과거와 연동되어 빠르게 머리를 스쳤다. 유년시절의 고향 경남 사천, 프랑스 외인 부대에서 만난 황폐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아프리카 챠드와 지부티, 그리고 프랑스의 위대한 건축물들과 너무나 아름답게 조화로운 자연과 조화를 이룬 유명 관광지, 그리고 언제나 좋을 것 같은 사람들과 부대낄 것 같던 조선소의 악몽이, 현대엔지니어링으로 이어지는 영상을 알제리 스킥다의 해수욕장에서 짧은 영상으로 스쳤다.
이윽고 나풀거리듯 이스마가 나타났다. 가볍게 포옹하고 자리에 앉았다.
알제리 여성들이 외국 남자와 어울려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거니는 모습은 결혼 전에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이스마도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호텔에 오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마음을 허락한 탓인지 용기를 낸 모양이었다. 모하메드는 우사마가 짜놓은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좀 있다 오후 두 시에 잔다르크 모스크에 가서 개종 의식을 하고 다섯 시에 이스마 아버지와 그 모스크 이맘이랑 만날 거야. 끝나는 대로 마을 회관 결혼식에 가서 파티를 할거야. 결혼식이 오후 두 시부터 시작되어 삼성엔지니어링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여럿이 올 거야. 결혼식에 술과 돼지고기는 없으니 유감이야, 마쑤드!”
모하메드가 그렇게 말하고 이스마와 같이 웃었다. 이스마는 오늘 모스크에서 진행할 개종 의식에 관심이 많았다. 어쩌면 그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나타나 내게 용기와 동기부여를 주려는 의도일수도 있었지만 인생의 동반자로써 의지로 보였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행복한 미소가 한 가득 마음으로 전해졌다. 우리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이스마와 헤어진 다음, 우사마가 말한 모스크로 향했다. 여자는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지 않았다. 종교와 전통이 여자를 차별하는 모양이었다.
스킥다(Skikda) 타이타닉 호텔 앞 해수욕장
모스크로 들어서자 시선은 일제히 나를 향했다. 삼성엔지니어링에 다니는 말레이시아나 스리랑카 등에서 온 무슬림들이 나의 등장을 기이하게 바라보았다. 짧게 다녔던 곳이었지만 한국인이 공식적으로 모스크를 찾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의 그들뿐만 아니라 알제리 사람들의 시선도 똑같이 느껴졌다. 모하메드는 나를 목욕탕처럼 생긴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얼굴에서부터 발까지 씻던 사람들이 나의 등장에 눈을 떼지 못했다.
“마쑤드! 들어가기 전에 씻어야 해. 나도 안 해본 지 오래 되었는데 너 때문에 해야겠네. 기도 못한지도 너무 오래되었는데, 반성해야겠어!”
“그럼 내가 길 잃은 양을 천국으로 인도한 거네! 출발이 좋다!”
우리는 같이 웃었다.
“기도 전에 씻는 의식을 ‘우두’라고 해. 먼저 씻기 전에 ‘비스밀라(신의 이름으로)라고 말해야 해. 그리고 양 팔을 걷어 올리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이렇게 세 번 씻어. 따라 해 봐”
모하메드는 바가지에 물을 떠서 오른 손을 세 번 씻고 왼손으로 바꿔 세 번을 씻었다. 그리고 오른 손으로 물을 한 모금 떠서 입과 코로 동시에 넣어 헹궜다. 이 행위를 모하메드는 신기하게 한 번에 했지만 나는 따라 할 수 없어 여러 번 토하듯 기침을 해댔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지만 염려스러운 표정도 깃들였다. 물은 점점 지저분해지는 것이 느껴지고 입과 코를 헹구니 콧물도 나왔는데 익숙하지 않으니 곤혹스러웠다. 콧물을 사람들 보는 앞에서 씻어내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있는데 엄마가 아이 코를 풀 듯 흐르는 물에 버렸다. 사람들의 행동이 빨랐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배웠던 문화였다.
“이번엔 얼굴을 씻어. 이렇게 귀도 씻어야 해”
모하메드는 오랫동안 행하지 않았다면서도 너무나 익숙하게 세수를 하고 젖은 손으로 귓속을 후벼 팠다. 그리고 손만 씻었던 팔을 들어올려 다시 세 번씩 번갈아 씻고 이번엔 눈썹 위부터 머리카락을 뒷목까지 두 번 쓸어 넘겼다. 그리고 발을 씻기 시작했다. 손과 마찬가지로 왼손으로 오른 발을 세 번 씻고 왼 발로 바꿔 씻었다. 그리고 물기를 닦는 의식 없이 그대로 신발을 신고 옷을 가다듬고 한창 기도가 진행중인 모스크로 들어갔다.
손을 씻는 과정은 예술이다. 언제부터 시작하는 지는 모르나, 평생을 그렇게 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