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겸 숙소

회식

by Massoud Jun


*** 회식


금요일인 내일부터 토요일까지 주말이었다.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조수를 하던 우사마가 결혼식에 초대를 해서 가볼 생각이었다. 우사마는 결혼준비로 바쁜 와중에, 모스크의 이맘에게 개종을 위한 약속을 잡았고 그 날 저녁에 이스마의 아버지와 약속을 잡았으니, 스킥다에서 픽업을 오겠다고 상기된 목소리로 전해왔다. 즐거울 일 별로 없는 현대 프로젝트는 점점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김 위원과의 업무는 즐거웠다.


저녁마다 불쑥불쑥 방으로 찾아와 이것저것 코치를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애착이 갔다. 그러나, 건강과 두 원흉을 이유로 조만간 있을 비자 만료일에 한국으로 가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발주처에선 본격적인 공사를 위해 발주처에서 요구한 직원들의 이력서와 각종 증명서를 요청했다고 김 수용이 공문을 전했다. 1개월 넘게 남은 이번 비자 만료일까지 제출하지 못하면 현장에 돌아올 수 없었다. 기본 동일한 영역의 현장에서 10년 동안 일했거나 자격증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통역은 그러한 자격증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에 관한 권한은 발주처의 역량이었다.


박대수와 술자리가 마련된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사를 끝낸 뒤에 자연스럽게 마련된 술자리에 관리 부장이 가져 온 소주와 맥주를 내놨다. 알제리에도 주류를 판매하는 곳이 있어서 원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알코올은 인생의 즐거움 아니던가! 또한 알코올이란 단어는 아랍어에서 온 말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달로 인한 사냥 나갔다가 목숨을 걸 위험이 사라진 시대, 맥주의 발견으로, ‘인생의 즐거움 그것은 알코올, 인생의 슬픔은 전쟁’, ‘결혼은 기쁜 것, 그러나 이혼은 더더욱 기쁜 것’, ‘인생은 짧다. 그러니 쓰자! 그러나 금방 죽지 않으니 아껴 쓰자’는 금언이 현재까지도 쓰여지고 있었다. 이슬람 국가에서 알코올이 금지 된 것은, 뙤약볕 아래 햇빛에 취하고 술에 취해 불상사가 생긴 것에 비롯된 것이지 코란에 정해진 것이 아니라 믿었다.


“전과장, 정말 괜찮은 거지?”


이 과장이 즐거운 표정으로 다가 와 물었다. 공무 팀엔 혼자 파견되었으므로 항상 ‘내 새끼 혼자 보내놓고 마음이 불안하다던 그였다’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별 일 있다 한들 혼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다지 말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럼, 내가 마음 놓고 너한테 맡겨도 잘할 수 있는 거지?”

“하하 그럼요.”


이 부장의 배려를 느끼며 늘어난 인원들과 섞였다. 관리와 공무 팀에 젊은 친구들이 점점 충원되고 있어 산뜻한 분위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좁은 숙소는 사람들로 넘쳐나, 모두들 맥주 잔을 하나씩 들고 서로서로 어울려 정다운 얘기를 나누면서도 프로젝트에 관한 궁금한 소재가 주를 이루었다. 테라스와 식당, 옥상까지 가득하게 문전성시를 이루는 회식 자리는 한국식 같지 않아 좋았다.


20160708_230549 (2).jpg 프랑스 친구들의 회식은 프리하고 의자에 앉는 일이 거의 없이 서서 돌아다니며 아무와 만나 즐기면서 대화를 안주로 술을 마신다.


외국에선 대부분 서서 여러 사람들을 돌아가며 만나는 식이라면 한국에선 한 자리에 앉아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술에 의한, 술을 위한, 술의 문화와 차이가 났다. 한국의 술 문화가 돈을 주고 여자를 껴야 흥겨운 문화라면 프랑스의 술 문화는 맥주 한 잔에 현장에서 꼬시는 거였다. 그 방식에도 차이가 났는데, 프랑스 친구들은 여자 동료들도 거리감 없이 섞여 클럽이나 바에 모여 한국보다 훨씬 강한 패거리(연대의식) 문화를 즐겼는데, 한국 여자들처럼 늦었다고 집에 먼저 간다거나 여자라는 성적 정체성을 이용하지 않았다.


더욱이, 남녀 구분 없이 주변에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꼬셨고 스스럼 없이 어울렸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1차 이후, 이미 먹을 만큼 먹고 취할 만큼 취해, 서서 술을 마신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의식적으로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면 자리에 앉았고 프랑스 친구들을 만나면 서서 마셨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탐험을 다니듯 돌아다니니 프랑스 사람들은 살 찐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국처럼 같은 사람들과 한 곳에 앉아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데 무료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좁은 분위기가 오히려 술 잔을 들고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을 만나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훨씬 유용한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알제리인 아내를 두고, 2년 동안 오랑 대우 건설에서 경험한 덕분에, 알제리에 관한 얘기는 김 수용이 주도를 하고 있었다. 곧 다가올 라마단에 관한 금기 사항과 주의 사항에 대한 얘기는 이슬람 국가를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 친구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며 김수용에 대한 호감으로 작용했다.


김 도화는 김성동 부장에게 바짝 붙어 업무가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경북대 출신인 김 부장은 현대에서 명퇴를 하고 홍콩에서 식당을 하다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재 채용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김 도화는 영남대 출신임에도 둘이 같은 대구출신이라는 이유로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누군가 귀띔해준 적이 있었다. 김 도화가 ‘형님, 형님’ 하고 힘겹게 김 부장에게 기대며 불쌍한 척 하는 모습은 역겨워서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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