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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Nov 05. 2020

서산 가야산의 소방대원들

어둠이 내린 산에서 만난 가족


 해는 곧 질 것이다. 그럼에도 목적한 일주를 하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옥양봉에 이르러 석양이 서해에 걸려 온천지에 노을이 번졌다. 늦을세라 급하게 폰카에 담았다. 생각보다 서해로 지는 석양이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면 야영을 할 것인지, 하산이 멀지 않은 길이라 내려갈 것인지 고민이 이어졌기 때문에 서산 저 멀리 서해로 사라져 가는 석양이 제대로 된 빛이 아닌 것처럼 느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빨간 빛이 하늘을 덮은 순간에 스산한 가을바람이 땀에 젖은 살갗을 스치자 부르르 한기가 올랐다. 눈 앞에 보이는 정상을 밟아야만 오늘의 등산이 의미 있을 터였다.


 가야산으로 오기 전, 처음엔 설악산 1박 2일 야영을 벼뤘다.

영하의 기온에도 버티는 침낭을 사고 비바람 피할 성능 좋은 텐트도 구입했으므로 못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늦잠 자 설악은 못 가고 클리앙이란 사이트에 첫 글로 '설악산 야영 계획'을 올린 뒤, 불법 산행이라는 뭇매를 맞는 신고를 당하고 글은 지워졌다. 억울한 마음에 평택에서 가까운 산을 지도로 찾았다. 두어 시간 거리에 월악산, 치악산, 소백산 등의 산들이 있었지만 웬지 마음이 내키지 않다가 조선을 망친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낳았다는 남연군의 묘가 있는 예산 가야산으로 가기로 했다. 영화 명당의 소재가 되기도 한 그곳을 찾아와서야 게 되었으니 세계를 주유했음에도 우리나라도 제대로 몰랐다. 늦게 올라 석양을 건졌다며 좋았다.


 미리 탐방로를 지도로 확인해보니 상가 저수지를 기점으로 병풍 치듯 둘러 쌓인 산행은 너무 짧아 보여 옥계저수지를 기점으로 서원산을 돌아 원효봉으로 내려오는 길을 돌아야 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산이 얕았기 때문에 거리가 아주 짧아 보였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 서원산을 돌았던 시간을 빼면 4시간 산행에도 일주가 가능한 산행이었다. 그러나 야영을 한다면 그나마 운치 있을 거라는 고민도 따랐기에 석양이 빛이 바랬는지도 몰랐다. 일출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대지에 전해지면 세상의 온기와 용기를 모두 받는 듯한 희망에 빠지는데 비해, 짙은 색감에 웅장한 노을이 천하를 덮으면 곧 어둠이 몰려 올 두려움에 마음이 불안했다. 그것도 젊은 날의 생각이렸나. 얕은 산 정상 어딘가에 짱 박혀 텐트 치고 혼자만의 적막감에 깊은 사색에 빠져보고 싶은 욕심도 잠시, 야영장비를 갖춘 배낭이었지만 술을 준비하지 않았다.


KBS 송신탑이 있는 가야봉과 뒷 편의 원효봉 왼쪽으로 상가 저수지가 보인다.


 야영을 할까 하다가 금방 포기하고 후다닥 내려오는 길, 어둠은 깊었는데 노인 부부와 자식인지 아들 딸이 부축하며 하산하고 있었다. 랜턴이 하나길래 내걸 주려했더니 더 있으니 염려 말고 그냥 가시란다. 달빛이 차 오르면 랜턴이 없어도 호젓하게 산길 걷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미 깊은 어둠에도 불 없이 내려가는 나를 보고 조금 아래 내려가 노부부가 내려오는 걸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보던 준수한 외모의 딸이,


"눈이 참 밝으시네요"


하며 말을 건다. 구미호련가? 구미호 가족?

정상에서 이제 막 만난 가족들이라 한 시간 정도 내려가야 할 텐데, 할머니의 걸음이 너무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아들이 옆에서 정성을 들여 부축을 해도 미끄러운 흙과 화강암에서 떨어진 알갱이들이 경사가 심한 곳에서 조심한다 해도 넘어지기 쉬웠다. 그럼에도 힘든 내색 없이 나누는 대화는 일상처럼 평화롭고 다정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에 안심이 됐다. 산을 잘 알더라도 그들의 나이와 옷차림이 일상복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눈이 밝아지는 법이죠! 곧 달님도 뜨면 랜튼 없이 산보하기 좋습니다^^


 그 말을 전하고 휘리릭 내려가 옥계저수지 아래 경로당에 세워둔 차량으로 가는데, 계속 산길로 눈이 갔다. 산 중턱을 밝히는 랜턴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젊은 자녀가 있긴 했지만 내려오는 길은 자주 미끄러울 수 있어 지팡이를 짚고 조심스러운 노부부가 염려가 됐다. 덕산 도립공원 사무소 앞에서 한참을 산 중턱을 바라보다 결국 119에 신고를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곧 구조 차량이 나타났다. 산을 바라보며 옅은 불빛을 확인하고 다시 조난 구조대원들에게 무전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구조대원들이 나타났다.


 괜히 일이 커지는 거 같아 노심초사였다. 대원들도 신고를 받은 터라 도착해서 산 중턱을 확인하며 불빛의 정체를 확인했다. 늦게서야 그 불빛이 옥양봉 아래, 관음전의 불빛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가족은 분명 그 근처에서 불빛이 어른거렸었다. 덕산 도립공원 사무소 주차장 앞, 옥녀 식당의 할머니는 그 불빛이 관음전의 가로등임을 확인해주었다. 내가 그 이전에 확인했던 그 주변을 얼쩡거리던 랜턴 빛은 사라진 지 오래여서 정보를 수정해 주었다.


"그래도 신고가 들어왔으니 내려올 때 만났던 곳까지 확인을 해봐야 합니다. 선생님이 앞장서서 확인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기꺼이 그러마고 했다. 토요일 밤을 난리법석으로 만들었으니 책임을 져야 할 터였다. 살다가 이런 신고도 다 해보고...... 설악산에서 하반신 마비에도 해 질 녘에 산을 내려오던 젊은이가 떠올랐다. 혼자 극기 훈련을 하거나, 삶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 설악산을 찾아 오롯이 두 팔과 몸뚱이로만 깔딱 고개를 내려가던 그 청년을 위해 관리공단에 연락해서 확인을 해볼까 했던 경험은 있었어도 이렇게 직접 구조대원들을 불러본 적은 처음이었다.



*** 예산군 소방대원들



 산 중턱엔 관음전이 있어 불빛이 엷게 퍼져 있었고 가족의 불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구조대의 요청으로 가족들을 만났던 곳으로 다시 오르기로 했다. 구조대 리더 격인 중년의 남자와 언뜻 보기에도 앳되어 보이는 젊은 구조대원 둘은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멋지게 생겼고, 20kg 군장을 메고 있다가 맨몸으로 올라가니 빠른 걸음이었는데도 구조대원들은 잘 따라왔다. 밤 길 등산은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우리는 30여 분도 채 되지 않아 드디어 가족을 만났던 장소인 9부 능선까지 올라왔는데도 아무것도 없었다.


 예상한 속도라면 아직 하산 전에 만났겠지만 가족은 깜쪽같이 자취를 감췄다. 소방대원들에게 미안해 사과를 하고 하산하는 길, 마음이야 가벼웠지만 괜한 일로 염려를 끼친 거 같아 거듭 사과를 하고 덕산면으로 나왔다. 과연 육즙을 잔뜩 쏟아낸 뒤, 거친 호흡과 함께 폐 속의 노폐물들을 다 쏟아내고 혼술로 삼겹살을 먹으니 이것이 산행 후의 오르가슴이련가!


혼자, 늦게 불 밝힌 허름한 삼겹살 집을 찾았다. 저렴하기도 하고 직접 텃밭에서 기른 야채와 담근 김치, 된장찌개의 맛에 홀딱 반했다.


충남 예산군의 소방대원들의 발 빠른 대처와 적극적인 구직활동에 감사드리고 술에 취해 으슥한데 텐트 치고 잠든 10월 24일 토요일. 산행을 완료하지 못해 일요일 다시 오르기로 하고 깊고 긴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날, 어제 두 번이나 왕래를 했던 길 옆의 석문봉으로 직행하는 루트를 타자 지금까지 단조롭고 무미건조하던 가야산의 아기자기한 멋이 조금씩 드러났다. 과연 산이 얕아서인지 올라가는 길은 금방이었지만 숲 속에 핀 단풍이 마음을 훔치고도 남았다. 그리고 나머지 이루지 못했던 코스를 끝내고 평택 숙소로 돌아오니 인생의 즐거움이 거기 있었다.


하산길 단풍이 저리 곱다.
가야산 정상, 가야봉에서 돌아본 석문봉가 옥양봉, 서산과 서해

 

 매일 야근한다고 밤 9시에 퇴근하면 숙소 들어가 술 한잔에 다시 새벽 5시 출근, 가만 보니 돈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 같은데도 그렇게 번 돈이 달갑지가 않았다. 이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그토록 증오하던 돈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그 속에 들어가 있다가 토요일 결근하고 산을 찾아 힐링하는데도 다음 날이면 다시 고이는 힘. 주말 되면 매일 잠만 자던 시간에서 탈피해 산을 찾으니 이것도 행복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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