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골 계곡엔 한 사람도 없었다. 코로나 광풍이 하루 천명이 넘는다고 서울 시내가 초토화되었다는 사실을 직접 본 때가 10월 10일 서울에 올라왔을 때였다. 친구가 재무팀장으로 있는 5성급 호텔 한 곳은 완전 폐쇄된 상태였고 프랑스인 여자 친구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전쟁박물관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몇몇 사람들이 보였는데, 도로의 차량이라던가 인파는 언제나 북적거리던 서울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특히, 명동의 밤거리는 불만 휑하니 켜졌지 인적이 끊겼고 식당가엔 사람이 없었다. 평택과 거제, 이천의 대형 반도체 현장과 조선소 상황만 보면서 전혀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중, 거리두기는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불가능한 일은 마스크 착용만으로도 충분한 것처럼 보였다. 현장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고 출퇴근 시간엔 붐비는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쳤다. 모든 생활은 정상이었기 때문에 뉴스에서 하루 확진자가 천명을 넘었다는 소식이 남의 얘기 같았는데, 서울에 와서야 비로소 코로나의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친목 도모를 하는 산악회에도 모임 금지 공고가 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늘이 평일이기 때문에 인적이 뜸하다고 느끼면서도 고즈넉한 겨울 산행의 적막함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고개를 올라가는 길은 꽤 힘들었기 때문에 몇 발짝 옮기지도 않고 시계를 한번 보고 고개를 들어 올라가야 할 목적지를 보면서 괜히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숨은 벽 능선에서 내려온 길과 합류하는 곳에서 백운대 정상까지 표시된 길이가 1.3km인데, 호랑이 굴이라 불리는 한 사람 겨우 빠져나가기 힘든 바위를 지나면 정상은 다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곳까지 가파른 바위길이 깔딱 고개를 넘는 것처럼 길어 꽤 힘들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고통 뒤엔 항상 기쁨이 온다는 것을 상기하면 오늘의 긴 산행의 첫 관문에 불과했다. 숨은 벽 절벽은 백운대 능선보다 훨씬 웅장하고 위태해 보였다. 그렇게 마지막이자 유일한 철재 계단을 올라가면 숨은 벽 능선의 마지막 관문인 호랑이 굴을 통과해 햇살과 마주했다. 좁은 바위 문을 두고 밝은 세상과 어두운 세상이 공존했다. 지나온 길 깊은 계곡에 내린 눈에 비해 이제 햇빛을 받기 시작한 봉우리는 남은 눈을 털어내며 계곡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숨은 벽을 포기하고 돌아온 길이 2시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길은 실제로 걸어가면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최근 여러 산행에서 느꼈던 놀라운 현상 하나가 산이 너무 낮고 가깝게 느껴진다는 거였다. 그러나 실제로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항상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여러 산을 타본 경험이 스스로 크고 작은 것을 분류하듯, 길고 짧은 것도 분류했다. 그러나 그 경험의 통계치는 현실과 맞지 않았다. 그때의 체력이 아니었고 상황은 항상 같지 않았기 때문에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야 했다. 한 달 전에 2시간 걸렸던 거리가 겨울 눈 산에선 네 시간이나 소요됐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비록 숨은벽까지 가서 내려왔더라면 시간이야 단축되었겠지만 항상 예상치 못한 변수를 생각한다고 해도 네 시간이면 예상을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노적봉을 지나며 바라본 만경대 능선. 겨울산은 항상 구름이 가득한 줄만 알았다.
등산객들과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로 넘쳤던 인수와 백운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그 중간 지점의 널찍한 정원 같은 마당은 한 사람도 없어 고즈넉한 겨울 산행의 맛을 즐기려 라면을 끓여먹고 싶었는데 녹지 않은 눈이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백운대 정상엔 다른 루트로 온 몇몇 사람이 올라간 모양인지 대화 소리가 아래까지 들렸다. 마땅하게 음식을 먹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백운대를 오르지 않고 이번엔 만경대로 향하는 초행길에 접어들기로 했다. 그 등산로를 따라 북한산성 종주길이 이어져 노적봉, 용암봉, 시단봉, 동장대, 덕장봉,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문수봉으로 이어져 의상봉까지 돌면 오늘의 목적을 달성하는 거였다. 예전엔 불광동에서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종주를 하겠다고 나섰다가 대남문에서 하산한 적이 있었는데 종일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리고 구름이 껴,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면서도 비 오는 한적한 산길도 재미있었다.
겨울 산행이 이렇게 맑은 하늘이 기억나지 않아 뭔가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날씨가 이렇게 맑으면 눈이 빨리 녹을 텐데 하고 괜한 걱정을 했다. 아이젠이 없음에도 정상까지 올라와 성곽을 걷자, 눈길에 발이 착착 달라붙으며 뽀드득뽀드득 상쾌한 소리를 냈다. 아이 때처럼 기분이 좋아져 한참을 걸으면서 성곽 넘어 펼쳐진 거대하고 기형적인 도시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서울과 경기도 인구 2천만의 기형적인 도시,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 새롭게 건설된 세계적인 수도는 그러나 기형적으로 성장한 나머지 옛 것을 복원하여 현대적인 조화를 이루는 건축적인 미학도 없었고 미래 도시 설계를 위한 도시계획도 없이, 단지 경제 성장만을 위해 건설된 도시 같았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 건축물과 미학을 살린 조화로운 건축물의 부재가 아쉬웠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자랑할만한 마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산성을 휘둘러 존재하는 여러 관문과 성곽은 비록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남들 보기에도 멋지게 복원되어 자랑삼을 수 있길 바라본다.
성곽 쪽으로 사람들 발길이 뜸했다. 많이 다닌 길은 한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난 길을 따랐는데 조금만 벗어나도 제법 큰 짐승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산짐승들도 산새들도 눈이 내린 곳에 발자취를 남기고 싶었는지 사람의 발길을 피한 흔적이 역력한 것처럼 시간차가 나 보였다. 야생동물들이 산 어디선가 내 행적을 지켜본다는 즐거움과 함께 숨을 곳 없는 겨울의 삭막한 추위를 잘 견디길 바라면서 어느새 낯선 환경의 성덕봉 전망대에 도착했다.
보국문을 지나 성덕봉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서 뒤돌아 본 강북의 아파트 단지와 불암산 수락산, 왼쪽이 도봉산이다.
형제봉 능선 아래 북악산, 인왕산
의상능선을 정점인 문수봉 아래서 시작되는 형제봉 능선을 따라내려 가면 두 개의 봉우리가 형제봉이고 오른쪽 우뚝 솟은 북악산, 그 오른쪽이 인왕산이다. 왼쪽의 남산 타워와 저 멀리 왼쪽으로 청계산, 가운데로 관악산도 보인다. 이렇게 보는 서울의 모습이 처음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이 찬란하게 눈부신 서울 시내 한가운데를 흐르는 한강이 한눈에 조망됐다. 오늘 이전까지 북한산을 오른 것이 네댓 번이었다. 주변의 도봉산의 아름다움도 비경이었고 수락산과 불암산도 동네 산책하듯 다니면 역시나 멋졌다. 서울은 그 산들로 인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에 취해 곳곳의 명칭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능선을 말할 때나 어느 봉우리를 얘기할 때면 그런데도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북한산을 와봤으되 산성이라는 의식을 하게 된 것은 곳곳에 방치된 듯한 곳에 세워진 유적지 발굴 간판과 성문 등이었는데, 한국의 성문은 중국의 성문에 비해 장난감처럼 보였다. 기타 아시아의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에 비해서도 내세울 것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복원해서 이것이 우리의 양식이라고 말하고 싶은 바람이었다.
그런 바램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서울 목동에서 회사를 다닐 때, 처음으로 성곽을 타고 백운대로 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북한산은 우이동에서 올라가는 것 밖에 몰랐던 시절, 그때도 겨울이었다. 김어준의 벙커 1이 혜화역에 있을 때였는데 40대 애묘인들 미팅을 했었고 그곳에서 만난 40대들끼리 따로 모임을 하다가 뜻이 맞은 한 여자랑 수유역에서 만나 몇 번인지 모르는 버스를 타고 내린 종점에서 기억에도 나지 않는 능선을 타고 올라온 곳에 성곽이 있었다. 그곳에서 백운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기억이 8년 전이었다. 새침한 여우 같은 그녀의 사진을 찍는다고 산의 기세와 도시를 감상할 틈이 없었던 것 같다. 그녀가 아이젠도 없이 백운대 정상에 올라가 옆에서 훌쩍거리며 울었다고 한다. 자기 생각은 안 해주고 너무 빡세게 올랐다는 것인데, 내려갈 일이 걱정이라 염려되어 나중에 울었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그때 가방엔 한쪽이 불량인 철사로 만든 아이젠이 있었다. 그 거라도 신겨주자 얼굴이 펴진 기억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맑은 날에 잡념 없이 산을 보니 산세가 도드라져 보이고 뒤편 도봉산과 어울려 솟아오른 암벽이 과연 장관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은 매일 와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고 근처 다섯 개의 산을 마음대로 다녀도 되니 나중에 서울에 살 일이 있으면 노원구나 도봉구에 사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은 유혹이 밀려왔다. 노원구에서 2개월 동안 거주하면서 주변 산세의 미혹에 푹 빠졌던 기억도 좋았다.
삼각산과 오른쪽의 도봉산, 왼쪽으로 개명산, 고령산 줄기다. 이렇게 조망하니 북한산은 완전히 새롭게 다가온다.
대남문을 지나 문수봉에 도착한 시간이 세시 반이었다. 그리고 북한산성 통틀어 가장 멋진 뷰와 사진 포인트가 있다면 거침없이 이곳 ‘문수봉’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거 같았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면서도 삼각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을 한 달 전에 왔을 땐 비바람 거세게 불어 족두리봉에서 시작된 길을 문수봉에서 마치고 대남문에서 구기계곡으로 내려갔었다. 겨울 해는 오후 다섯 시며 지기 때문에 랜턴을 준비했어도 가급적 야간 산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산 길은 한번 미끄러지면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해가 남아 있을 때 내려갈 작정이었다. 이미 의상능선에 접어들어 마지막 봉우리 의상봉을 타려면 10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야 했다. 체력은 넉넉했지만 각 봉우리를 내려오는 구간엔 스틱은 거추장스러웠지만 그래도 아이젠 없이 다니기엔 불편한 구간이 많았으므로 갈 데까지 가보자 싶었다.
부왕동 암문에 도착했을 때는 다섯 시가 가까웠다. 마지막 남은 네 개의 봉우리를 탈 것인지 유선대 방향으로 내려가 안전한 본류에 합류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계곡엔 어둠이 빨리 왔고 하산길은 미끄럼에 필히 주의해야 했다. 무리하지 않고 하산을 결정했다. 눈이 없었으면 나머지 구간을 따라 직선으로 내려갔을 터였다. 유선대 방향으로 동선을 정하자 드디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급경사도 없는 길인데 주의했음에도 눈 속에 묻힌 낙엽이 하염없이 미끄러졌다.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허리가 아릴 지경이 되자 곧 큰길과 합류했다. 그리고 북한 천을 따라가다가 북한동역사관에 와서야 옛날에 와봤던 기억이 났다. 지리산을 오르는 가장 보편적인 중산리-장터목-천왕봉-법계사 코스처럼, 내 기억에 남은 보리사를 따라 백운대로 곧장 오르는 것이었다.
밤골에서 백운대를 올라 산성을 한 바퀴 돌았다. 아침 7시 30분부터 18시까지 장장 10시간 반을 걸었다. 이제 설악산 가야지!
언제인지 모르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낸 길에 들어서고 한참을 가도 예전에 다녔던 계곡의 길이 아닌 대서문이 나타나자 왼쪽으로 의상봉이 동시에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직선으로 출발했으면 저 능선을 넘어 걷고 있는 길과 만날 북한산 초등학교 쪽과 연결된 길이었다. 그제야 능선을 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산성 완등을 실패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화려하던 산성 초입의 식당과 스포츠 용품점에서 아이젠을 사려 아이쇼핑을 했다. 어느 식당에서 막걸리 한잔할까 두리번거리다 보니 어느새 주차장이 나타났다. 바로 앞에서 평소에 마시지 않는 막걸리 한 사발 시켜 따뜻한 국물에 밥 말아먹으니 세상 행복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