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 녀석, 제법 재밌구나?
어제는 꽤나 바쁜 하루였다.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이 자정을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으니까. 물뱀처럼 스르륵 허물을 벗고, 얼룩 고양이 세수만 간단히 한 후, 가을날 까치걸음 살금살금 방으로 돌아오자 00시 46분. 4퍼 남은 배터리가 빨갛게 깜빡거렸다.
“하아아….”
흉부 가득히 들이마셨던 숨을 토해내고 나자 눈꺼풀이 쓰리다. 글도 한 자 쓰지 못하고, 책도 한 장 읽지 못했는데 시간은 어느새 한 시를 향해 달린다.
‘지금부터 해봤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의지마저 흐지부지. 빛을 잃은 눈동자 앞에 스마트폰만 밝게 빛났다. SNS 잠깐, 피키캐스트 잠깐, 유튜브 잠깐…. 아, 이런. 깜빡 졸았나? 시간은 1시 13분. 으으 이젠 자야겠지? 6시간 7분 후면 눈을 떠야했다. 또 하루가 시작될 테지. 지긋지긋함, 스무살의 한 귀퉁이를 갉아먹는다.
스마트폰을 보던 자세 그대로 녹아내렸다. 아직 한 여름의 까슬함 머금은 얇은 이불을 당겨 턱 끝까지 덮었다. 이내 갑갑함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 다리를 팡팡, 이불 밖으로 꺼내었다. 적당한 포근함과 적당한 시원함.
“하아아…”
오늘따라 한숨이 깊다. 그보다, 조금 추운 것 같은데 괜찮을까? 글쎄, 창문은 누운 채로 닫기엔 너무 멀었고, 다른 이불은 방밖에 있었다. 우리의 계절은 아직 여름과 가을, 그 사이였으니까.
뭐, 괜찮겠지? 내 방은 다른 방보다 더우니까. 괜찮을 거…야….
고백하자면, 여름 이불은 새벽의 한기를 버티기엔 너무 얇았고, 파고든 가을의 인사에 한 번 눈을 떴었다. 그때 조치를 취했어야 하건만… 그냥 잤다.
그 결과, 지금 나는 새빨갛게 헐은 코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젠장, 좀 따뜻하게 잘 걸. 하루 종일 훌쩍훌쩍, 간간히 재채기까지 해대고 있자니 이게 지금 일을 하는 건지 본격 민폐를 끼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소싯적에 콧물 좀 훌쩍여본 코찔찔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 하루종일 훌쩍거리는 게 얼마나 잔망스런 일인지.
처음 얼마간은 좀 짜증이 났다. 풀어도, 풀어도 솟아나는 콧물 놈 때문에. 또 덜덜 떨면서 깨놓고도 굳이 꾸역꾸역 잠에든 나의 미련함 때문에. 하지만 그것도 잠시지, 온종일 멎지 않는 콧물에 코밑이 시뻘게질 정도가 되니 오히려 우스워졌다. 인간의 몸이란 이 얼마나 가벼운가? 단 하룻밤의 추위에 홀딱 반해버려 이렇게 애틋한 콧물을 뚝뚝 흘려대는 꼴이라니. 내 인생에서 단 하루의 변화가 이렇게 가시적이고 직설적으로 나타난 순간이 있었을까?
고작 하루의 변화가 날 바꾸었다. 고작 하루의 변화도 날 바꿀 수 있었다. 하루를 춥게 자는 정도의 변화도 나의 내일을 바꾸는 데, 내가 그간 써왔던 글들과 아무렇지 않은 척 버텨냈던 시간들은 어떨까?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시나브로 나를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렴 여태껏 보내온 세월과,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많은 시간들이 하룻밤 추위만 못할까? 그럴 리가. 씨익- 입꼬리가 당겨지며 광대가 올라간다. 그래, 미소다.
코가 시뻘게진 채 실실거리는 내 모습은 우습다. 어쩌다보니 감기마저도 희망이 되어버렸다. 그래, 마음껏 흘러라 콧물아. 오늘 밤엔 글로 밤을 지새울 테니, 내일은 환희가 되어 돌아와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