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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 Feb 20. 2022

새로운 오늘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엄마를 위한 그림책 '오늘상회'

오늘은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가지만
소중하게 보내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져 버린답니다.


오늘 상회가 문을 열면 하나둘 손님이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병에 담긴 오늘을 마셔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할머니는 오랜 시간 오늘 상회를 찾아왔고, 수없이 많은 오늘을 보냈습니다. 늘 함께하던 사람의 오늘이 사라진 날, 할머니는 오늘 상회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았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새로운 오늘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할머니의 얼굴에 다시 오늘이 내려앉았습니다. 할머니는 매일 오늘 상회에 갑니다. 오늘 피어난 꽃과 오늘 더 자란 풀 향기를 맡으며 새로운 오늘을 느낍니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탄다. 겨울이 되면 옷을 여러 겹 입고도 몸을 잔뜩 웅크린다. 찬 기운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은 출산 후 더 자주 찾아왔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공기가 차고 몸이 시렸다. 남편한테 아이들을 맡기고 안방에서 삼십 분 정도 누워 있다가 거실로 나왔다. 이불속에서 모아 온 온기가 거실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이내 흩어졌다. 아직 가시지 않은 잠에 취해 소파에 누웠다. “이게 따뜻해, 이거 입어.” 실눈 뜬 사이로 입고 있던 기모 후드티를 벗어주는 남편이 보였다. 다시 눈을 감자마자 묵직하고 포근한 게 내 몸을 덮었다. 첫째 아이였다.


눈앞에 아이의 환한 얼굴이 해처럼 솟아있다. 몸과 마음에 온기가 피어올랐다. 아이는 팔다리를 모두 펼쳐서 나를 감쌌다. 서로 맞닿아 가까워진 두 개의 심장을 느끼며, 언젠가 우리가 한 몸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때를 생각하니 살을 맞대고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이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달걀을 꺼내니, 첫째 아이가 쪼르르 달려온다. 아이는 한 번에 탁 깨뜨리지 못해 요리조리 톡톡 달걀을 두드렸다. 집중하기 위해 삐죽 마중 나온 입술이 사랑스럽다. 가만히 지켜보며 그릇 안에 떨어진 달걀 껍데기 조각을 빼냈다. 아이가 우유, 애호박, 양파, 햄이 들어간 계란물을 숟가락으로 휘저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아이를 돌아보니 연노랑빛 계란 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여기 봄이 왔네? 개나리가 활짝 핀 거 같아.”

조금 전까지 춥다고 말한 내 입에서 ‘봄’이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아이가 없었더라도 계란물을 보며 봄을 떠올리고, 개나리가 피었다며 감탄했을까? 아이는 내 안의 보송보송한 생각들을 말로 싹트게 한다. 정말 노란 개나리꽃 같다고 말하는 아이와 미소를 주고받았다. 겨울이지만 봄을 느낀다. 싱그러운 오늘이 파릇하게 돋아났다.



며칠 전, 어린이집 같은 반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에게는 특별한 내색을 하지 않고 남들 앞에서도 의연하게 행동했지만, 혹여 아이가 옮아서 많이 아플까 봐 불안했다. 당장은 이상이 없어도 언제 어떻게 증상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아이를 걱정하며 새 하루를 맞이했다. 오늘 아침 아이는 내 걱정을 씻어주려는 듯 더 활기차게 뛰어다녔다.


어제의 걱정을 잊게 하는 새로운 오늘이 찾아와서 다행이다. 자잘한 행복으로 채울 수 있는 오늘이 있어서 감사하다. 봄빛이 내려앉은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을 천천히 아껴서 마셔 본다.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 나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詩 '인생',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박광수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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