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실 Jan 24. 2022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요.

엄마를 위한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 백희나
연이에겐 그동안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거든.
그래서 이런 기막힌 일이 닥쳤어도 그래, 그러려니 싶은 거야.

 나이 든 여인과 함께 사는 연이라는 여자애가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나이 든 여인은 연이에게 상추를 뜯어 오라고 합니다. 연이는 추위에 떨다가 작은 굴 속에 있는 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동굴 안은 따스한 봄날이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도령은 배고픈 연이에게 상을 차려주고, 상추를 따 주었습니다. 위급할 때 쓰라며 살살이, 피살이, 숨살이라는 이름의 꽃을 주고, 다음번에 돌문을 열고 싶으면 "버들 도령, 버들 도령, 연이 나 왔다, 문 열어라."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연이가 겨울에 상추를 구해오자, 나이 든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다음 날 여인은 연이에게 진달래꽃을 따오라고 시키고, 그 뒤를 몰래 쫓아가 연이를 지켜봅니다. 나이 든 여인은 연이가 집으로 돌아간 틈을 타 돌문을 열고 들어가 동굴 안에 불을 지릅니다. 동굴을 다시 찾은 연이는 시커멓게 타 버린 버들도령의 뼈를 발견합니다. 연이가 도령에게 받은 꽃들을 도령 발치에 내려놓자, 도령은 살아났습니다. 두 사람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우리 기린 서점 갈까?”

 날씨가 유난히 추웠다. 놀이터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첫째 아이는 내 제안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럴 줄 알고 주머니에 핫팩을 세 개나 챙겨 왔다. 아직은 마음이 너그럽다. 더 놀고 오라고, 추우면 얘기하라고 말했다. 놀이터로 뛰어가던 아이가 되돌아왔다. “갈래요!” 오예! 마음이 변하기 전에 후다닥 짐을 챙겨서 주차장으로 갔다.


 차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반디앤루니스가 있다. 서점 입구에는 커다란 기린 인형이 있다. 첫째와 둘째의 손을 하나씩 잡고 서점으로 들어갔다. 서점은 내가 좋아하는 장소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장소에 함께 있는 것,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었다. 얼었던 몸이 따뜻해졌다.


 ‘연이와 버들도령 ’ 

 백희나 작가가 3년 만에 선보이는 그림책이다.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새 책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기린 서점에 온 목적을 이루었다. 출간한 날 온라인 서점에서 바로 주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꼭 서점에 직접 가서 사고 싶었다. 시간을 내어 서점을 방문하고, 진열대에서 책을 찾고, 계산대에 책을 올려놓으며 내 것이 되기를 기다리는 그 경험까지 함께 사고 싶었다. 



 아침에 아이가 책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했다. 연이를 만났다. 창백한 얼굴에 붉게 달아오른 볼과 슬픈 눈을 가진 아이, 연이는 나이 든 여인과 같이 살고 있었다. 나이 든 여인의 눈빛이 매섭다. 숨이 턱 막혔다.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내고,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나를 본 적이 있다. 날카로운 눈빛, 일그러진 표정, 한 번도 보지 못한 내 얼굴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렇게 싸늘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고?' 


 아이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아침부터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어린아이들을 두고 누워있을 수 없으니, 약을 먹고 견뎠다. 그런 날은 집안일을 좀 쉬엄쉬엄 해도 되는데, 별난 고집을 내려놓지 못하고 몸을 바삐 움직였다. 나를 돌볼 방법을 찾지 않고, 나를 둘러싼 상황을 원망했다. 그날따라 큰 아이의 어떤 행동이 거슬렸고, 나는 폭발했다. 아이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나에게 더 큰 화가 몰려왔다.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다. 


 나이 든 여인의 표정은 그날 거울 속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가슴이 따끔하다. 따끔해도 떠올리고 충분히 곱씹어야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많이 웃어주던 따뜻한 엄마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모습을 다시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연이는 한겨울에 상추를 뜯어오라는 여인의 말에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모두 내려놓은 아이 같았다. 그런 연이가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돌문을 열고 들어간다. 연이에게 다른 세상이 펼쳐지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며 책장을 넘겼다. 극락을 펼쳐 놓은 듯한 세상에서 도령이 걸어 나온다. 연이와 얼굴이 닮았다. 또 다른 연이 같았다. 연이에게 희망이 생겼다고 좋아한 것도 잠시, 모든 게 까맣게 불타버렸다. 버들도령까지도.


 연이는 시커멓게 타 버린 버들도령의 모습을 보고도 울지 않았다. 불행한 삶이 당연한 듯 살아온 연이가 안타까웠다. 문득 한 아이가 떠올랐다. 입양된 가정에서 양모에 학대를 받다 세상을 떠난 아이. 가슴이 쓰려서 부르기도 힘든 이름, 정인이었다. 표정 없는 얼굴과 초점 없는 눈빛, 정인이의 계모와 나이 든 여인은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연이는 죽었던 도령이 살아나자 그제야 울음을 터트렸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우는 게 당연한데, 살면서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기회조차 없었던 연이가 안타까웠다. 가슴이 먹먹했다. 어릴 적 누가 나를 나무라면 앙다문 입술을 삐죽 내밀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입이 또 나왔다며 울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눈물을 참았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슬픔, 분노, 절망, 우울과 같은 감정들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다. 어른이 되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이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불편할 때가 있다. 마음속에서 "울지 마. 울긴 왜 울어."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내 안에 상처받은 아이가 부리는 심술이다. 그 아이를 가만히 지켜본다. 그리고 내 마음과 내 아이에게 말한다. 

 "울고 싶을 땐 울어도 괜찮아." 

 


부정적인 감정을 무시하고 억누르려 하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바로 감정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퇴화해 삶을 향한 의욕도 함께 상실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나'의 입장에서 불쾌와 유쾌를 기준으로 감정을 나눌 뿐, 감정 자체는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이 따로 없습니다. 감정은 에너지 같은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기분이 좋고, 종잇조각을 씹으면 불쾌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감정은 모두 같은 통로를 따라 흐릅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을 막아 보겠다고 억누르면, 감정이 흐르는 통로 자체를 막아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쇠퇴하고 종국엔 모든 감정이 폭발하고 맙니다. 

-라라 E.필딩, '홀로서기 심리학'


작가의 이전글 지금이 가장 그리울지도 모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