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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 Feb 02. 2022

마음껏 놀아야 마음이 자랍니다

엄마를 위한 그림책  '돼지꿈'

 돼지꿈 , 김성미 그림책


학교가 끝나면 더 바빠진다.
아! 불쌍한 내 인생!
그래서 내 꿈은,
돼지다!
돼지가 돼서 실컷 놀고 싶다.
                                                       

학교생활도 쉽지 않고, 학교가 끝나면 더 바빠지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의 꿈은 돼지가 되어 실컷 노는 것입니다. 마침내 꿈이 이루어졌지만, 아이의 생활은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속상한 마음을 헤아린 아빠는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었고, 아이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개근상’이 있었다. 학교를 하루도 안 빠진 학생에게 학년 말에 주는 상이다. 우리 부모님은 근면 성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나는 못 일어날 정도로 아팠던 단 하루를 빼고는 학교를 결석한 적이 없다. 몸이 아픈 날, 친구랑 싸우거나 선생님께 혼난 다음 날도 학교는 꼭 갔다.


 아이가 특별한 이유 없이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할 때가 있다. ‘그래, 오늘은 안 가도 돼.’ 이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이가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길 바란다. 한 번 허락하면 가기 싫을 때마다 안 간다고 할까 봐 마음이 쓰인다. 하기 싫은 일도 막상 해보면 괜찮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 마음을 고스란히 닮았다.

 


 "오늘 어린이집 안 가면 안 돼요?" 어느 날 아침, 아이가 물었다. 오늘은 엄마랑 동생과 집에서 놀고 싶다고 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아이의 뜻대로 하기로 했다. 그날은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이는 기뻐하며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다음 날 평소처럼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갔다. ‘또 안 간다고 하면 어쩌지'라고 염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이에 대해서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면 어떡하지?’라고 상상한 일들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편협한 생각의 틀 안에서 아이를 판단하고 예측한 게 부끄러웠다.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다. 결과를 감당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걱정하는 것보다 똘똘하고 야무졌다.

 


 ‘아! 불쌍한 내 인생!’

 학교가 끝나면 주인공은 더 바빠진다. 날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떠오른다. 우리 집은 단지 후문 앞에 있어서, 학원 버스들이 아이들을 태우거나 내려주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문득, ‘버스를 타고 내리는 아이들 중에도 주인공과 같은 마음을 가진 아이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놀고 싶을 때, 자기가 놀고 싶은 방법으로, 놀고 싶을 때까지 놀아야 ‘나 오늘 충분히 놀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엄마가 보기에는 잘 논 것 같아도, 아이는 오늘 못 놀았다고 하는 경우가 생긴다. 소아청소년 정신의학과 박사님의 강의에서 들은 내용이다. 나는 그동안 아이랑 놀아준다는 명목으로 아이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다. '아이 입장에서는 진짜 노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며 센터에 데리고 갔지만, 실은 내가 의도한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배우길 원했다.

 


 요즘은 놀이의 ‘선장’ 역할을 아이에게 넘겼다. 나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다가, 선장님이 부르면 달려가는 ‘선원’ 일뿐이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결정하는 모습, 자기가 펼친 세계에 집중하는 눈빛,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목청껏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 모든 게 사랑스럽다. 내가 선장일 때보다 내 마음도 가볍고 편안하다. 나는 방향키를 잡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욕심을 파도에 흘려보낸다. 그렇게 아이의 항해를 지켜보며 응원할 뿐이다.


엄마는 놀이라고 하면서도 자꾸 비장해진다. 하나라도 제대로 가르치고 싶고, 아이가 잠깐이라도 제대로 해주길 바란다. 아이는 난생처음 하는 공부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저 엄마랑 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엄마와 아이는 놀 때처럼 즐겁지도 서로가 사랑스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 입장에서는 공부라는 말만 붙으면, 엄마의 행동이 이상해지면서 견디기 힘들다. 엄마의 입장에서도 공부라는 말만 붙으면, 아이의 행동이 사사건건 못마땅하고 걱정스럽다.

-오은영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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