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 라이프웨어 매거진 ‘네이버후드 리빙'을 읽고
런던 중심부에는 주민들이 하나의 작은 마을이라고 부르는 아파트 단지가 있다. 바비칸 이스테이트. 1976년에 완공된 주택단지로, 거칠지만 기능적인 브루탈리즘(brutalist) 건축양식을 대표한다. 무려 2,000세대가 살고 있고, 콘크리트 건물인데 초록이 가득해서 딱딱한 느낌이 나지 않는다. 연못, 갤러리,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고, 스포츠 시설, 단지 내 미용실, 병원 등 편의시설부터 유기농 식료품점까지 여러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여전히 많은 런더너들이 이곳에 살고 싶어 한다고 한다.
유니클로에서 나온 라이프웨어 매거진에서 바비칸에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꼭지가 있어 읽어보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사는 건물처럼 보였다. 에디터, 아티스트, 뮤지션, 작곡가, 디자이너, 영상 감독, 의사, 연출가. 다채로운 직업군의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 집이 어떻게 꾸며졌는지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 멋진 이웃이 함께하는 특별한 곳입니다."
"이곳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집집마다 서로 다른 가족이 살고 있고, 그들만의 이야기와 라이프스타일이 있습니다. 정원과 놀이터에 둘러싸여 있고 사방으로 런던이 펼쳐져 있습니다. 밖에서 보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죠. 이곳에 사는 게 너무 좋습니다."
"이곳은 저에게 도시 속 안식처입니다."
바비칸에 사는 사람들이 바비칸을 두고 한 말이다. 이웃들과 온라인 게시판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도움을 주고받는단다. 심지어 바비칸으로부터 자신들의 ‘작품’에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집이라니. 이렇게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느슨하게 연결된 채로 한 곳에 모여서 살면 얼마나 재밌을까.
나를 둘러싼 공간과 공동체는 나의 매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팬데믹 시대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오프라인 공간과 집은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집에서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휴식도 취하게 되며 내 라이프스타일을 집이라는 공간 안에 녹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한 번 외출하는 기회가 이전보다 소중해지며 이왕 나가서 경험할 거라면 좋은 공간에 가고 싶어졌다.
바비칸 이야기를 읽고 나중에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장소에서 살고 싶은가를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동시에, 지금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융지트가 있으니까 :)
융지트 주변에는 산도 있고, 강도 있다. 자연이 가까이 있어서 너무 좋다. 자전거를 타기도, 달리기를 하기에도 최고의 장소다. 가장 좋아하는 동네인 성수동이 가까운 것도 장점이고, 이웃들도 다정한 편이다. 융지트 공간은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상태로 꾸며져 있다. 어딜 보나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공간이다.
카페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융지트란 공간 안에서 영감이 둥둥 떠다닌다. 덕분에 이곳에서 가장 많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간에도 분명한 에너지가 있다. 나는 융지트로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공간의 에너지가 나와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융지트에서 지난 지 1년이 넘게 흘렀고, 이곳에 들어온 뒤로 내게 생긴 즐거운 변화와 멋진 일이 아주 많았다.
그래도 더 나중에는,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다면 이렇게 마을처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느슨하게 교류하면서 모여 살아도 진짜 재밌을 것 같다. (왠지 뭔가 생길 것 같아…)
바비칸 말고도 재미난 이야기가 많았다. 주제를 이렇게 잡으면서도 ‘옷’과 브랜드를 녹여낼 수도 있구나 싶어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바비칸 인터뷰이들에게 전부 유니클로 옷을 입히고 촬영했다. 브랜드에서 만든 브랜디드 콘텐츠 느낌!)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는 텍사스주 오스틴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테이트 모던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건축가 듀오 헤르조그 & 드 뫼롱의 인터뷰를 재밌게 읽었다.
Local Focus, Global Vision
제목부터 너무 내 스타일이다. 로컬에 집중하지만 비전은 글로벌 하다는 말이 무척 좋았다. 내가 현재 브랜딩 파트너로 함께 일하고 있는 TPZ와 TPZ가 최근에 성수동에 오픈한 공간 플라츠도 생각난 대목이었다. 사실 헤르조그와 드 뫼롱의 인터뷰 중 많은 내용이 TPZ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성수동을 사랑하고, 다른 도시를 닮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성수동만이 가진 매력에 집중하고 싶어 하는 마음. 오래된 것들을 없애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보존하면서 새롭게 재창조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
TPZ의 시온 대표님과 TPZ가 하는 모든 업무의 콘텐츠 및 브랜딩을 총괄하고 있는 지원님의 이야기를 듣고 썼던 내부 인터뷰 글 참고: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인터뷰의 마지막에 나왔다.
"우리의 전략은 기존에 있던 소재를 부정하지 않고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보다 자연스럽고 창의적이며 종종 예상하지 못한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팬데믹은 도시 생활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했습니다. 공공장소, 그러니까 공원이나 상업지구만이 아니라 문화시설, 만남을 도모하고 정체성을 키울 수 있는 특정 공간에 대한 접근성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팬데믹 시대로 온라인에서 일하고 만나는 시간이 길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오프라인 공간의 중요성은 더욱 대두되고 있다. 유현준 건축가는 부자일수록 오프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고 말한다. "항상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몸과 연결된 오프라인 공간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헤르조그와 드 뫼롱 건축가들의 말처럼 자연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키울 수 있는 특정 공간"도 점점 더 중요해질 것 같다.
네이버후드 리빙 매거진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속해 있는 여러 온오프라인 공동체가 연달아 떠올랐다. 주말에 진행했던 ‘밑미맨션’도 떠올랐다. 코로나 때문에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온라인에 208동, 218동을 만들어서 매시간마다 리추얼 메이커들의 방이 열렸다. 나는 토요일 오전 10시에 208동에서 ‘나만의 리추얼 만들기’ 방을 열었다.
특별히 싱어송라이터 이츠미를 초대해서 라이브에 맞춘 리추얼을 진행했는데, 100명이 넘게 모여 주셔서 어찌나 감사했는지! 츠미는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한 적이 아직 없다고 했다. 100명과의 라이브는 온라인인 덕분에 가능했던 셈이다. 츠미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대화창 반응도 뜨거웠고, 같이 실시간으로 이모티콘으로 손뼉 쳐주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연대감이 느껴져 신기했다.
융플리는 내 마음을 보살펴주는 온라인 공간이 된 지 오래다. 거의 1년가량 약 20명의 멤버들과 매일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나누는 리추얼을 진행하며 가장 놀라울 정도로 좋았던 것은 매일 누군가의 일기를 읽게 된다는 점이었다.
어딘가에 속한 어떤 일을 하는 누구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생각을 통해 이 사람이 누군지를 먼저 알아간다. 때로는 슬픔을 나누고 때로는 기쁨을 나눈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긴 날, 누군가에게는 마음이 아픈 일이 생긴다. 매일 멤버들의 일기장을 읽으며 느낀 것은 우리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일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터뷰이 한 명은 바비칸을 “도시 속 안식처(urban sanctuary)”라고 부른다. 내게는 융지트와 융플리가 그런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 융지트로 좋은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융플리에서는 온라인에서 느슨하게 연결된 채로 다정함을 주고받는다.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 나에게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나의 색깔과 마음 상태는 더욱 견고하고 단단해진다. 누군가와 연결이 되며 삶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더 깊고 충만하게 느끼고 있다. 내가 가진 좋은 에너지를 나누며 가치를 공유하는 더 큰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을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
*해당 업체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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