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서 책을 읽어본 일이 없다.
항상 바쁘게 다니느라 책 읽을 여유는 없었다.
이번 한 달 살기 하며 책을 읽어보니 좋다.
여행지에서 읽는 글은
마음에 더욱 깊은 무늬를 남긴다.
소중한 무언가를 더욱 잘 기억하고 싶을 땐
기억을 연결시키는 일이 효과적이다.
옛날 사진을 보면 그때의 추억에 잠기는 일,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는 일,
모두 '기억의 결부'에 관한 일이다.
인스타 피드에 키워드 태그를 달 듯
그때의 기억에 사진이나 노래로 태그를 다는 일이다.
여행 가서 책 읽는 일도
그 여행지에 책이라는 태그를 다는 일과 같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이 여행지에 대한 기억에
어떤 이야기를 결부시킨다.
그래서 나는 읽고 있는 책을 여기저기 들고 다닌다.
숙소 마당에서도
바닷가에서도
차에서 쉴 때도
자기 전 침대에서도
자꾸 꺼내서 책을 읽어본다.
여행지의 곳곳에서 책을 읽으며
책에 대한 기억을 그곳의 오감과 연결시킨다.
그런 측면에서 여행지의 북카페를 가는 일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탁월한 선택이다.
특히 제주에는 사랑스러운 북카페들이 많다.
제주스러운 인테리어 속에서
제주 청귤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빈백에 파묻혀 아늑하게 책을 읽는다.
내 목적에 안성맞춤이다.
책 읽기 좋으면서도
제주다움을 연결시킬 수 있다.
그렇게 이 북카페는
낭만적인 공간이자
기억에 남는 공간이 된다.
나는 단순히 여행 간다는 이유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가져오고
여름 여행이라는 이유로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항상 그곳에 남아>라는 책을 가져왔다.
단세포적인 책 선택이었지만
여행과 여름을
깊고 충분하게 경험하고 있다.
어디 갈 때마다 책을 펼치는 나를 보고
이미지 관리 아니냐며 놀리는 친구도 있다.
바닷가에서 책을 펼치는 나조차도
이런 시선이 의식될 때가 있다.
하지만 글이 좋은 사람이라면
이런 선입견에도 여행지 곳곳에서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지금 읽고 있는
한정원의 <시와 산책>엔 행복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행복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니다."
당신이 책 읽기가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