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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남 Aug 05. 2019

0. 남은 것에 대한 소중함

어느 날 미니멀 라이프가 문을 두드렸다.


후우
한숨을 크게 쉬어본다
후-우우우

 어떻게 해도 이 좁디좁은 방에서 나는 안정을 느낄 수 없다.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짐들 속에선 말이다.

과연 말로만 그럴까?

 실제로 한번은 책상 위에 놓는 책장이 무너져서 책장과 함께 책과 잡동사니가 쏟아져내린 적이 있다. '아, 무연고지에서 나는 죽습니다. 엄마 아빠 감사했어요'라는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만큼 아찔했다.


대략 1년 쯤 거주했을 당시의 자취방


 대다수의 서울로 상경하여 학교를 다니거나, 취직을 하는 사람들은 본가에 철 지난 옷이나 학창 시절부터 써오던 가구는 그대로 둔 채, 옵션 있는 원룸 월세방이나 하숙집, 혹은 오피스텔에 거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1톤 트럭에 가득 짐을 실은 채 침대와 옷걸이, 커튼, 책상, 의자 그리고 사계절 옷가지. 그야말로 나와 관련한 모든 짐을 싣고 올라왔다. 덕분에 부모님이 떠나신 자취방에서의 첫날밤은  고향집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싱크로율 99% 정도의 환경에서 푹 잤다.


하지만 첫날밤만 그랬지 혼자 사는 삶은 녹록지 않았다. 술을 먹고 들어온 새벽의 자취방은 아침에 나간 그대로의 난장판이었고, 늘 깔끔하리라 생각했던 바닥은 매일같이 먼지를 뿜어댔다. 절로 엄마가 그리워졌고, 또 자취방에 대한 로망이 산산조각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좁은 공간, 무연고지, 떨어져사는 가족 등등 잡다한 이유로 나는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집은 더이상 안식의 공간이 아닌 나를 옭아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감옥같은 공간으로 변해있었다.


더이상 침대에 누워서 여유를 부려도, 오랜만에 맛있는 배달음식을 시켜먹어도, 재밌는 예능을 봐도 마음엔 먼지가 내려앉은 듯 답답했던, 아니 막막했던 나날이 지속됐다. 그리고 때마침 책장까지 무너지는 총체적 절망의 순간을 겪게 된다.



지옥같던 어느날 학교도서관에서

 미니멀 라이프 계의 필독서 급인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게 됐다.


10평짜리 자취방보다 좁아터진 그 공간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의 얼굴은 소유하지 못해서 기죽어있거나 슬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소유한 것들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때부터였을까 잔뜩 껴안고 사는 게 미덕 같은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저 사람처럼 아무것도 없어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짐같은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느꼈기에 도리어 비워서 바꿔버리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장 문제였던 옷장의 옷들을 추려냈다. 이내 책장의 책들. 플라스틱 서랍장의 한 칸 한 칸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잘 쓰지 않는 가전제품과 잡동사니를 중고 거래하게 됐다.


덕분에 한창 비우던 시기에는 30만 원 정도를 중고거래로 벌기도 했다. 부모님께 말하면 '그게 얼만데 아까워서 어떡하니'라고 하셨지만,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 집에서 묵혀있는 것보다는 더 필요한 누군가에게 쓰임 받는 게 의미 있지 않겠나 생각하게 되었다.


자취방에 머문 지 2년여 되는 어느날. 곧 이사갈 예정

 그렇게 나는 1톤 트럭에 터질 만큼 가져온 짐들 중 절반 이상을 비워냈다. 무너진 책장과 책상으로 한동안 책상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살만했다. 어차피 학교에서 내내 책 보다가 집에 오면 공부를 안 하기 때문. 전체적인 짐이 줄어드니 방에 항상 내려앉던 먼지의 양도 줄어들었다.


 물건은 이제 더 이상 좁은 공간에 낑겨들어가 숨어있는 게 아니라 '제 자리'를 소유한 채 전시되어있었다. 백화점 명품관의 가방들처럼 고고하게 있는 꼴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촌스럽고 오래된 물건들이지만 한눈에 쏙 들어올 만큼 잘 정돈되기 시작했다. 지옥같던 공간은 더이상 지옥이 아니었다. 여전히 벽지엔 얼룩이 있고, 밖은 축축한 다세대주택의 방한칸에었지만, 공간은 나에게 여유를 알려줬고, 빈 공간에 내리쬐는 햇살을 알려줬다.


 질기게도 머물던 2년의 자취생활을 끝내고

가족과 함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된다.


내 방은 10평 방에서 2.5평짜리 우리 집에서 제일 작은 방으로. 조건은 단 두 가지였다. 기존에 망가진 책상을 버리고 작은 책상을 두는 것과. 접이식 매트리스를 사용하는 것.


두 가지 간단한 조건이 통했고,

나는 더 좁은 방에 또다시 내 짐들을 넣게 된다.

짐정리가 끝난 새로운 내 방

화이트톤과 얇은 프레임의 가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대적으로 적은 양의 짐은 2.5평방을 생각보다 넓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나는 2년 지난 현재까지도 이 방에서 야금야금 비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비록 유명한 미니멀리스트처럼 방한칸에 나 홀로 앉아있는 그림 같은 연출 샷은 불가능할지라도, 더 이상 이 공간은 나에게 부담이 아닌 쉴 공간이자 '내 장소'가 되었다. 좋아하는 옷가지와 늘 사용하는 항수, 꼭 필요한 것들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사는 이런 삶도 미니멀 라이프라고 감히 선언하고 싶다. (a.k.a 신남의 미니멀 라이프)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간에 대한 나의 인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보듬는 경험까지 하게 되었기에 나는 굴러들어온 미니멀라이프를 삶의 중요한 기준점 중 하나로 정하게 되었다.


앞으로 풀어놓을 몇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비우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던 그 누군가

물건에 대해 자유롭지 못했던 그 누군가

마음이 답답했던 그 누군가가

비워가고 또 가장 소중한 것만 남겨놓는 과정을 통해 각자의 간결한 삶을 만들어나가길 소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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