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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VIN Jan 16. 2024

본격 외주생활 시작하기 (하)

mavin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생존하는 방법

업계의 흐름을 읽어 내리는 건 조금 이해가 됐지만 뭔가 다 안 익은 국수가닥 끊어지는 느낌으로 중간중간 일이 뚝뚝 끊겼다. 그러면 내 마음도 그림을 대하는 태도도 뚝뚝 끊어졌다. 이때마다 내가 마음을 다듬었던 몇 가지가 있다.


사람의 가치는 그림의 가치와 별개

엄청 유명한 작가분들은 사인회도 하고 거의 연예인급으로 사람들이 따르지만 나는 갈길이 구만리라 상당히 저가의 외주작업으로 버텨야 했다. 생계가 유지되나? 싶을 만큼 저가인데 이게 어느 정도냐면 에이전시에서 일명 양치기 (퀄리티는 그리 높지 않지만 양이 상당히 많은 작업) 작업을 통으로 얼마 해서 일을 했다. 금액을 이야기하면 불쌍하다고 하거나 핀잔을 할게 뻔해서 말은 안 하지만 장당 최저시급 간당간당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이런 일을 많이 받다 보면 자존감이 급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게 롤러코스터처럼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가끔 내 가치도 그 그림의 가치로 치부될 때가 있다. 이게 내가 나를 판단할 때도 있지만 외부에서 그렇게 판단할 때가 더 크다. 최소한으로 나만큼은 내편이 되어주자. 그림을 그릴 때는 나 스스로 엄격하더래도 잘 나온 그림이 있다면 칭찬을 해주자. 난 그러질 못해서 이후에 큰 파장으로 돌아왔다.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나에게 월급을 주는 곳이 많다

직장인일 땐 꾸준히 돈이 들어올 곳이 있다.  지난날 회상해 보면 나는 신입 때 참 좋았다. 책임도 크게 안 져도 되는 위치에 퇴근도 하고 디자인에 대한 인풋만 있지 아웃풋은 실질적으로 스트레스 안 받아도 되는 위치였다. 하지만 회사 짬이 차고 난 뒤부턴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월급이 달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마약 같았다. 이 돈 때문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이걸 다 하면서 언제까지 이 삶을 유지할까?라는 생각들이 늘 들었다. 그래서 퇴사하고 '나 뭐 해 먹고살지?' 해서 다시 취업하고 마약 같은 월급을 잘 받아먹었다. 프리랜서가 되면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이 월급에 노예가 아니라는 점 그래서 불안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 이 불안감을 극적으로 바꾸는 방법은 '내가 포트폴리오를 들고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면 오히려 월급을 주는 회사는 1개가 아닌 수십 개가 되는겠네'였다. 친구가 작업실에 와서 이야기했던 게 생각나는데 '너는 프로젝트 끝날 때마다 다른 회사에 이력서 내는 기분으로 계속 어필하고 다니겠다'였다. 맞다. 근데 이게 처음이 어렵지 조금 익숙해지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그때 나처럼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시작이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발 벗고 나서서 내 그림을 앞세운다면 환경은 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감사합니다

내 생이 80이면 그 절반 가까이를 살았는데 그중에 이렇게 많이 감사합니다를 말하고 다녀봤을까? 난 회사 다니면서 한 번도 감사합니다를 해본 적이 없는데 독립하고 뭐든 감사합니다로 채워갔다. 아직 뜨내기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일을 맡겨준 것도 그렇고 실력을 떠나서 믿어준 부분에서도 감사하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그림실력은 다 고만고만해지는 듯하다. 그럼 그 사람의 감사한 태도에서 일이 성사되거나 그다음 일이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니 무슨 일에든 다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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