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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VIN Jan 21. 2024

내가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mavin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생존하는 방법

상업적인 일러스트 의뢰를 받다 보면 기획서가 존재하고 그 기획서엔 의뢰하는 기업의 이미지나 기획자의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이 되어있다. 기업의 이미지는 '따뜻한, 혁신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이 대부분이고 그 이미지들을 잘 담아내는 게 나의 몫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그 추상적인 단어와 내가 생각하는 표현의 갭을 줄이는 과정이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이런 작은 단어에서 파생되어 일의 흐름을 틀어버리는 몇 가지들을 공유하려고 한다. 내가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기획서의 중요성

초반에 얘기했던 기획서의 중요성은 한번 얘기했지만 이게 어떤 식으로 중요한지를 공유 안 했다. 이번에 공유해 보면 기획서엔 필요한 글들만 존재한다. 내부에서 '이런 제품을 홍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방향으로 풀고 싶습니다.' 해서 전달을 받으면 나는 일정과 함께 제안에 필요한 것들(기존에 그림들이나 영상들)을 전달한다. 이때 기획서의 방향이 명료하면 좋은데 보통 명료라는것보다 함축적이라는 말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명료한 건 맛으로 치면 깔끔한 허브 같은데 함축적이라는 건 필요한 멋진걸 다 담아서 한 그릇에 담은 맛이다. 약간 마라탕? (마라탕 국물 안에 들어간 여러 가지 재료들의 맛이 다 있다.) 그래서 그중에 확실하게 집어내야 한다. 전달하는 사람이나 전달받는 사람들은 함축적인 단어들을 다시 정리해서 서로를 이해시켜야 한다. 이때 가장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사실 내가 그리는 그림들은 정말 얼마 안 걸린다. 작정하고 그린다면 앉은자리에서 10시간? 하루에서 이틀정도 소요되는 시간을 쓰면 된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단계에서 '아'와 '어'가 다르기 때문에 이후 시간을 상당히 많이 잡아먹는다. 만약 아, 어, 우, 오라는 기획을 다 가져와서 보여달라고 한다고 하면 앞에 말한 그리는 시간이 전부 다 그려 40시간을 잡아먹는 것이다. 물론 스케치단계에서 끝나면 좋겠지만 그 모든 스케치를 그려도 시간은 10시간은 그냥 넘는다. 그러면 이런 한건으로 다른 건들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기획서를 전달하는 입장에서나 전달 받고 진행하는 입장에선 꼭 이 부분의 갭을 줄여나가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말의 중요성

기획서를 받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이때 서로의 위치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가끔 무례한 클라이언트는 '기획이 이런 건데요 이건 레퍼런스고요 저희는 이렇게 그리길 원해요 그래서 의뢰드립니다.'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보기엔 어? 문제없는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을 '이런 게 필요하고 저희가 보는 방향은 이런데요 이게 그 레퍼런스입니다. 일정 내에 가능하실까요?'라는 내부에서 보는 방향성을 먼저 제시해줘야 한다.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사람입장에선 방향이 안 보이면 일일이 다 체크 업해서 제안이라는 걸 들어가야 하는데 이게 공수고 조금 큰 에이전시 같은 회사에선 이 제안동안의 비용이 따로 발생한다. 반대로 시각화시키는 입장에서는 조금 무례하다고 느낄 기획서를 받아봤을 때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말자. 잘 모를 수 있는 부분이다.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서 대화를 이끌어 가야 하는데 제일 좋았던 커뮤니케이션은 '이 부분은 이런 식으로 진행을 도와드리면 되는 부분일까요?'라든지 '제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이런 부분은 이렇게 진행을 도와드려야 할까요?'라는 최소한의 상냥함과 상대방이 들었을 때 기분 나쁘지 않으면서 질문의 답을 명확하게 들을 수 있게 진행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말을 잘못하면 서로 엄청 틀어지는데 예를 들어 '이거 이렇게 해서 주셔야 하세요' 같은 상대방의 직책 업무에 지적을 두는 말은 삼가야 한다. 이건 회사를 다니면서 가끔 무례한 기획자가 디자이너였던 나에게 던질 때 하는 말들이었다.


데드라인의 중요성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건 회사를 다닐 때도 그렇고 매해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부분인데 가장 민감하고 어려운 부분이다. 일정 내에 원하는 퀄리티로 전달을 드려야 하는데 개인의 문제가 생길 시 데드라인이 어겨질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편이고 루틴이 안 망가지게 정리하는 편이다. 그래서 술도 안 마시는 편인데 1년에 딱 한번 과하게 먹을 때가 연말에 클라이언트분들과 함께 자리를 했을 때다. 이걸 어느 정도로 강박감을 갖고 진행한 적이 있냐면 오른손이 사고로 으스러졌다. 뼈가 부러졌는데 닭뼈처럼 가루로 흩어져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킥오프에 제안 시안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걸 그려낼 사람이 나뿐이었고 그림체를 누가 대신 그려줄 수 없는 그림체였다. 그래서 손에 긴급하게 압박붕대를 두르고 검지와 엄지에 겨우 태블릿펜을 감아 쥐고 그려나갔다. 진통제를 먹으면서 다 그리고 파일을 시간 내에 전달하고 바로 병원으로 가서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다. 어떻게든 데드라인은 지켜야 한다. (개인적으로 데드라인을 지키기 가장 빡센게 아이돌 신곡에 맞춰 나와야할 뮤비랑 앨범자켓이다. 작업이 완료되면 이후 검열과정을 추가로 거친다.) 진행하다 보면 내부 진행 단계에서 최고 결정권자가 보고 결정하는 시간과 협의하는 회의가 길어지면 시간이 지체 되는데 이 부분은 사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결정 해야한다. 안 그러면 클라이언트의 시간이 내 시간으로 소비되는 순간이 오게 되어 내가 일을 하는 시간을 충분하게 보장받지 못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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