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고의에 의한 막힘

집수리계의 삼고?

by 햇살나무 여운


집수리 영역 중에서 특히 고강도, 고중(重)도 작업을 꼽자면 욕조와 변기, 욕실수납장, 세면대 정도를 들 수 있겠다. 그만큼 무겁고 힘들고 낙하와 추락의 위험이 높다. 사수와 조수가 아무리 합을 잘 맞춰도 돌발 상황이나 작은 부상들을 감수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욕조는 욕실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거대하고 무겁기 때문에 우리의 체급에는 조금 무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욕조를 들어내다가 사수의 엄지발톱도 함께 들어낸 적이 있어서 더욱 조심하게 된다.



욕실장이나 욕조 교체 작업을 하면서 매번 느끼지만, 건설사들이 어쩜 이렇게 타일을 아끼셨는지 정말 아슬아슬하다. 욕실수납장을 교체하고 나면 뒷면에 타일이 비어 있어 보기 싫지 않게 몰딩과 실리콘으로 아름답게 마감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끝맺음이다. 게다가 욕조는 폭과 길이만큼이나 정확한 높이 측정이 필수적이다. 앞뒤 길이는 맞춰 자를 수 있지만, 높이는 채울 수가 없다. 물이 매일 직접 닿는 욕조의 벽면 타일이 모자라다고 몰딩을 덧댈 수도 없고, 사람 체중을 견뎌야 하는 만큼 낮게 안정적으로 앉히려면 임의로 벽돌이나 시멘트로 단을 높일 수도 없다.


욕조를 뜯어보면 속이 아주 가관이다.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혀 아름답지 않다. 겉만 번지르르한 고급 브랜드 아파트도 다 마찬가지다. 방수처리가 된 바닥이나 배관에 누수가 될 만한 흔적이나 틈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욕조를 앉힌 후, 물을 틀어 배수가 잘 되는지까지 마저 확인한다. 측면 덮개를 닫고 나면 반드시 잊지 않고 챙겨야 할 센스가 하나 있다. 욕조에 물을 절반 정도 넉넉히 받아서 안쪽 바닥에 작업한 시멘트가 골고루 균형감 있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루 정도 눌러줘야 한다. 흔들림 없는 편안함은 침대뿐만이 아니라 욕조에도 필요하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아주 가끔만 하고 싶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안 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집 역시 우리 몸과 마찬가지로 처음 원래 있던 것을 그대로 잘 관리해 가면서 오래 쓰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사람이 살다 보면 그게 안 되니 문제겠지만.




정작 고난도의 작업은 따로 있다. 타일과 하수구 막힘이다. 폐기물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타일은 무겁고, 힘들고, 한 장 한 장 단차를 고르게 맞추려면 정밀한 기술도 갖춰야 하고, 무엇보다 몹시 위험하다. 특히 철거할 때, 깨진 타일은 유리조각이나 칼날과 같다. 손이나 팔, 발목을 긁히는 일은 부지기수다. 마스크를 착용한다고 해도 파편이 튀는 경우가 많아 얼굴을 베일 위험도 높다. 그래서 이 일을 하면서 사수와 조수 모두 안경의 수명이 매우 짧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이 모든 상황은 서로 알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이니 그러려니 한다.


마지막으로 하수구 막힘! 조수의 기피 대상 1호는 변기, 2호는 하수구 막힘이다. 그러나 동시에 결코 피할 수 없는 작업이기도 하다. (변기 이야기는 해도 해도 이미 너무 많이 했으니 그만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하수구 막힘 중에서도 욕실 하수구 막힘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사 들어온 지 두세 달 정도 되었는데, 최근에 에어컨 청소를 하며 욕실 바닥에서 필터를 씻는데 도저히 물이 안 빠진다는 세입자의 연락을 받았다. 부엌 싱크대 하수구 막힘이나 변기 막힘은 그럴 만한데, 세면대 막힘도 아니고 욕실 하수구 막힐 일이 도대체 뭐가 있을까? 머리카락이 좀 쌓인다고 해도 대부분 유가 덮개에 걸려서 치우게 되어 있는데 말이다. (여기서 ‘욕실 유가’의 어원 역시 이 바닥에서 통용되는 일제의 잔재다. ‘유까(床, ゆか)’는 바닥, 마루라는 뜻으로 욕실 바닥 배수구를 가리킨다.)


세대에 방문해서 내시경으로 하수구 배관 안을 살펴보니 완전히 꽉 막혀 있었다. 시멘트였다. 앞에서 욕조 작업을 할 때 시멘트를 쓴다고 언급했듯이,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여러 종류의 반죽 덩어리를 사용한다. 시멘트의 한 종류인 속경 몰탈, 페인트, 실리콘, 본드, 도배풀, 우레탄 등등 다양한 접착제들 말이다. 우리만 해도 눈대중으로 얼추 맞춰도 시멘트 반죽이 남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물과 하수구가 가깝다고 절대로 그 집 욕실에서 남은 재료를 흘려보내거나 사용한 도구를 씻지 않는다. 반드시 따로 갈무리해서 폐기물봉투에 버린다. 굳어서 막힌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번 막힘은 기존방식대로 위에서 아래로 뚫을 수가 없었다. 너무 단단히 막혀서 뚫리지가 않았다. 아래쪽에서 깨서 긁어내야 했다. 아랫집에 양해를 구하고 시간을 다시 잡고 장비를 준비해서 재방문했다. 중력을 거슬러 아래에서 위로 뚫는 건 훨씬 더 힘이 든다. 남의 집 욕실 천장 점검구를 통해 작업해야 하는데, 좁고 낮아서 시야확보도 어렵고 운신의 폭도 극히 제한적이다. 해당 배관이 멀면 더더욱 낭패다. 곳곳에 튀어나온 녹슨 못에 긁히기라도 하면 파상풍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고, 가장 최악의 경우에는 몇 년 묵은 지도 모를 오물을 그대로 뒤집어써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물론 쉬운 방법도 있다. 그냥 속시원하게 천장을 다 뜯고 작업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병원에서도 왜 가능하면 개복수술 안 하고 복강경 수술을 하겠는가?


작업은 두 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고, 시멘트가 양푼이 한가득 나왔다. 사수는 역시나 여기저기 긁히고 찍히고 쓸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막힘이자 빡침이었다. 막힐 줄 뻔히 알면서도 들이부었다는 뜻이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그리했는지는 몰라도 같은 업자로서도 너무나 괘씸했다. 특히 아파트에서는 그 집 한 집 문제로 끝나지 않고, 괜히 관련 없는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고 불편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귀차니즘에 그랬다면 더더욱 큰일이다. 상습적이 될 테니까. 물리적 작업이 힘든 것도 있지만, 처음도 아니면서 매번 그런 진상을 현장에서 목도하는 순간들이 오면 나는 아직도 인간에 대해 실망할 구석이 남아있나 새삼 놀랍다.




배관주변 녹슨 못 제거 후 배관을 감싼 비닐 벗김
마지막 원상복구 똑같이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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