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계에도 보이스피싱의 마수가?
전쟁의 여파로 모두가 당장 급한 일 아니고서는 미루기로 했는지 일이 거의 없다. 치솟는 기름값에 쓰레기봉투 품절대란에, 무엇보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쓰이는 소모품 품귀현상까지 먼 나라의 전쟁이 이렇게 시차도 없이 곧바로 당장 우리 생활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미치다니! 우리가 여전히 석유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현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사흘 연속 공치고 있으니 슬슬 그동안 모아놓은 고철을 분류해 고물상으로 길을 나서 본다. 고철이 제철을 만나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값을 받았다. 이 또한 전쟁으로 알루미늄이며 구리며 원자재 가격이 치솟은 탓이라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남들은 금을 살 때 우리는 고물을 팔고 있으니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팔 고물도 없지만, 그냥 정당하게 제대로 일을 해서 버는 게 더 당당하게 기쁘다. 얼마 전 뉴스에서 고급 자동차 바퀴 휠 절도 사건을 본 기억도 난다. 시골 외곽 작은 교량들의 명판이며 전신주에서 전선까지 훔쳐다 판다고 하니 구릿값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누가 더 보태지 않아도 하루하루 만만치 않은 자영업자의 생태계에 최근 들어 정말 납득이 되지 않는 어이없는 소식들이 부쩍 자주 들려온다.
"진짜 말솜씨가 현란해요. 정말 그럴싸하거든요."
누군가는 노인복지센터라고 했고, 인근 대학병원도 있고, 심지어 교도소도 있었다. 물론 모두 사칭이었다. 보이스피싱이다.
핵심은 이러했다. 대부분이 공공기관이거나 비영리단체임을 내세우며 직거래가 어려우니 중간에 반드시 지정한 업체를 껴서 구매대행을 요구하는 것이다. 처음엔 작은 규모의 단순한 작업 문의로 시작했다가 다른 작업도 가능하느냐며 물고 늘어지기 시작한단다. 어느 동료 업체의 말로는 오히려 '혓바닥이 너무 길어서' 그 현란함에 의심이 가기도 한다고. 그러나 작업의 내용이나 금액의 숫자가 워낙 구체적이고 치밀해서 제법 목돈이 되겠다 싶어 구미가 당긴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지정한 중간업체를 통해 자재를 미리 구매해서 준비해 주기를 당부하고, 그 업체는 계약금 선납을 요구해 온다는 것이다. 에이! 설마? 그리 쉽게 속을까? 편집 인쇄 기술이 너무 발달한 탓인가 명함이며 공문이며 정말 감쪽같이 진짜처럼 보내오고, 심지어 사칭한 명함은 같은 이름으로 그 기관에 근무하는 실존인물인 경우도 있다고 했다. 무슨 첩보영화도 아니고 놀랍지 않은가? 사기를 치려면 얼마나 부지런하고 주도면밀해야 하는지 오히려 그들에게 배울 지경이다. 아니, 그런데 정말로 궁금하다. 그 좋은 머리와 열정을 왜 그런 쪽으로 쓸까?
보이스피싱의 마수는 사수도 피해 가지 않았다. 사수가 받았던 전화는 너무나 재미있게도, 중학교에 변기 10개를 한 번에 교체하는 공사를 할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새로 짓는 학교도 아니고, 파손된 것 하나만 고치는 것도 아니고, 왜 한 번에 전부 교체를? 게다가 하고 많은 업체들 중에 이토록 영세한 우리를 왜? 다행히도 우리 체급을 넘어서는 일이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사수가 너무 가볍게 단박에 거절하며 작업 중이라고 끊는다고 하니 또 다른 작업은 못 하느냐며 역시나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닌가. 그날 오후 지역 업체들 단톡방에서 같은 전화를 여럿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타깝게도 다른 지역에서는 정말로 계약금으로 몇 백만 원을 송금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낚시를 무는 건 절박함 때문이다. 사람이 당장 절박해지면 물불 안 가리고 사리분별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가장 화가 나는 지점은 바로 그 마음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한 건 한 건이 아쉽고 간절한 가운데 의심이 자란다는 사실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제 비슷한 문의가 오면 사기가 아닌가 의심부터 하고 보는 부작용이 생겼다.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 정보를 나눈 덕분에 미리 조심해서 피해가 커지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신종 보이스피싱이 정말로 전국구로 장르를 가리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진짜 그러지 말자. 그렇게 살지 말자. 나가서 10만 원 벌기가 얼마나 힘든데! 누군가에게는 그야말로 그게 전부일 수도 있는데! 직접 해봐야 그 마음 알지, 당해봐야 알지.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내 손 내 땀으로 일해서 버는 돈이 당당하다. 그만큼 더 귀하고 값지다. 그냥 힘들고 어렵게 버는 쪽을 택하련다. 어디까지나 우리 체급에 맞게 소소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