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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i eun Apr 30. 2024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뱀태몽으로 삼일절에 태어난 용띠 아들.


삼일절에 낳은 아들은 어느덧 생후 60일차가 되었고, 이틀 뒤면 완연한 봄이 찾아오는 5월, 내 아이가 태어난 지도 두 달이 되어간다.


‘이 아이가 지난달 내 뱃속에서 막 나온 아기라니.’

아이의 눈과 얼굴과 몸을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시간이 어쩜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나, 싶은데 어쩐지 내 눈앞에서 버둥거리며 아직도 뱃속에서 해오던 배냇짓을 하는 아들이 고작 생후 두 달 차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훌쩍 커버린 것만 같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인생의 첫 페이지를 알아가고 있달까.

뱃속에서 아이를 낳고부터 병동과 조리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애기를 안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매일 이십사시간을 내 품에 안고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를 반복하니 두 달을 안고 있던 것이 꼭 반년은 안고 키운 것도 같다.


‘넌 언제쯤 훌쩍 커서 나와 함께 시선을 나란히 하며 세상을 바라볼까?’

생각하다가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그렇게 빨리 커버리면 안 되.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매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하루에 대략 2-3시간 간격으로 대여섯 번 젖병을 물리고, 식사 후엔 삼십 분씩 안고서 트름을 시키고, 여덟 번 정도 기저귀를 갈아주고, 이틀에 한 번씩 목욕을 시켜준다. 잠투정이 찾아오면 부드럽고 안아 올려 내 어깨팍과 가슴팍에 아기 얼굴을 묻히고 스르르 몸의 긴장이 풀리며 이완이 될 때까지 입에 쉿소리를 크게 내어주며 등을 토닥여준다.

어른만큼 빠르게 자라나는 손톱이 보일 때면 종잇자락같은 가녀린 손톱을 잘라주고 살포시 생겨난 상처들은 비판텐연고를 조심스레 새끼손가락에 묻혀 발라준다.

때때로 아이가 침대도, 푹신한 쿠션도 마다하고 내 품만을 요할 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더라도 아이를 품에 안고 한참 동안 요람의 역할을 자처한다.


아무리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럽더라도 하루 내내 24시간 아이만을 바라보며 집 안에서의 생활을 보내다보면 알게모르게 한 여자로서의 내 삶이 사라지고 있는 듯한 묘한 우울감에 슬프기도, 무기력함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또 아이를 내 품 안에 쏙 안아 품고서 아이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심장과 심장 사이의 심장박동을 나누며 쌕-쌕 뿜어지는  아이의 숨결을 느끼는 일은 너무도 아름답고 소중해서 슬플 만큼 벅차오르게 만든다. ‘이렇게 내 품에 쏙 한아름에 안기는 날도 금방 지나가버리겠지?’ 생각하면 두 팔로 한없이 안고 있는 것조차 힘들지가 않다. 뼈대가 두껍지도 않아 아이를 내내 안고 있으면 손목이 나갈 것도 같은데 이 감각마저 내게 소중하지가 않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아이의 소중한 감각을 더없이 느끼고 품고 가는 것이 내겐 더 가치롭다. 아기의 몸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하게 뿜어져오는 온기, 귀여운 체취, 숨결 하나하나 크게도 들려오는 쌔근쌔근 숨소리, 옹알이소리, 한숨소리까지. 이 순간은 또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겠는가,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아리다. 임신을 하면서부터 일을 그만두고 출산 후로 아이만을 바라보며 집에서 육아맘이 된 지 두 달.

온 세상이 아이로 가득 찬 엄마의 삶을 난생처음 겪어가는 것이다.

아이를 통해 울고 웃고 행복감이 좌지우지되기도 하며 애간장을 태우기도 하고 여지껏 느껴본 적 없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느껴본다.


윤우는 2월 29일 윤달을 고작 두 시간 반 정도 보낸 뒤, 3월 1일 두시 이십육 분에 2.95kg의 몸으로 세상에 나와 남편과 내 곁에 찾아왔다.

윤달에 태어나 생일이 4년 주기로 찾아올까 봐 그것만큼은 피했으면 하던 내 마음과 달리 정확히 2월 29일 새벽 세시반부터 찾아온 진통에, 장장 열여섯 시간을 넘게 홀로 집에서 버텼던 나는 진통시작부터 병원에 도착해 분만실에 누워있는 내내 ‘오늘만큼은 넘겨주기를’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 걱정이 무색하게 윤달을 지나 새벽 두시 이십분을 넘겨 윤우가 사랑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내 뱃속이 아닌 첫 바깥세상과의 접촉을 시작했으며 그렇게 내 품에 처음으로 안겼다.

윤우를 낳고 남편과 함께 몇 시간의 쪽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아빠는 윤우의 탄생소식을 듣고 삼일절에 태어나 큰 인물이 되겠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셨고, 임신기간동안 시어머님은 한동안 자꾸 꿈에서 뱀이 나타난다며 윤우의 태몽을 꾸어주셨다. 심지어 용띠로 태어난 윤우는 어쩐지 뱀 태몽에 삼일절에 태어나 용띠를 가진 아이라는 생각에 꼭 큰 인물이 되려나, 하는 식상한 부모의 생각을 품었으며 이내 그런 나 자신이 우스워 고개를 흔들며 ‘무엇이 되든 네가 사랑하는 삶을 선택하며 살으렴. 그게 행복이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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