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찬찬히 세세하게
어릴 적,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 몇년을 늘같이 꾸던 꿈이 있었다.
커다란 화산폭발과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붉고 검은 용암들,
어떠한 배경도 없이 무수한 실타래가 끊임없이 엉키고 설키기를 반복하던 형태적인 꿈.
ㅡ
어떤 시점부터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 자신의 일련의 행동 패턴들과 반복적으로 생성되는 무수한 감정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서, 알고 싶어서,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어떤 마음들이나 행동들이 일었을 때 그것들이 어디에서 파생되어 내 몸과 정신에 뻗쳐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구석구석에 뻗쳐있어 이제는 떨치려 발버둥칠 수 없고 떼어낼 수 없는 내 살가죽 하나가 되었으며 심장에 흐르는 핏줄이 된 이것들이, 어디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들인지만 알게 되어도 나 자신을 좀 더 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으로 인한 스스로의 동정이나 연민과 같은 감정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 자신을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만은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나는 굳건하게 혼자서도 세상과 사회에 뿌리내리고 당당하게 살아나갈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 이전엔, 나는 너무도 연약한 인간이었다.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어떤 감정들에 휩싸일 때면 나는 언제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이런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감추기 바빴고 그러면 그럴수록 난 더 외롭고 고독해져갔다.
그래서 시작되었다.
내 인생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
‘왜 자꾸 과거를 돌아보냐’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지금 형성된 나라는 사람의 근원지를 찾고 싶어서.’ 라고.
‘그 근원지를 찾게되면, 나만큼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거 같아서. 나의 불안을 이해하게 될 거 같아서. 덜 고독할 거 같아서. 덜 외로울 거 같아서’라고….
언니는 내게 자주 얘기했다.
‘이 나이 되어서 아직도 과거에 묶여있냐고.’
언니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나에겐 그에 대한 대답이 있다.
“지나간 과거들을 다 되짚어보고, 온전히 나라는 사람을 내가 이해하게 되는 날, 모든 퍼즐이 맞추어지는 날,
나는 과거를 완전히 뒤로하고 앞만 보고 살아갈 거라고. 그 누구보다도 당차게 현재와 미래만을 보고 살거라고. 아주, 깨끗하게,
보낼거라고.”
그건 부정의 감정이 아니다. 아주 개운하고 깨끗하게 미련없이 다 돌아다 본 후 인생의 한 단락을 정리하고 나아가겠다는 희망찬 의지이자 긍정의 의지이다.
ㅡ
시간이라는 것이 참 안가는 듯 하면서도 흐르고 흘러 쌓이고 쌓이면서 어느덧 나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몇 해 더 넘겼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린 학창시절부터 변함없던 내 모습이라면, 늘 고독함에 잠겨 있었다는 것, 모험을 찾아다녔다는 것, 삶의 의미를 찾고자했던 청춘의 한 단락을 짙게 가지고 살았다는 것 정도였고 그건 내 주변 누구라도 금방 나라는 사람을 떠올릴 때 형용한 이미지였다.
그런 내가 그 어떤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빨리 결혼을 했으며 아이를 낳은 것이 처음엔 모두들 의외라며 아이러니했으나 어쩌면 나에게 늘 이상적인 꿈이 버릇처럼 말하던 세계여행도 아니고 방랑자와 같은 삶도 아니고 그저 단란하고 따뜻한 한 가정을 이루는 일일지도 몰랐겠다는 사실을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모습과 형태를 갖추고 말을 내뱉고 행동을 해도 나라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불안감을 남기지 않을 사람이란 믿음을 남편이 내게 심겨준 이후로 내 삶은 이전의 나에 비해 아주 많이 평온해졌다.
외로움과 뜻모를 불안감으로 휩싸일 때 차분하게 감싸주는 남편 덕에 많은 것들이 안정감을 가졌다. 그리고 여태껏 가져 본 적 없는 어떤 일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의 울타리라는 것을 나는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부터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늘 상상해왔던 것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언젠가’
‘언젠가’로 시작하는 상상.
‘언젠가 내 아이가 생긴다면 친한 친구처럼 지내야지!
같이 여행도 다니고, 쇼핑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커피도 마시면서 수다도 떨고, 전시도 다니고, 많은 것들을 나누어야지!’
그러니까,
나는 늘 그런 상상을 품고 살았던 것이다.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이와 날 닮은 한 아이를 만나면 내가 살면서 가져보지 못했던 단란한 한 가정의 모습을 만들어주고 무엇보다도 평범한 일상의 하루하루를 사랑과 온기 속에 보내고 싶다고. 내 아이에겐 그 평범한 온기와 사랑의 울타리를 가득가득 안겨다주며 남은 내 삶을 그려내고 싶다고-.
그런 상상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한켠에 늘 지니고 살아왔으니 어쩌면 그것이 나도 모르는 새 꿈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원하는 삶의 방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평범한 삶은 극도로 싫다고 여겼으나 알고보니 평범한 삶을 가장 원하고 바래왔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