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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i eun Feb 11. 2024

쥐의 꼬리가 몇 배는 커질 만큼.

우방아파트에서 다세대공동주택으로 옮겨간 음습하던 그 주택.

그 주택에 사는 몇 년 동안 나에게는 하나의 룸메이트가 있었으니, 그건 다름아닌 쥐 한 마리였다. (이름이라도 지어줄 걸 그랬나. 그랬다면 조금이나마 그 친구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친근한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 아니,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나는 그 시절 드라마를 참 좋아했다. 하교하고 집에 도착하면 텔레비전을 켜고 드라마부터 보는 일이 일상이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린 꼬꼬마가 뭘 안다고 그 진지하고도 절절한 사랑드라마를 그렇게나 즐겨봤는지 모를 일이다. 드라마 올인, 대장금, 친국의 계단, 장희빈, 보디가드…. 안 본 드라마가 없을 정도다. 드라마 앞에 앉아서 절절한 주인공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홀로 대사를 따라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그 시절.


어느 날처럼 드라마를 보며 거실에 쪼그려 앉아있을 때였다. 분명 텔레비전은 내 눈앞에 있는데 이상하게 또 다른 사운드가 귀 뒤, 저쪽 너머에서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푸시럭- 푸시럭- 푸더덕- 팔락 팔락-‘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누군가가 있나, 뭔가가 있나 싶어 돌아서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하면 곧장 들리던 소리가 멈춰 '내가 잘못 들었거니'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내 ‘내가 잘못 들었구나’ 하고는 다시 티비앞에 멈춰 드라마에 열중하고 있던 그 순간, ‘이건 분명 잘못 들은 소리가 아니다’ 확신했던 비닐봉지의 파드득 소리.


순간 온몸이 얼고 말았다. 매우 분명하고 또렷하게 들렸던 비닐봉다리의 바스락 소리가 아주 거칠고 커다랗게 들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설마.'

나의 움직임이 아주 경미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살포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부엌을 향해 조심조심 향했고, 그 순간 내가 목격한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소름 끼칠 정도로 커다란 비닐봉지 하나가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너무 소름이 끼쳐, 소리를 지르고 말았는데 그 순간 그 커다란 비닐 봉다리 안에서 조그만 쥐 한 마리가 퍼드득 튀어나오는 것을 바라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마주했던 그 쥐.

그 쥐는 우리 집에서 몇 년을 함께 했다.


아빠는 여전히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가끔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내가 질색팔색 쥐가 있다고 얘기를 해도 보이질 않는데 나갔겠거니, 했다.

명민한 쥐는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꿈쩍도 안 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늘처럼 혼자 내가 집에 있는 날이면 내가 하찮다는 듯이 집안 곳곳을 뛰어다녔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바닥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그 쥐가 보란 듯이 내 옆을 활개 치며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소리를 꽥꽥 질러도, 사실상 아무런 효력이랄 게 없는 공허한 소리지름일 뿐이었다. 그런다고 누군가 와서 그 쥐를 처치해 줄 사람 한 명 없었으니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반복되어서 이 쥐마저도 내가 우습게 보인 걸까.


그다음부터는 바닥에 앉아서 지낼 수도 없었다.

방에 있던 책상 의자 하나를 거실 텔레비전 앞에 떡하니 두고는 두 다리, 발도 바닥에 닿이지 않게 쪼그려 모아, 두 팔로 단단히 다리를 고정시킨 채 드라마를 보곤 했다.

혹여나 쥐가 내 다리와 발까지 밟고서 지나가면 안 되니까. 그럼 아마 놀랜 마음 진정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실신했을지도 모른다.


잠을 잘 때는 방 하나에 있던 침대에서 잠을 청했는데, 그때에도 무서웠다. 지금 이 순간, 그 쥐가 이 방 어딘가에서 몸을 웅크리고 내가 불을 끄고 잠을 청하는 순간 다시 활개 할 순간만을 엿보고 있을지, 부엌에서 얼마 있지도 않을 음식물쓰레기를 뒤적일 준비를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을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었으니까. 혹여나 내 방 안에 있다면 내가 불을 끄고 눕는 순간 내 얼굴 위로 튀어올라와 버릴까 봐 끔찍한 상상을 거두지 못하고 겨우 내 방안을 꼼꼼하게 다 뒤지고 문을 단단히 닫고서 잠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엌에 들어가는 날은 평소보다도 더 무서워졌다.

안 그래도 정리되지 않은 부엌에 들어가는 일은 내게 두려운 일이었는데, 그놈의 쥐가 가장 많이 활개 치는 공간이 되어버렸으니 내 발걸음이 부엌으로 향하는 걸 거부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그 쥐는 몇 년을 함께 해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불려 나갔다.

처음 내가 부엌에서 마주한 날의 몸집은 소름을 유발하더라도 거대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비록 작은 몸이 커다란 두려움과 끔찍함을 내게 안겨다 주는 건 다름없었지만.

그런 쥐가, 몇 년이 지나가도록 몸이 불려 나가는 걸 종종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직도 잊지 못할 단상이라면 엄청난 몸집을 자랑하며 부풀어 올랐던 그 쥐의 꼬리를 본 순간이었다.

그것도 텔레비전 앞에서 (여전히) 의자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는데 그 커다란 쥐가 부엌에서 나와 거실로 튀어 오르던 날이었다. 순식간에 내 눈앞을 지나쳐 텔레비전을 지탱하던 티비장 아래로 들어가던 그 쥐. 그 쥐의 통통하고 기다란 꼬리를 잊을 수가 없다. 처음 보던 징그러운 꼬리가 적어도 5배는 커진 듯한 그 꼬리. 저게 정말 쥐가 맞을까, 저 쥐는 어떤 쥐이길래 저만큼 커져버린 걸까, 더 있으면 정말 고양이나 강아지만큼 커버리는 대형쥐는 아닐까. 징그러운 살색을 띄던 그 꼬리의 길이는 얼마나 긴지, 쥐가 지나가는 그 순간에도 티비장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던 꼬리의 세세한 주름까지도 기억난다. 그리고 소스라칠 만큼 끔찍한 그 통통하고 통실하게 부풀어 오른 둘레의 크기까지도.


언니는 일찌감치 대학에 입학해, 우리가 살던 집을 떠나 다른 지역 기숙사로 들어간 지 오래였고, 언니가 없는 이 집에 언니의 흔적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

가장 큰 것이, 피아노와 가야금이었는데 그건 언니가 어릴 때 엄마가 있을 때 쓰던 것들이었다. 버리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집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던 목재로 된 멋진 악기들.

그리고 몸집을 불려 커질 만큼 커진 그 쥐는 드디어 먹을 것이 없어, 그 멋진 악기들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여태껏 아주 작은 비닐봉지의 파스락 소리가 아주 오랜 기간 날 괴롭혔던 소리였다면, 이제는 나무를 갉아먹는 ‘갉-갉-갉’하는 소리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분명히 피아노 뒤에서 나는 소리인데, ‘쥐가 목재도 파먹나…? 저것이 식사가 되는 걸까, 뭘까’ 생각하면서 나는 집에 있는 내내 그 소름 끼치는 소리를 견뎌야만 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몇 년이 지나 이 집도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온몸에서 전율이 일어나는 소름을 마주했다.

물건들 이것저것을 어색하게 트럭에 싣고는 피아노를 들어내는데…, 피아노 뒷면이 정말 어마무시하게 갉아먹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여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전기가 통하듯 온몸이 찌릿찌릿하니 요동쳤다.

고작 쥐 한 마리가 피아노의 반을 갉아먹을 정도로 우린 함께 했던 것이다. 그 집에서, 쥐와 나. 단 둘이.


아무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해, 열심히 설명했다.

“저거 쥐가 파먹었어. 쥐가 갉아먹은 거야!”


아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치 그것이 무슨 말이냐는 양.

그렇다한들 무슨 상관이냐는 양.


무슨 상관이겠어, 내가 여기서 몇 년을 지냈는데. 몇 년을 저 쥐랑 같이 지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난 참 가관이었다. 더럽기도 그렇게 더러울 수 있었을까.

쥐랑 몇 년을 동거동락하면서 살았던 그 집에 사는 동안, 몇 번의 방학을 맞이해 부산에 있는 이모집에 한 달간을 지내던 일이 몇 번 있었다.

방학은 정말 나 홀로 보낼 수 없는 기간이었으니까, 아마 이모가 부른 게 아니었을까.

그때는 그냥 오라면 가고 누구든 연락이 없으면 집에서 내도록 굶어가며 티비만 보는 게 나에겐 당연한 ‘삶 그 모든 것’이었다. 나에겐 그저 그것만이 삶의 다였다. 모든 이들의 삶이 다 그러한 줄 알았던, 삶의 모든 것.

장하게도 난 홀로 부산에 가는 일은 곧잘 했다. 버스를 타고 포항터미널에 내려, 부산 가는 표를 끊고서 버스를 타고 내리면, 이모가 마중 나와있었다.


그렇게 이모집에 가서 며칠을 지내고 나면 난리가 나는 날이 몇 번 있었다.

그때에 이모 집 2층에 지내던 이모의 친구분과 그 아래 딸래미가 하나 있었는데, 기어코 내 머리카락에서 그 딸래미에게로 '이’가 옮아간 것이었다.

그 시절에 ‘이’라는 것을 머리에 달고 다닌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나 역시도 머리카락에 이를 달고 살면서도 그런 것이 내 몸에 살고 있는 줄 알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대대적으로 그 딸래미와 나 모두 이모집에 모여, 거실 방바닥에 신문지를 가득 풀어놓고 이모가 약국에서 사 온 이 잡이 약을 머리에 잔뜩 발라 이 하나하나를 잡아가며 손톱으로 터뜨리고 죽이기를 반복했다.

“세상에, 이라니.”


그때만 해도 ‘라는 것이 벌레인지도 몰랐고 그런 것이  머리에 자라고 있는지도 몰랐으며 그런 벌레가  시대에 살아있을 종족이 아니란  정도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세상에, 이라니.” 라던 이모의 , “세상에,  시대에 이라니.”라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훗날 그것이 얼마나 큰 부끄러움인 줄 알고는 그 동생만 보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시대에 있을 수 없을 벌레를 머리카락 내부에 숨겨놓고 다니는 꼬질꼬질한 기지베…. 그게 나였다.



커다란 쥐, 쥐가 헤집어 다니며 집 안을 울려 퍼지게 만들었던 바스락거리는 공포의 비닐봉지소리.

그건 내게 긴긴 시간 트라우마가 되었다.

머리에 이도 지니지 않고, 청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뒤늦게 안 나이부터,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멀끔한 모습을 지니고 다니며 평범한 아이의 모습을 갖추어 부산에서 여타 아이들과 거리낌 없이 지내던 때부터도 나는 어디에서건 자그마한 비닐봉지소리가 나면 즉각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온몸이 꼿꼿해졌다.

그 모습을 내 친구들은 참 많이도 봤다. 반사적으로 나오는 몸과 신경의 반응이라, 그것이 ‘쥐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인지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기사, 이 시대 도시 아파트에서 어떻게 그리 집 안에 쥐가 있겠는가. 하물며 어쩌다가, 정말 어쩌다가 들어오게 되었다 하더라도 온 집안이 난리가 나며 세스코가 출동해서 곧장 쥐덫을 걸어 잡아버리고 말겠지.


이 길고 길었던 트라우마와 오동통하던 쥐의 형상이 주던 기억도 나의 어린 날 한 단상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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