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2
엄마가 생을 마감하던 때에 살았던 기와집. 그 기와집을 지나쳐 청구아파트, 그리고 우방아파트, 이후 숱하게 아빠와 단 둘이 옮겨 다니던 어둠침침하고 음습하던 수많은 주택가들.
주말이면 친구들이 김밥을 사들고 오기도하고 며칠을 꼬박 굶어 언니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던 때는 우방아파트 이후에 옮겨간 집, 술중독자아저씨가 옆집에 살던 다세대 공동주택이었다.
그 이후 옮긴 주택은 집주인이 아빠에게 사기를 쳤고, 아빠는 중학생이었던 날 두고 홀로 먼 충청도 당진으로 이사를 가버려 며칠을 혼자 두려움에 떨며 잠들다, 친구집에서 2주간을 보내던 음습하고 어두운 골목의 어느 2층 단칸방주택이었다.
그리고 악몽 같았던 전화벨소리와 문노크소리가 극에 달하던 때 내가 살던 곳이, 우방아파트였다.
각 집마다 내가 겪어낸 일련의 일들과 기억들은 내 마음속 저 깊은 끝 어딘가에 침잠해 있지만 다시 끄집어내면 언제고 다시 회상시킬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라질 법도 했을 이 기억들이 굳건하게 다시금 수면 위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라고 나는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한다. 이제는 이 기억들이 내게 상처를 주진 못하지만 이미 깊숙이 박혀있어서 일상에 전혀 피해가 되지 않는 살에 파묻힌 파편 같은 것들이 된 걸까.
그렇다면, 우방아파트에서의 기억 중 아주 진하게 남은 큰 파편이 하나 내게 있다.
그 어떤 날들보다 생생하고 뚜렷하게 기억하는 그날이.
나는 우방아파트에 살 때, 언제고 늘 문을 매섭고 드차게 두드리는 빚쟁이들 중 누군가 분명 문을 따고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분노에 눈이 멀면 남의 집 문 하나 따는 것쯤은 예삿일도 아니니까. 언제나 아빠가 잘 도망가있길, 잡히지 않길 기도하면서도 아빠의 잘못이란 걸 또 알았으니까, 우리 집 문 하나 따지는 게 놀라울 일도 아닐 거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돈을 받아야만 했을 테니까.
그치만 그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매우 매우 두려웠다. 매일 밤을 두려움에 떨며 잠들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어느 한 날,
정말 그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여느 날처럼 하교를 마치고 암막커튼을 죄다 치고서 티브이를 켜 아주 작은 볼륨만을 켜놓은 채 가방을 벗어던지고 침대에 몸을 웅크려 날 보호하고 있을 때, 문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쿵쿵쿵-
쿵쿵쿵쿵-
쿵쿵쾅쾅-
쾅쾅쾅쾅-
쾅쾅쾅쾅쾅쾅쾅쾅-
노크소리는 점점 더 드세졌고 그 소리만으로도 나는 찾아온 이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렴, 그렇겠지. 생각하며 나는 다시 그들이 포기를 하고 돌아가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몇몇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는데 집 앞을 찾아온 이가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천천히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거실 한복판에 서서 그것을 눈치챈 직후, 어쩌질 못하는 상태에서 순간 집 문이, 똑-각, 하고는
철컥 열렸다.
문이.. 문이 어째서 제집 여는 주인의 방문처럼 열릴 수가 있지?
상상만 하던 이 상황이 내 앞에 벌어진 지금,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정말 우리 집 문이 남의 손에 의해 열려버렸는데 난 그제껏 빈집 행세를 하며 집에 있었으니까, 죄인이 자신의 존재를 들켜버린 꼴이 된 것이었다. 그 죄인은 아주 작은, 초등학생이었지만.
문을 따고 들어온 사람은 총 세명.
험상궂게 생긴 얼굴의 아줌마 둘, 그리고 기억도 안나는 아저씨 한 명.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거실에 서서 그 상태로 굳어버린 나를 보고 흠칫하던 세명의 어른.
어릴 때 내 눈엔 그들은 욕심 많고 불독같은 얼굴에 험상궂은 돈 많은 아줌마들로밖에 안보였다. 인정이나 세상에 대한 애정, 동정심 따위는 전혀 없을 것만 같은 위압감이 내게 몰려들었다. 그때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딱딱하게 그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나를 지나쳐 집안 곳곳을 들여다봤고, 곧장 내게 다가왔다.
“이집 딸이니?”
“네..”
“너희 아빠는 어디 계시니?”
“몰라요.”
대화는 여기까지 일 줄 알았다.
‘아빠는 어디 계시니?’라는 질문에 답한 ‘몰라요.’ 한마디가 꽤나 진심으로 들렸던 모양이었다. 정말 난 아빠의 행방을 모른다는 듯. 그리고 내가 아는 건 아빤 모든 걸 도망쳐 이 지역 어딘가에 분포되어 있는 여러 게임방 중 한 곳에 앉아 담배피며 시간을 보내고 있겠죠. 였다. 물론 그렇게 말했다면 단번에 게임방이란 게임방은 다 뒤져 아빠를 찾아냈을 테지만 내가 그걸 말할 리도 없고, 그렇게 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낼 여유가 내겐 없었다. ‘몰라요’ 한마디를 입밖에 꺼내는 것도 너무 힘들고 어려웠으니까.
그치만 대화가 여기까지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ㅡ
아니, 차라리 내 앞에서 욕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ㅡ
내게 화라도 냈으면, 내게 분풀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ㅡ
“밥은 먹었니? 너 밥도 못 먹었겠는데.”
악덕같아 보이던 아줌마 중 한 명이 내게 갑자기 만 원짜리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 강제로 집어든 내 두손바닥 위에 올려주고는 말을 이었다.
“밥이라도 사 먹어라, 얘. 불쌍하다. 아빠를 잘못 만나서. 아빠 때문에 네가.”
그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뜨거운 눈물이 단전 끝에서부터 차올라 빨갛게 핏줄이 선 눈망울 바깥으로 우후죽순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말을 이었다.
“그래그래, 많이 힘들겠다, 얘야. 꼭 밥 사 먹어, 알았지~?”
그들은 내가 받아 든 호의로 인해 못난 아빠를 만나 겪은 아픔과 서러움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서럽게도 울긴 했으니까.
그렇지만 난 그들이 내 손에 쥐어준 만원이, 그리고 ‘아빠 때문에 네가 불쌍하다.’라며 되려 나를 위로해 준 그들의 행동이 나를 그토록 떨리게 만들고 서럽게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당장은, 내 앞에서 우리 아빠를 모독한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나로 인해 아빠가 못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죄책감, 미안함이 걷잡을 수 없이 괴로웠다. 무엇보다 악덕같은 아줌마들이 착한 우리 아빠를 나 때문에 모욕하게 된 것만 같아서 그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났고 내 존재가 싫었다.
그날의 상처가 내게 얼마나 깊었는지 그땐 몰랐다.
해봐야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그 상처의 이유와 원인을 이해할 리 없었으니까.
아주아주 훗날, 그 기억들이 뜬금없이 가끔 내 앞에 펼쳐질 때 그제서야 나는 그 울분이 ‘자존심’의 영역이라는 걸 알았다.
매일같이 구걸하듯, 동정심을 유발하며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내가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자존심이 있고 말고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런 단어를 알지도 못했다.
당장 생계를 앞에 두면, 그것이 너무도 절박하면 그런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건 사치이고 불필요한 감정소모일 뿐이니까.
그날,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알았다.
내게도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쥐어든 만원 한 장과 우리 아빠의 모독을 맞바꾼 느낌을 나는 그때 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그들에게 받아 든 만원 한 장이 날 덜컥, 심장이 내려앉게 만들었는데 눈물만 하염없이 나오곤 당장 속에서 끓어 나오던 말을, 입 밖으론 결국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그 한마디를 그들에게 내뱉었으면 아빠에 대한 죄책감이 덜했을까, 내 자존심이 조금은 나를 지켜줬을까.
“우리 아빠, 나쁜 사람아니예요.
저, 밥 잘 먹어요. 그쪽들한테는 이런 동정심도, 이런 돈도 필요 없어요.”
이 말 한마디를, 용기 내서 했으면, 그날의 상처가 이렇게 깊이 나에게 박혀있을까.
더 이상 내게 상처를 줄 순 없지만 이미 너무 깊이 박혀서 그 상처의 존재를 잊을 수는 없는. 그런 파편.
그리고 아빠는 알까,
나는 그 와중에도 아빠를 생각했다고.
아빠를 걱정했다고.
아빠의 마음이 아프지 않기만을, 빚쟁이들에게 들키지 말고 잘 숨어있기만을,
그 와중에도 나는 바랬다고.
-
더 훗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정말 혹시, 정말로 그런 서러움이었을까.
아빤 이런 나의 생활조차 관심조차 모르고 있는데내가 미워해야할 이 사람들이 그런 나를 안타까워하는 게, 어쩌면 아빠에 대한 서러움과 원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불쌍한 우리 아빠를 미워하고 싶지 않으니까, 난 그 감정을 외면하고 자존심의 영역으로 화를 분출한 게 아닐까, 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