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wi eun May 08. 2024

형태 없는 불청객

이건 무슨 감정일까.

그리고 나는,

아이가 주는 무한한 행복 속에 지난날의 무언가가, 사라질 줄만 알았다.


검정색의 형태 없는 불청객.








나에게는 어떤 특정한 불안감이 아니라 불특정한 불안감이 수시로 마음 안에 일어오를 때가 있다.


이 순간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말로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고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어딘지 모를 곳에서 들어와 순식간에 나를 지배하는 느낌. 우울, 외로움, 고독에 가까운 무언가가 날 온몸으로 휘감는 느낌. 농도 짙은 회색빛이 순식간에 날 찾아와 무서운 기분에 잠기는 느낌.


이런 순간은 매일 매 순간 내게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그러니까, 어떤 특정한 순간에 내게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니라 때때로 혹은 수시로 어떤 순간이든 상관없이 나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양치를 하다가도 문득, 샤워를 하다가도 문득,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신나게 웃고 있는 순간에도 문득, 아이의 천진난만하고 무해한 미소를 마주하며 마음이 녹아내리는 그 순간에도 문득. 예쁘게 차려입고 바깥 구경을 나가 행복하다며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그 찰나에도 문득, 집에서 홀로 테레비를 보며 빨래를 개는 평온한 순간에도 문득. 아주 행복한 순간에도 문득,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순간에도 문득, 정말로 어떤 계기도 없이 문득 찾아오는 그림자 같은 것이 내 곁에 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모든 순간에 이 침침한 회색빛깔의 어둠은 갑작스레 내게 찾아와 마음을 흔든다.




이 감정은 아주 오랫동안 내게 찾아왔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마주한 감정인데 이 감정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란 걸 알았다. 슬픈 순간에만 찾아오는 아이도 아니었고 기쁜 순간에만 찾아오는 아이도 아니었으며 어떤 생각에 잠겨있을 때 찾아오는 아이도 아니었다. 일상 어디서든 예상치 못한 모든 순간에 불쑥 찾아오는, 정말로 불청객같은 감정이었다. 어떤 순간에 찾아올지 모르고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아이라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감정이란 것 정도만 알았고 이 검정색이 예고없이 내게 찾아올 때면 나는 여지없이 온몸으로 그 기분을 받아내야 했다.

 검정색으로 인해 나는 하루에도  번씩 이유 모를 불안과 우울감을 견뎌야만 했는데,  검정색이 유독 짙게 찾아오는 날이면 갑자기  세상에  홀로 떨어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여 바로 앞에 바로 옆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도  눈앞에서 사라지는 기분을 여럿 느꼈다. 홀로 있을   검정이 짙게 찾아오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내가 살아갈 이유가 있는 존재일까하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날도 숱하게 있었다.


누군가에게 얘기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늘 생각했고 그건 여전히 동일하다.




“가끔 이상해.

가끔 뭐랄까…. 짙은 검정과 회색빛의 연기가 내 몸과 정신에 순식간에 찾아와 들어차는 기분에 휩싸여. 그게 당신과 행복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도 있고, 홀로 있을 때도 있고, 평온한 일상을 보낼 때도 있어. 아주 신나게 웃고 있는 그런 순간에도 말이야. 그 아이가 갑자기 찾아오면 나도 모를 불안과 이상한 느낌이 차올라서 살아갈 존재가 사라지는 기분에 휩싸여. 이걸 어떡해야 할까?”


이렇게 묻는다면,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정신과에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너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래.”, “기분 좋은 생각을 해봐!”, “우울한 생각을 하거나 떠올린건 아니고?”


대게는 이렇게 생각한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해서 우울해진 걸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그런데 그런 게 아니다.

이건 아주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혼자가 아닐 때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니까. 언제고 특정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오니까.

그게 답이 될 순 없다.


오랫동안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확실히, 이 감정은 부정적이고 불쾌한 기분을 만들어내니까.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한 이 감정은, 어느 순간이 되면 자연스레 사라질 줄만 알았다. 예를 들면 따스하고 아늑한, 안정적인 내 가정이 생긴다면 말이다. 거기에 더해 너무도 사랑스러운 천사 같은 내 아이까지 함께 했을 때는 더욱이.




 

매거진의 이전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