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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l 30. 2020

대화가 불가능한 사용자입니다.

 (알 수 없음). 카톡에서 오랜만에 다시 찾아본 할아버지의 이름은 (알 수 없음)이었다. 문득, 언젠가 정말로 할아버지를 알 수 없어지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남아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시간은 2018년 3월 3일 토요일이었다. 당시 내가 즐겨하던 게임을 하려면 필요한, ‘하트’가 와 있었다. 하트는 매일마다 하나씩 왔고, 나는 7일, 답장으로 같은 하트를 보냈으며, 할아버지는 그날 바로 다시 하트를 보내왔다.


 3월 11일. 의자 사진과 함께, ‘연두색 구입 완료. 내일 도착.~~♡’이라는 카톡이 왔다. 나는 눈이 하트 모양이 된 강아지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3월 21일. 다시 게임 하트와 함께, 작은 수조에서 더 작은 물고기 여러 마리가 헤엄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 왔다. 자기 몸 만한 지느러미가 물결에 흔들렸다. ‘예쁘게 키울 수 있겠지?’, ‘ㅋㅋ그럼요 수조 완전 예뻐요! 홧팅!!!’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언젠가부터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어릴 적, 집 앞마당에는 아롱이 다롱이 재롱이와 같은 흔한 이름의 강아지들이 있었는데, 사실 그때의 경험은 본인이 잘 관리할 것이라는 할아버지의 주장을 별로 뒷받침해주지 못했고, 개털 알레르기는 어떻게 할 거냐, 나중에 산책시키고 목욕시키는 일은 누가 하게 될 것 같으냐, 하며 반대하는 다른 가족들이 있어 결국 기르지 못했다. 수조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은 확실히 털도 날리지 않고 목욕시킬 필요도 없는 생명체였다.


 3월 31일. 부모님과 함께 둘레길을 걸었다. 아빠는 개나리 앞에서 찍은 내 사진을 할아버지에게 보낸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사진을 다시 내게 보내며, ‘점심은 도시락 먹었나? 예쁘네~~^^♡’하는 카톡을 보냈다. ‘점심은 고기~’라는 내 말에 할아버지는, ‘잘했군! 잘했어~^^♡’.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4월 2일. 날 위해 주문한 가방의 배송이 지연된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8년 4월이 되었다. 그 4월, 나는 ‘할아버지 다 잘될 거에요’라는 카톡과 함께 큰 하트 이모티콘을 보냈다.


 다 잘 될 거예요.


  사실, 잘 된다는 것이 무언지, 뭐가 잘 된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나는 할아버지에게 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그 당시의 나는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말했다. 다 잘 될 거예요. 할아버지는 답장하지 않았다.




 4월 15일. 기르던 물고기들이 새끼를 낳은 모양이다. 사진과 함께, 7마리 순산, 한 마리는 어미를 꺼낼 때 밖으로 탈출했고, 현재 산란토에는 6마리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6월 3일. 나는 할아버지에게 용돈과 함께 조금은 긴 카톡을 남겼다. 마음이 풍족하고 편안한 하루하루가 되시고, 예쁜 손녀 있다는 거 생각하시고 기운 내시라고. 할아버지는 감동이라는 말과 함께, 배송이 늦어진 가방 대신에 다른 것을 골라 배달 요청을 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그 가방의 사진을 보내왔다. 지금도 잘 들고 다니는 가방이었는데, 역시 누가 사줬는지는 잊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사주셨던 거였다.


 7월 2일, 한쌍의 남녀가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서, 옷을 매우 빨리 갈아입는 공연을 했던 영상의 링크가 왔고,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9월 7일 오전. 화장실 용품이 택배로 와있을 거라는 소식과 함께, 나의 애인을 할머니에게 자랑했다는 카톡이 왔다. 그 날, 평소처럼 근무 중이었는데, 그 연락이 오자마자 할머니에게서 긴 카톡 여러 개가 연달아 왔다.

 9월 8일. 할아버지는 택배를 받았냐는 카톡을 보냈고, 나는 하루 뒤 저녁쯤에야 ‘아 맞다’라는 말과 함께 택배를 확인했다고 답장했다. 밥이나 먹고 다니냐는 할아버지에 말에, 나는 ‘네’하고만 대답했다.


 네.


 9월 23일. 할아버지가 내게 마지막으로 카톡을 보낸 날이다. 가족들이 다 함께 외식을 하러 간 날이었다. 음식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햇살을 맞고 있는 나의 모습을, 할아버지가 찍었다.

 사진 속의 나는 장난스레 다리를 들어 올리기도 하고, 손등을 이마에 대고 지그시 눈을 감기도 하고, 찍히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왠지 그 사진에서 은은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2년이 지난 지금, 할아버지와 나눴던 카톡을 다시 보니, 그때는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고, 그때는 느끼지 못한 것들이 느껴지고, 그때는 하지 못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채팅을 칠 수 있는 곳은 ‘대화가 불가능한 사용자입니다’라는 말로 막혀 있었다. 그렇다. 당신은 이제 대화가 불가능한 사용자라서, 나는 그 말들을 그저 속으로 삼키는 수밖엔 없었다. 이별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대신에 나는 글을 썼다.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서, 내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고 사는지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문득 전화 한 통 해서 시시콜콜한 얘기 짧게 하고 서로 잠시 웃다가 끊는 것, 거실에서 소파에 기대어 혼자 TV를 보고 있는 아빠에게 건강을 걱정하는 말 한마디 던져서 마음을 표현하는 것, 말 그 자체가 아니라 말 뒤에 있는 상대방의 감정과 욕구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것, 한마디로 뭣이 중헌지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아직은 대화가 불가능하지 않은 당신들과 언제나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는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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