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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Dec 12. 2023

천 개의 눈

아니쉬 카푸어, 반타 블랙

12월의 날씨에 맞지 않게 따스한 날이다. 아파트 앞 목련에는 꽃봉오리가 맺혀있다. ‘철없는 것, 12월에 꽃봉오리라니’ 지나쳐 걷던 걸음을 다시 돌려 사진을 찍었다. 기온에 반응하는 나무와 오감을 가지고 있는 나는 무엇이 다른가?      


중학교 3학년 신학기 첫 도덕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1번부터 70번까지 자신의 이름과 좋아하는 것을 발표하라고 하셨다. 앞자리 맨 왼쪽 분단의 1번부터 발표가 시작되었다. 떡볶이, 쫄면, 김치찌개, 군만두 등 분식집의 메뉴들. 짝꿍과 앞, 뒤 친구들은 나도 나도!! 소곤거리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드물게 독서와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비슷한 것들을 발표하고 싶은데 머릿속에서 “자유”라는 단어만 떠올랐다. 차례가 되어 “제 이름은 정혜원입니다. 저는 자유를 좋아합니다. 무엇을 할 때 강요에 의해서보다 스스로 하는 것을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분위기가 싸했다. 그 잠깐의 고요가 부담되었다. 내가 잘못 얘기한 건가?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늘 하는 말. “틀려도 괜찮아, 이해하는 만큼만 하면 돼. 옆 친구의 속도를 의식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세상 누구라도 질문에 틀린 답을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무엇이든 빨리 잘하기를 원한다. 그 본성을 믿고 아이들에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라 한다. 그래야 선생님이 너를 도울 수 있다고... 처음에 아이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틀려도 괜찮다니!? 틀려도 괜찮다고 하는데 틀리고 싶지 않다. 정답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한 발 내딛는 것을 아이들은 살아온 시간만큼 힘겨워한다. 혼날까 봐. 무안당할까 봐. 나에게도 틀려도 괜찮다는 선생님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림 앞에서는 쫄고 있었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 말고 또 무언가를 더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동행한 이가 그림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내 느낌 말고는 아는 것이 없어 대화를 회피하곤 했다. 그런데 그림에는 정답이 없단다. 쫄지 말란다. 내가 느낀 것이 정답이란다. 나에게도 이렇게 말해주는 선생님이 나타났다. 갤러리에 갈 때 마음 한편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억눌린 것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이었다.      


그림으로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같은 그림에서 학생 수만큼의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다. 학생들은 그림을 자세히 본다. 중심을. 사각 모퉁이를. 가까이서. 멀리서.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말하는 친구에게 “와아~~”하며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발표한 이는 별것 아닌 것에 놀라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화기애애한 시간, 순위가 없는 시간, 우등과 열등이 없는 시간, 내 느낌이 정답인 시간. 학생들의 열기와 긍정의 에너지가 흐르는 시간이다. 


자신이 선택한 그림에 대해 글을 쓰는 시간. 순간 조용해진다. 모두가 진지하다. 열심이다. 이렇게 쉽게 글을 쓴 적이 있었던가. 발표하는 시간. 친구들은 어떤 그림을 선택했지? 나와 같은 그림을 선택한 친구는 어떤 느낌을 썼을까? 아이들은 귀를 쫑긋하며 눈은 발표하는 친구에게 향한다. 학생들이 교사의 선생님이다. 친구들이 선생님이 되어준다. 자유로움 속에서 우리는 얻을 것을 다 얻는다. 얻고자 했던 것 이상을 얻는다. 내 마음이 느끼는 것에 귀 기울이는 시간.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와 친구의 느낌을 존중하는 시간. 가르치지 않아도 삶의 태도를 습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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