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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Jan 26. 2024

결국에는 사람이다

회원 편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지금껏 만나지 않았던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다. 새로운 만남 속에서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를 경험하기도 한다.

 

호제의 펜싱클럽 등록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또한 그러하다.

 



사회적 지지는 내가 보살핌을 받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내가 지지를 받는 사회 연결망(social network)의 일부라고 여기는 인식과 실제(actuality)를 말한다(1).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인식하면, 심신이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 문제해결능력, 건강행동 등등 유무형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한다.


하우스(House, 1981)는 사회적 지지를 4가지로 세분화했다(1, 2, 3).

- 정서적 지지(배려, 공감, 관심, 친밀감, 사랑, 신뢰 등)

- 도구적 지지(물질적인 도움, 돈, 시간, 노동 등)

- 정보적 지지(정보, 충고, 제안, 지도 등)

- 평가적 지지(문제해결보다는 자기 평가와 관련된 정보, 긍정적 자기 평가, 확신, 피드백 제공)


호제는 이 네 가지를 펜싱클럽에서 흠뻑 얻고 있다.

 




1. 정서적 지지(emotional support)


집에 와서 펜싱클럽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속상했다가, 기분 좋았다가를 오고 간 호제였다.


“엄마, 오늘 펜싱클럽에서 형들이랑 노는데, 한 형이 나한테 놀렸어. 못한다고. 그런데 형보다는 동생인 형이 그 형한테 외쳤어. 뭐라고 했게?”


“음, 뭐라고 했어?”


“‘동생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라고 해줬어. 나 너무 좋았어. 든든했어.”


호제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느끼는 날이었다. 펜싱클럽에서 생긴 동생들에게 호제도 이렇게 보살펴주기로 했다.




익산 대회 때, 옆 건물에서 넘어온 사브르 형들이 “호제 어떻게 됐어요?”라고 내게 물었다. 곧 경기에 들어가는 호제에게 “호제, 파이팅!!!!”이라며 힘껏 외쳐주고 다시 옆 건물로 넘어갔다. 호제가 긴장한 것 같다며,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호제, 파이팅!”이라고 외쳐주는 형, 누나들. 애정 어린 관심을 흠뻑 느꼈을 거다.


이뿐이랴, 6세 때 호제의 토요일 수업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수강생이 있었다. 유치부인 호제부터 중학생까지. 몸 풀기를 할 때면, 모두 진지한 자세로 임한다. 꼬맹이 호제가 몸풀기를 할 차례에도 진지하게 바라봐주는 형누나들이었다. 더디어 속 터질 법도 했을 텐데 호제의 순서를 기다려줬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함께 운동하는 동료로서 이끌어주고, 끌어주는 아이들이었다.

 



단체전을 앞두고는 학교에서 같은 팀 친구를 만난 날에는 셋이서 손을 같이 모았단다. 그러고 나서 셋이서 “파이팅”을 외치며, 결의를 다졌다는 얘기를 전했다. 결의를 다지며 신뢰도 쌓아 올렸을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할 수 있다, 나는 너를 믿고, 너도 나를 믿고를.


저녁 수업을 마치고 나면, 성인부 회원님들이 속속 도착하신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반갑게 인사해 주시는 성인분들. 대회를 앞두고는 응원한다며 번쩍 안아주시고, 얼굴도 쓰다듬어주시는 다정한 어른들을 호제가 만난다. 쑥스러움에 크게 인사 못하는 호제에게 먼저 다가와주시는 감사한 분들이다.


(어떨 땐 쑥스러움이 없는데, 여전히 낯을 가리면 쑥스러워지는 호제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호제.)


 


 


2. 도구적 지지(instrumental support)


펜싱클럽에서 웬 도구적 지지를 얻는가 싶겠지만, 아주 풍성하게 얻고 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첫 대회 출전, 두 번째 대회 출전 날. 그리고 대회 때마다 넘쳐나는 돗자리 위의 장면이.


마치 소풍 온 돗자리 같았다. 넓은 돗자리에 놓인 간식이 한 분 한 분 오실 때마다 쌓여갔다. 갑자기 도시락이 배달되더니, 도시락을 먹으라며 대회 출전 선배 어머님이 도시락을 건네셨다. 그때 당시 호제는 16강에서 떨어서 분해 엉엉 울고 있었다. 식음을 전폐하겠다던 호제는 진정한 후 받은 도시락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먹고 힘내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기차를 타고 대회에 나갈 때면, 많은 간식을 못 가져간다. 그럴 때면, ‘호제야, 밤 먹을래? 육포 먹을래? 먹어야 힘내서 뛰지.’ 등등 관심과 물질적 지원을 건네준다. 주변분들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나도, 호제도 배고픔 없이 작년 대회들을 무사히 치렀다.




어떤 날은 스튜디오 알레(Studio Allez)의 채 대표님이 수줍게 호제에게 초코우유를 건네셨다. 매장에서 직접 만드신 초코우유였다.


“호제, 초코우유 먹어요?“

“(수줍게) 네에.”


초코우유 병을 집에 고이 들고 와서 호제는 후루룩 후루룩 마셨다. 옆에서 나도 몇 모금 얻어 마셨다. 초코우유를 좋아하지 않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맛있어 한 모금 마시고, ‘나 좀 더 줄래?’라고 호제에게 물어본 뒤, 더 마셨다.

 


이 날 나는 호주에서 온 분께 마카롱을 선물 받았고(좌), 호제는 스튜디오 알레 대표님께 초코우유를 선물 받았다(우). 모두 흥하세요!



어느 여름날에는 하원할 때, 자기 사이즈에 맞는 옷을 색깔별로 챙겨서 가져가라고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사브르 학생 아버님께서 펜싱 동작과 지점 이름을 직접 디자인해 인쇄한 기능성 반팔이었다. 심지어 빨강, 파랑, 남색. 세 가지 색깔이었다. 사이즈도 아이부터 성인까지 모두 있었다. 디자인을 취미로 하신다는 아버님이 베푸신 넉넉함으로 무더운 여름, 그리고 지금까지도 열심히 입고 다닌다.  




 


3. 정보적 지지(informational support)


연습할 때면, 나름 복화술로 호제에게 얘기해 주는 장면을 만난다. 같은 학년이 없으면 보통 큰 형들과 경기를 뛴다.


그럴 때, 한 형은 입모양을 움직이지 않고, 하지만 다 들리게 얘기했다.

“호제야, 후레시, 후레시. 후레시 해.“


대회 때면, 호제 상대편이 어떤지 나름의 분석을 끝낸 형들이 이렇게, 저렇게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스르륵 전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호제 또래들끼리도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각자의 장단점을 얘기하며 ‘그러니까 너는 이렇게, 그렇니까 너는 이렇게’라고 얘기하며 이동하는 모습도 봤다. 서로의 장단점을 생각했다는 거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있나.




펜싱에 관한 정보만 있는 게 아니다. 헤어스타일 정보도 주고 있다. 자꾸 뒷머리카락을 기르고 싶다고 얘기했다. 형들 이름을 얘기하며, 그 머리 봤냐며 얘기하며 비슷하게 기르고 싶댔다. 형들 있는 수업시간에 가서 유심히 보니, 모두 뒷머리카락이 길었다. 심지어 축구선수 메시가 어릴 때 뒷머리카락이 길었었다며 뒷머리카락을 기를 계획을 짜고 있다. 앞머리카락과 함께. 펜싱클럽에서 미적 감각도 배우고 있는 호제다. 잘 부탁합니다, 형들.


어느 날 호제는 샤워하다가 혼자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까르르 거렸다. 역사 노래를 부르는 줄 알았더니, 개사를 하며 부르고 있었다. 형이 불렀다며. 잘 부탁합니다, 형들.


유머도 배워온다. 오늘 아침, 갑자기 퀴즈를 냈다. 펜싱클럽 형이 알려줬다면서.

“포도가 자기소개를 하면 뭐게?”

* 포도입니다?

“포도당! 크크크크크크크크”


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럴 때 반응을 잘해줘야 한다. 계속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격렬하게 해줘야 한다. “어머 어머 어머, 포도당을 여기서 듣다니!”


여세를 몰아 또 퀴즈를 하나 더 냈다.

“신사가 자기소개를 하면 뭐게?”

- 뭐지?

“신사임당~~~~~~”


유머 정보도 열심히 듣고 오는 호제다. 잘 부탁합니다, 형들.

 



 

4. 평가적 지지(appraisal support)

 

평가적 지지는 문제해결을 직접 해주지는 않지만, 인격적 존중, 칭찬을 통해 자기가 가치 있는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평가적 지지를 느끼고 있냐를 알기 위해 ‘내가 잘했을 때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는 설문문항을 사용하기도 한다.


레슨 후 단체전이 개최됐다. 초등학교 고학년 형들 사이에 1학년 호제가 한 팀에 들어갔다. 키와 힘에서 밀릴 1학년임에도 호제의 차례가 되자 같은 팀 형들이 힘차게 응원했다. 형이 호제에게 힘차게 외쳤다.


“호제야!!!

너의 잠재력을 믿어!!!!

넌 할 수 있어!!!!”


호제의 공격이 성공했다.

“좋았어!!!”라고 형들은 외쳤다.

 

왜 내가 뭉클해지는 걸까. 형의 외침을 듣고 나니, 호제의 잠재력을 믿으라는 말을 그간 나도 호제에게 해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운이 좋게도 단체전 경기와 형이 응원하는 순간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이날 이후 호제는 내가 퇴근한 저녁이면, 단체전 영상, 정확히는 “호제야! 너의 잠재력을 믿어!”를 보고 또 봤다.


Image Creator로 만든 이미지.


그 말을 한 형에게 내가 “예전에 호제에게 호제의 잠재력을 믿으라는 말을 해줘서 고마웠어요.”라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제가요?”라고 내게 되물었다.


“응, 이모가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 정말 근사한 말이잖아!”


형은 쑥스러워하며 얼른 집으로 향했다.


사춘기가 찾아온 것 같은 아이에게 더 이상 말하면 오지랖 아줌마가 될 것 같아,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응원했다. ‘좋아한다던 화학, 독서 재미있게 하며, 형의 잠재력을 마음껏 펼치길 바란다!’고.


 


 

  

“어린아이에게는 자신을 믿어주고 이해해 주며 존중해 주는 안정적이고 다정한 어른이 한 명만 있어도 세상은 달라진다(234쪽).”라고 한다.

 

어른만 그러겠는가. 친구, 동생, 형누나/오빠언니끼리도 영향을 준다. 미세한 다정한 행동과 표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어주며 쑥쑥 크는 회원들. 펜싱클럽을 갈 때면, 나 또한 그 옆에서 흘러넘치는 다정과 긍정 에너지를 받는 호사를 누린다.

 

유아부터 성인부까지의 회원님들 덕분에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 호제와 나다.

 

 




 

참고문헌

1. Muñoz-Laboy, M., Severson, N., Perry, A., & Guilamo-Ramos, V. (2014). Differential impact of types of social support in the mental health of formerly incarcerated Latino men. American journal of men's health, 8(3), 226-239.

 

2. House, J. (1981). Work stress and social support (Addision-Wesley series on occupational stress). Addison-Wesley.

 

3. Krause, N. (1987). Understanding the stress process: Linking social support with locus of control beliefs. Journal of Gerontology, 42(6), 589-593.

 

4. Weinert, C. (1987). A social support measure: PRQ85. Nursing research, 36(5), 273-277.

 

이완정 (2003). 청소년이 주변 연장자로부터 지각하는 사회적 지지의 구조와 기능 및 자아존중감. <한국가정관리학회지>, 21권 2호, 49-60.


이상우 (2013). 호텔구성원의 사회적 지지에 대한 인식이 직무스트레스와 직무소진에 미치는 영향.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3권 11호, 423-432.

 

Harding, K. (2019). The rabbit effect. 이현주(역). (2022). <다정함의 과학>.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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