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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Feb 08. 2024

호제의 목표 시각화


작년 후반부즈음부터 책 한 권을 읽으면, 관련된 행동 하나를 해보고자 노력 중이다. 꾸준하지 않을지언정 일단 해보는 것에 의의를 두고.


이런 와중에 Y가 자기 계발서의 끝판왕 같다며 준 <결국 해내는 사람의 원칙>을 조각조각 읽고 있다.


많은 자기 계발서가 얘기하듯, 목표의 시각화 내용이 나온다. 내가 바라는 목표 목록을 눈에 보이게 손으로 적어보라는 것이다. 다른 책과 차별된 점은 뇌과학을 얘기하며 조금 더 세밀하게 들어간다. 키보드가 아닌 손으로 펜을 들고 종이에 적어야 한다는 것. 키보드로 글씨를 쓰는 것은 여덟 가지 손가락만 쓰고,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신경만 쓴다면, 손으로 쓰는 목표의 시각화는 최대 1만 가지 움직임과 수천 개의 신경회로를 만든다는 거다.


이거다! 싶었다. 등원 아침 전화를 할 때, 호제에게 신나서 얘기했다.


"호제야, 오늘 엄마가 읽은 책에 내가 바라는 걸 손으로 적으면, 내 몸이 그 목표에 맞게 세팅되어서 목표가 이뤄진다는 내용이 있었어. 망상활성계라는 RAS(Reticular Activating System)가 소원성취를 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준대.“


호제,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어?"


"나? 나 펜싱대회에서 금메달 따는 거! 따서 사촌누나한테 보여줄 거야."


"오, 그래. 그럼 그 목표 이따 집에서 적어보자!"


"응, 그래, 엄마, 좋은 하루 보내! 나 간다!" 건물 입구에 도착했는지, 아주 기계적으로 인사를 건넨다. 래퍼처럼 빠르게, 스쳐가는 바람처럼.






그날 밤, 식탁에 앉아 호제는 “올해의 목표는 펜싱 1등이다”를 흰 종이에 적었다. 문장 밑에는 네모 칸을 만들고 ‘1워’라 적었다. 호제에게 뭐라고 적었는지 다시 보자고 얘기했다. 호제는 ‘어’를 지웠다.



Y가 퇴근을 하고, 식탁에 세 명이 모였다. 올해의 목표를 한 장에 나이순으로 적어보기로 했다. 먼저, Y 차례다. 시작부터 Y는 이미 감수성에 푹 빠졌다.


"와, 이거 생각할 게 너무 많은데?! 호제랑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종이를 붙잡고 하나 적고, "아, 이렇게 할까."라며 고치고, 또 추가했다.


"난 호제랑 산에도 가고 싶고. 호제야, 아빠랑 같이 등산 갈래? 갈 수 있겠지?"


"Y, 그건 위시리스트 아니야? 그건 당장 주말에 하면 되지!" 이러다 Y 혼자 밤 시간을 내내 쓸 것 같았다. 나는 “우리 얼른 적고, 또 놀아야지"라며 재촉했다. 다 적지 못한 채 Y는 내게 종이를 건넸다.


나는 색연필을 들고 힘차게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나의 목표는 바로바로 “건강, 억만 달러 장자". 건강이 목표가 될까 싶지만, 억만 달러 장자만 적기에는 불균형해 보여, 건강은 필수니 함께 적었다.

 

Y는 놀란 듯 말했다.

“뭐어?!"


내가 답했다.

"Y, 내가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 책을 읽어보니 백만장자와 억만장자 차이가 나오더라. 나 억만장자 할래. 돈 단위는 명확하게 해야지. 원화 말고 달러.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Y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이제 호제 차례다. 호제는 아빠, Y랑 함께할 때면 꼭 장난을 곁들인다.


“난 별, 행복, 그리고 똥꼬!!!!!!!! 키키키키키”

“호제야, 아까 적었던 거 뭐였지? 한 번 적어보자.“라고 나는 참을 인을 새기며 호제에게 말했다.


"난 당연히 펜싱 1등이지!"


1위 금메달을 사인하듯 적었다. 요즘 흘려 적는 사인에 꽂혔다. 글씨는 알아보게 적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요즘 속으로 삼키는 말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찍고 보니, 호제가 나와 Y를 키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셋이 적은 종이를 칠판 한쪽에 붙였다.


우연인지 아닌지, 목표를 적은 뒤, 호제는 다른 학원 방학으로 시간이 생기자, 펜싱을 한 타임 더 하고 오고 싶다고 말했다. 힘들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쉬고, 할머니한테 전화하라고 일러뒀다. 호제는 정말 두 타임을 뛰고 왔다.


과연, 호제, 나, Y의 뇌는 어떻게 활성화될 것인가.


호제는 과연 금메달을 딸 것인가?

나는 억만 달러 장자처럼 될 것인가?

Y는 적은 것을 모두 손에 넣을 것인가?


흰 종이에 적힌 1위 네모 칸이 금색으로 물드는 그날이 호제에게 오길 응원한다. 얼떨결에 새해맞이 목표를 나눈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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