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제 계약은 연장되는 걸까요?”
재계약 여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고 나면 마음이 복잡했다. 수신확인은 했을까. 확인을 했다면 왜 아직 답이 없는 걸까. 회신이 없다는 건, 이제 끝이라는 걸까.
1년간 애써 일한 시간들이 스쳐가지만, 결국 중요한 건 ‘성과’라는 걸 안다. 그런데 왜 이토록 각종 프로세스는 더딘 건지.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나를 쥐어짜며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겨울이 있었다.
결혼하고, 낯선 도시로 이주하고, 아이를 낳고,
천안과 서울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견디던 시절.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자라났다.
“정규직이 되고 싶다.”
그건 단지 고용 형태의 문제가 아니었다. 삶을 지탱해 주는 울타리 같은 것이었다. 매년 계약 연장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메일 한 통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는 삶.
박사학위를 막 마친 사회과학 연구자는 돈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학위 과정 중일 때가 더 나았다. 일은 많았지만 ‘자리’는 없었다. 상상 속 ‘연봉 높은 비정규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출산 직후 연구교수로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 계약서에 찍힌 ‘1년’이라는 숫자에 또다시 숨이 조였다. 박사후연구원, 연구교수—이름만 다를 뿐, 나는 여전히 비정규직이었다.
학사와 석사 졸업 무렵엔 어떤 자신감이 있었다. 밥벌이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불안정한 삶은 늘 불안을 낳았다. 아무리 성실히 해도 일이 되는 건 아니었고, 자리는 노력보다도 타이밍과 사람, 운에 좌우됐다.
정규직에 대한 갈망이 결정적으로 깊어진 건, 조산기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소속만 자교 연구소에 있었고, 생계는 따로 꾸려야 했다. 결혼 후 곧장 천안으로 이사했고, 두 달 만에 아이를 가졌다. 겨울 계절학기를 마무리하며 입덧은 극심해졌고,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피가 비쳤다.
출산 두 달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했다. 태아보험도 들지 못한 상태였다.
병실 내 대기업에 다니는 산모들은 육아휴직, 각종 수당, 복직 이후 커리어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주치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논문 수정 때문에, 30분만 앉아서 일해도 될까요?”
박사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번 차례만 수정해서 넘기면 게재가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늦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내 사정일 뿐, 주치의에게는 생명이 우선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뱃속의 아이가 우선이 아니었던 건 아니었다. 누구보다 뱃속에서 충분히 자라고 나오기를 빌고 또 빌며 식단에, 마인드 컨트롤에, 심지어 똥 눌 때도 힘주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24시간 중 30분만 딱 앉아 논문 게재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딱 30분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돌아온 건 단호한 꾸지람이었다.
그 순간, 절실하게 생각했다.
정규직이 필요하다고.
나도 4대 보험이 필요하다고.
안정감이 필요하다고.
출산 후,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일이 좋아서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불안’이 더 컸다. 아이를 낳은 나는 더 이상 유예할 수 없었다.
안정적인 곳에서, 지속 가능한 수익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불안은 여전했다.
“내년에도 일할 수 있을까요?”
해마다 같은 질문을 보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던졌다.
미래는 늘 물음표였고, 나는 그 물음표를 껴안은 채 논문을 쓰고, 강의를 하고, 아이를 키웠다.
어느 날, 졸업도 하기 전에 정규직이 된 선배를 만났다.
나는 말했다.
“너무 부러워요!!
저, 정규직 너무 되고 싶어요!!”
선배는 조용한 얼굴로,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정규직의 안정감을 얻고, 다른 모든 건 내려놨어.”
그땐 그 말의 뜻을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나도 정규직이 되고서야 그 말의 무게를 알게 됐다.
정규직이 된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정규직’이라는 이름 안에도 무수한 불확실성이 존재했다.
정규직은 종착지가 아니었다.
그건 또 다른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알게 되었다.
정규직이든 아니든, 자유롭기 위해서는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
내 이름으로, 내 일로, 내 목소리로 설 수 있어야만
진짜 자유가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