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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 좀 하면 어때

by 권예지


자위 自慰

1. 자기 마음을 스스로 위로함.
2. 손이나 다른 물건으로 자기의 성기를 자극하여 성적(性的) 쾌감을 얻는 행위.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운동 시간은 예전보다 줄었다. 아이의 학원 시간, 나의 근무시간이 바뀌며 퇴근 후 유산소 시간이 줄었다. 많이 먹고 조금 움직인다? 게다가 나이는 계속 먹고 있다? 그 말은 곧, 체지방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내 몸은 다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상향 중이었다.


표준 체중인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적정한 몸무게는 따로 있다. 몇 번의 체중 오르내림 끝에 알게 됐다. 절대적 수치보다 중요한 건 내가 느끼는 감각, 나의 마지노선이다.


그 기준은 55kg. 이 선을 넘으면 어김없이 신호가 온다. 왼쪽 어깨가 뻐근하고, 머리가 묵직하고, 심해지면 왼쪽 팔이 저려온다. 무릎도 아프고, 소화는 더디고, 자는 둥 마는 둥 찌뿌둥하다. 붓기도 심해진다. 몸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다.







놀라운 사실은 헬스장을 최소 주 2회는 다니면서도 이렇게 몸무게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아이와 약속한 다이어트 목표 몸무게를 성공시킨 뒤부터 체중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내 체중 그래프는 한눈에 봐도 우상향 곡선이다.


2023년 4월부터 2025년 6월까지의 체중 추이


인바디를 재보자는 헬스장 선생님께 증가한 체중이 달라지지 않아 굳이 잴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 여전히 공복체중이 늘은 상태 그대로입니다. 변화가 있으려면 뭔가를 더 해야 하는데 다르게 한 게 없어요. 운동은 전보다 덜 했고, 평일 점심과 주말에 여전히 잘 먹었어요. 그런데도 지금 살이 빠져있다면, 제 몸 어딘가가 아픈 거예요. 종이와 지구를 아끼시죠."


헬스장에는 변화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 체지방이 쭉쭉 빠져 얇아지는 게 눈에 띄는 사람, 근육이 점점 차오르는 사람이 가득하다. 벽면에는 10주 간 몸을 만들어내는 바디챌린지 참가자들의 바디프로필 사진이 도배되어 있다. 자발적으로 고통에 나를 집어넣고, 힘을 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바디프로필의 쩍쩍 갈라진 근육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사진에서는 노력이 뚝뚝 떨어진다. 쫙쫙 갈라진 근육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운동시간이며, 식단이며, 얼마나 애썼을까 싶다.






감탄은 비교로 이어진다. 비교는 자책으로 흘러간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페스팅거(Festinger)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의견을 비교하며 자신을 이해하거나 평가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사회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을 정립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과 비교하는 상향비교는 자기개선 동기, 나와 비슷한 사람과 비교하는 유사비교는 자기평가 동기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는 하향비교는 자기고양 동기에서 비롯된다.


사회비교는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좌절, 열등감, 현실에만 머묾, 왜곡된 자기인식 등의 부작용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나를 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나를 잃게 만들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내가 알아주지 못하게 된다.


‘와,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서 움직이는데 시간을 더 쪼개야 돼? 왜 내 시간을 좀 더 쓸 수 없을까. 운동시간 확보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야? 왜 난 못하는 거야?' 새벽 시간을 쓰겠다고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일도 해봤으나 나에게는 체력적으로 무리였다. 시간을 확보하는 일은 단순 계산만으로 되지 않는다. 가정을 꾸린 사람이라면, 가족 관계, 가족 성향, 가족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 모든 건 다 핑계인 걸까.


'왜 먹는 것 앞에서는 제어가 안 되는 거야. 자기 통제감이 낮니? 세상에 맛있는 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헬스장에 못 가면 홈 트레이닝이라며 집에서 맨몸 운동으로도 잘만하던데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건강한 생활습관세팅을 왜 이렇게 못하는 거야? 나 의지박약이야? 육아하며, 일하면서 살을 쭉쭉 빼고, 식단도 잘 챙기는 사람들은 얼마나 강인한 걸까? 난 뭐 물러터졌나?'


이렇게 괴로움에 빠질 때면, 말랑 여사의 말을 떠올린다.

"운동도 집착하면 안 돼.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무리하지 마. 때가 올 거야. 다 때가 있어."


나는 늘 대꾸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가정이 있고, 육아도 하고, 각자의 말 못 할 사정들, 우여곡절들이 있을 거 아니야."


그래도 말랑 여사는 말했다.

"그건 그 사람들인 거고."





그 사람들, 남 말고 나에게 눈을 돌렸다.


체지방은 올랐지만, 체력이 강해졌다. 예전에는 빈 바(bar) 하나도 겨우 들었지만, 이제는 빈 바에 원판을 꽂아도 움직일 수 있다. 파워 렉의 높낮이도 20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바를 들고 옮길 수 있을 만큼 늘었다. 3분 걷고, 2분 뛰기 인터벌도 이제는 1시간은 거뜬!!! 하다.


남들처럼 단기간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지만, 내 몸은 변하고 있었다. 분명히, 조금씩. 운동을 다시 시작했을 때보다 의 능력치가 올라간 건 분명했다. 애쓰고 애쓴 건 어디 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10주의 변화는 아니더라도,

10년의 변화는 할 수 있다는 희망.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하는 거

이건 또 내가 잘할 수 있는 거지라고 위로했다.


정신승리일까?


그래, 어쩌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위로한다는데,

그게 뭐 어때서.


그냥 묵묵히, 꾸준히 하는 거지.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위 좀 하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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