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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나를 위한 걸 하면 안 돼?!

by 권예지


<창밖은 여름>에서 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이야기를 더는 미루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아이 이야기도 쓰고, 일 이야기도 쓰고, 세상 이야기도 쓰고, 학문적인 글도 써왔다. 그 모든 글은 ‘나’에서 출발했지만, 정작 ‘나’는 없었다. 나는 늘 관찰자였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내 생각을 전했다.

그러다 문득, 아니 사실은 오래전부터,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올라왔다. 40대라는 나이를 잘 보내고 싶다고, 어떻게 해야 잘 살아낼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묻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무렵,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드르륵.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보낸 카톡이었다. <에세이 쓰기 모임 ‘창밖은 여름’>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알림. 일주일에 한 편씩 총 열 편을 쓰는 일정이다. 정원을 초과하면 첫 오프라인 모임에 처음 참여하는사람을 우선으로 뽑는다는 조건도 달려 있었다.


메시지를 읽는 순간, 나는 이미 일정을 가늠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편? 시청 근처? 마침 딱 방학이네. 그 시간에 강의하러 갔던 거로 생각하면 되잖아. 몇 날은 어려운데, 화상으로라도 참여하겠다고 하면 될까? 근데 먼저 선정이 돼야 하잖아. … 그래, 일단 신청해 보자!’


그 무렵 나는 인생에 남는 건 다짐과 결심이 아니라 결국, 행동한 것뿐이라는 걸 새기고 있었다. 고민이 된다면 일단 해보는 쪽으로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던 때였다. 그래서, 신청서를 썼다.


“미래를 짐작할 수는 없지만,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합니다. 글을 쓰면 삶이 더 사랑스러워지고, 나를 직면하게 되고, 더 잘 살고 싶어 지더라고요. 만 40세, 육아 10년 차, 대학에서의 강의 11년 차, KTX 출퇴근러 10년 차. 한 번 정리하며 나누고 싶습니다.”





호기롭게 신청은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파문처럼 흔들리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몇 해 전 여름, 나는 방학을 틈타 ‘힐링보이스’라는 발성 수업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한 번, 총 8주 기간 동안 진행했다. 아이에게 밤마다 책을 더 안정된 목소리로 읽어주고 싶었고, 강의 녹음을 반복할수록 아파오는 목을 바로 잡고 싶었다. 무엇보다, 듣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저녁 시간을 쓴다는 건, 곧 누군가의 시간을 빌리는 일이었다. 나 대신 아이를 돌봐줄 사람. Y와 엄마였다. 나는 이유를 설명했고, 엄마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계셨다.

그러다 조용히 힘 있게 이렇게 말했다.

“결국 너를 위한 거 아니냐?”


그 순간, 내 안의 무엇인가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왜, 나는 나를 위한 거 하면 안 돼?!”


말을 내뱉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너무나 무례한 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내 안 깊숙이 있던 외침이었다.






엄마는 아이 H가 태어난 이후 ‘H 할머니’로 살고 있다. 일요일 밤이면 포항에서 올라와 한 주간의 돌봄을 시작한다. ‘신말랑’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드물게 불리는 이름이 되었다. 평일에는 ‘H 할머니’로 더 많이 불린다. 그런 엄마 앞에서, 나는 “나는 나를 위해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어쩌면 엄마의 헌신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너무도 이기적인 외침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H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나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또 안다. 감사한 마음이, 하고 싶은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혼자서 조용히 울었다. 엄마도, 나처럼 하고 싶은 게 많았을 것이다. 지금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도 종종, “H 돌보고 나면 이거하고 싶어!” 하시며 눈을 반짝이시니까.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줄곧 ‘누군가를 위한 나’,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의 나’로 살아왔다는 걸. 그래서 ‘나를 위한 나’는 항상 가장 나중에야 등장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말로 꺼내는 것조차 이기적인 일처럼 느껴졌다는 것을. 지금도 가끔은 그날의 말이 너무 날카롭지 않았나 후회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날의 나는 처음으로 나를 선택했다.



작고도 짧았던 그 여름의 기억.

그러나 내 삶에서 가장 선명한 여름의 시작이었다.


ChatGPT 가 생성한 이미지



그리고 지금, 또 한 번의 여름이 찾아왔다.

나는 다시 글을 쓴다.

엄마이기 이전에,

누구의 아내이기 이전에,

‘권예지’라는 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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