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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Apr 03. 2024

왜 제주도까지 와서 책을 보냐고요?

나만의 독립서점 투어.

얼마 전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가는 과정이 순탄친 않았다. 내일 당장 떠난다는 나를 아내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엔 설득했다. 충동적인 남편과 사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해본다.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시작부터 쉽지 않아서 그럴까 이번 여행은 기억에 남을 거 같다. 몇 년 만에 친구랑 가는 것이기도 했고 여행 스타일도 특이했다. 그 전이 일행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행지에서 같이 움직이며 같은 비행기를 타고 집에 오는 루트였다면 이번엔 달랐다.

 

야간근무를 해야 해서 친구들보다 하루 늦은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에 도착해서도 혼자서 저녁까지 놀다가 해가 저 물때쯤 친구들과 합류했다.      


이런 모든 걸 함께하지 않는 방식은 나에게 색다른 재미를 줬다. 지금 2박 3일 중에 가장 좋았던 날을 꼽으라면 혼자 다녔던 첫째 날이다. 


사실 호기롭게 여행을 간다고 아내에게 말했지만 거기 뭘 할지가 막막했다. 제주도를 몇 번 안 가봤다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를 가도 대부분 새로운 것이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에 벌써 제주도에 열 번 넘게 다녀온 터였다. 


갔던 곳은 또 가고 싶지 않았고 새로운 곳을 가자니 뭘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다녔으면 일정 고민이 덜했겠지만 혼자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선포한 뒤라 그때까지 해야 할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독립서점 투어였다. 대단한 건 아니다.  혹시나 독립서점이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짧게 소개하자면 동네 서점이다. 


그런데 사장님이 자신의 취향에 맞게 인문이면 인문 역사면 역사 여행이면 여행식으로 큐레이팅도 하고 인테리어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제주도에서도 독립서점 투어라는 일종의 컨셉 여행이 있는 걸로도 알고 있다.     

 

그래서 독립서점을 찍고서 거기서부터 움직이는 방식을 썼다.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전부터 독립서점 가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처음 가는 독립서점은 <나이롱 독서서점>이었다. 근처에 서너 군데 독립서점이 있었는데 비교적 제주시내에 있기도 했고 나이롱이라는 어감이 재밌었다.   


흔히 병원에 안 아픈데 누워있는 사람들을 나이롱이라고 하는데 그 모습이 연상돼서 재밌었다. 마치 책을 좋아하지 않는데 서점을 차린 사장님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난 그런 아이러니에서 오는 유쾌함을 사랑한다. 버스 탔지만 지나치고 다시 가는 해프닝을 겪고 독립서점 근처에 도착했다. 쉽게 찾을 순 없었다. 들어가는 문이 작았고 가게가 2층에 있어서 외부에서 일부로 찾아서 들어가지 않는 한 발견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내부도 어두컴컴한 편이었다. 사장님이 조용히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계셨는데, 그 모습이 풍경과 내심 잘 어울렸다. <80년 생들의 유서>라는 책을 한 권 사고서 사장님께 주변에 괜찮은 카페가 있는지 물었다. 책값엔 질문값도 포함되어 있다.    

  

사장님이 2~3곳을 추천해 주셨는데 기억에 남는 곳은 <뜬뜬>이라는 카페였다. 일단 커피가 맛있기로 유명하고 여기 사장님은 독립서점에 책을 내기도 하신 작가이기도 했다. 산 책을 들고 뜬뜬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골목이라서 아기자기하게 보는 재미가 있었다. 골목을 좋아하는 나는 가는 길 자체도 힐링이었다.    

  

<뜬뜬>이라는 카페도 예술이었다. 사장님이 작가란 사실을 이미 알고 가서 그런가 묘하게 멋져 보이는 면이 있었다. 실제로 단골분들에게 격의 없이 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매력이 넘친다란 생각을 했다.   

   

카페 내부에는 자리가 없어서 음료를 기다리는 사장님 앞 석에 앉아서 기다렸다. 마치 버스기사님 바로 옆자리에 앉은 느낌이었다. 사장님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은근슬쩍 지켜보면서 나도 구매한 책을 봤다. 


새로운 풍경 속에서 새로운 책을 사서 거기서 몰입하는 것은 나에게 지극한 행복감을 준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차피 몰입할 거라면 장소가 뭐가 중요하다 싶은데 실제로는 완전히 다르다.      

카페 뜬뜬 사장님 앞 좌석에서.

이상하게도 내가 대부분의 책을 읽는 집 앞 독서실에서는 이런 마음이 열리는 기분을 느끼기가 힘들다. 여하튼 내가 마음에 드신 건지 사장님의 배려로 대기석 테이블에서 계속 앉아 있게 됐다. 


커피는 손님이 많이 나와서 살짝 늦게 나왔는데 먹어보고 감탄했다.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탕약을 달이듯 한 잔 한 잔 소중하게 만들어주시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카페에서 나와서 옆에 <엘리트 문구사>에 가서 문구 구경을 하고 아내에게 줄 노트와 내 노트를 샀다. 이쯤 되니 이미 꽉 차는 기분이었다. 내 행복용량은 참 작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미 이 시점에서 지금 당장 집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연락해서 만나자고 했다. 원래는 더 늦게 만나려고 했는데 이미 혼자서 채울 수 있는 건 다 채운 듯 싶어서 이제는 만나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고 나 홀로 제주도 여행은 여기서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혼자 제주도 시내에서 반나절 보내며 한 독립서점 투어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독서모임에서 자신만의 여행법이 있냐는 질문에 독립서점 위주로 여행한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 이유로 독립서점에서 그 주인분께서 서정한 큐레이팅이 돼있는 서재를 보는 것도 좋고 거기서 산 책을 읽으면 훨씬 마음이 열리는 기분을 받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책을 읽지만 그런데 가서 읽는 것은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배는 차이가 난다.      


그리고 나중에 서재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볼 때마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온도 습도들이 떠오른다. 온라인 교보문고에서 산 책들에게는 느낄 수 없는 경험이다. 마치 책 자체가 여행지 책갈피가 되는 것이다. 

    

가끔 여행지에 가서 책을 보고 인스타에 올리는 걸 허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여행지에 가서 본인이 책을 사서 보면 마음이 열려 책이 더 잘 들어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우리 대부분 주변은 책을 읽을만한 환경이 많지 않은 곳에 살아 더 독서를 안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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