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행복하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를 보내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땐 성적 걱정과 대학교 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취직해서는 회사에 적응하느라 하루를 안온하게 보낸 기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제는 좀 편해졌다. 회사도 일한 지 사 년쯤 되어가니 일도 손에 익고 시간적 여유도 많아졌다.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여유가 생기니 새로운 것을 할 힘이 생긴다. 이런 기운에 힘입어 이번 연도에 새롭게 시작한 일들이 많다. 공교롭게도 연초 독서모임에서도 <결국에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이 선정도서였다.
이 책은 목표를 세우고 이루는 것에 대한 내용이 주 골조다. 이 책을 보고 독서모임 사람들과 함께 이번 연도에 할 계획들을 잔뜩 세우고 공유했다.
책 제목처럼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은 품지 않았다. 과거에도 이렇게 진중한 마음을 품고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현실로 지켜진 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뭐든지 가볍게 해야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가 적어둔 것을 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갖지 않았음에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들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이렇게 새롭게 시작한 세 가지 취미와 그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기타다. 과거부터 악기에 대한 로망은 늘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침대에 눈감고 누워 내 노래에 감동해서 우는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눈물을 찔끔 흘렸던 흑역사도 있다. 그 밖에도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인생에서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귀 따갑게 들었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취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기타를 샀었다. 좋은 물건을 사면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오래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덥석 오십만 원짜리 탑솔리드 기타를 샀다. 칠 년 전쯤인데도 오십만 원이었으면 당시 입문자에겐 제법 비싼 가격이었다. 여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실수를 했다. 독학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땐 나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 것 같다. 나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힘들어도 꾸준히 하는 성향이 있지만 반대로 막막한 것은 일도 참아내지 못하는 그런 성품의 소유자다. 이런 내 특성을 고려해 보면 당연히 레슨을 받아야 했는데 이때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역시나 내 열정은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었다. 하다가 손만 아프고 늘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지니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음악 관련 자료를 보고 뽕에 차서 하고 접고를 반복했다. 이런 일이 두세 번 반복되자 당근마켓에 기타를 팔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 귀찮음에 팔지 않았었는데 이런 선택이 나중에 기타를 다시 시작하는데 도움이 됐다. 다행이다. 아마 그때 팔았다면 기타 레슨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게 됐을 거다. 레슨을 받기 위해서 기타를 사야 하는 게 장벽으로 느껴져서다. 그랬다면 기타는 아직도 방 한구석에서 처량하게 혼자 놓여있었겠지.
이런 실패를 몇 번 겪고 나자 이번에는 전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1대 1 레슨을 받았다. 한 달에 십이만 원, 한 번 만나는데 삼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지만 만족도는 대단히 높다. 벌써 오 개월 째 받고 있다.
솔직한 마음으로 레슨 선생님이 백 프로 마음엔 들진 않는다. 올 때마다 저번에 어디 했는 지를 묻을 때 이런 마음이 커진다. 그럼에도 늘 칭찬해 주고 일주일 동안 집중할 수 있는 과제를 내준다는 점에서 나에게 맞다. 이 세상에 모두와 맞는 특별한 사람은 없다. 나에게 맞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하루 삼십 분이라는 적은 연습시간에도 시간이 쌓이니 실력이 는다. 할 수 있는 곡도 다섯 개 이상이 됐고 새로운 것도 매주 배우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배워서 익숙하게 만들고 배우는 과정 자체가 삶의 활력소가 된다. 가끔씩 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에 감동하는 것은 덤이다.
똑같은 연주인데도 매번 다른 느낌이다. 물론 옆에서 듣고 있는 아내는 지겹다고 말한다. 언젠가 내 손에서 이런 멜로디가 나오다니 하며 감동하는 순간을 맛보고 싶다. 앞에 관객이 있다면 더욱더 좋겠고.
두 번째는 일기다. 사실 일기는 전부터 써왔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필기구다. 예전에는 검은색 제스트림 3.0 펜으로 주로 썼었다. 그런데 지금은 만년필로 쓴다. 예전에 작은 누나가 라미 만년필을 생일 선물로 줬었다.
그 당시에는 만년필은 대형 계약을 할 때 서명하는 용도로만 생각해서 쓰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무심코 일기장에 만년필로 적어봤는데 그 필기감이 기막혔다. 사각사각 거리며 써지는 질감이 너무도 좋았다.
이런 이유로 요즘 일기를 거의 매일 쓰고 있다.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울분을 토하는 용도로만 썼는데 지금은 그냥 아무것이나 적는다. 행위 자체가 기분이 좋다. 한 자 한 자 흰 종이에 새겨나가는 만족감이 있다. 만년필로 쓰면 글은 쓰는 것이 아닌 조각하는 것이 된다.
사실 라미 만년필도 당근에 팔려고 했었다. 그런데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것이 이렇게 전화위복이 됐다. 이런 걸 보면 미루는 성격이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세 번째는 요가다. 바로 저번에 글에 썼듯이 요가를 시작했다. 한 달도 안 해보고 이렇게 적는 게 맞나 싶어 조심스럽긴 한데 지금까지는 대단히 만족스럽다.
내가 이렇게까지 뻣뻣했는지를 요가를 하며 깨닫고 있다. 이런 몸을 가지고 사십 대와 오십 대를 맞이할 뻔했다는 생각에 오싹하기도 하다.
내가 배우는 요가원에는 재활요가, 월요가 등 다양한 코스가 있는데 할 때마다 몸이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다른 운동과는 다르게 부상위험이 적은 것도 이런 만족감에 한 몫한다.
예를 들어 헬스는 한창 할 때는 좋은데 부상위험이 늘 존재한다. 한 번 이런 부상을 당하면 당분간은 못하기도 하고. 요가로 몸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나중에 헬스를 병행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요즘 새롭게 시작한 세 가지 취미 덕분에 바빠졌다. 심지어 게임도 잘 안 한다. 예전부터 게임을 끊는다고 본체를 본가에 두는 등 특단에 조치를 취해도 실패하곤 했는데 다른 재밌는 할 거리들이 많으니 굳이 손이 가지 않는다.
한 번 해볼까 싶을 때도 있는데 이 시간에 기타 멜로디를 한 번 연습하거나 만년필로 일기를 쓰는 게 내게 더 큰 만족감을 준다. 역시나 어떤 것을 끊기 위해서는 다른 할 거리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런 바쁨이 괴로움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전에 이렇게 할 게 많으면 언제 이것을 다할까 하며 막막하며 내 능력 부족에 괴로웠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떤 하나를 못해도 괴롭지가 않다. 뭔가 할 만한 게 늘 있다는 게 너무나도 행복하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서 그렇다. 타의로 하냐 자의로 하냐가 이렇게 중요하다.
침대에 누워서 옛날 유재석처럼 내일 뭐 하지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뭐 할까를 고민한다. 행복한 요즘이다.
※ 이 글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나 직위들은 작가에 의하여 모두 임의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림 출처 : Ai Copi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