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요가 탐방기.
초등학교 때 기억나는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는 태권도장에서 있었다. 운동을 배우는 곳이라면 본 운동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 운동으로 스트레칭을 한다. 태권도장이라면 품세나 발차기 전에 국민체조 같은 스트레칭을 하는 식이다.
이렇게 태권도장에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주변 애들은 이마가 다리에 닿거나 다리를 쭉쭉 찢었다. 다리 각도가 180도가 되는 것은 흔했고 그보다 더 높은 각도를 만드는 애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내 다리는 120도 이상을 넘어가지 못했다.
비교되는 마음에 더 벌리려고 용써봤지만 고통만 커졌다. 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남들에 비해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진 않았고 빠르게 잊혔다. 우리나라에서 유연성을 써먹을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유연성은 기껏해야 앉은 상태에서 앞 팔을 쭉 뻗어 측정 자를 내 몸에서 최대한 멀리 보내는 중고등학교 때 체육수행평가에 쓰였다. 학창 시절 유연성은 자신을 증명하는 중요한 지표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때는 유연성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유연성을 잘 기를 수 있는 시기에는 정작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다니. 모든 소중한 것들이 다 그런 것 같다. 우리가 건강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는 시기는 어딘가가 하나씩 아파올 때다. 인간은 상실에서 소중함을 느끼는 슬픈 동물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건 대학교에서 입학해서도 몇 년은 지나서였다. 이 년간 군대 복무기간을 마치고 학교에 와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MMA를 시작했다. MMA는 쉽게 말하면 킥복싱과 주짓수를 섞은 운동이다. 주먹이나 발을 쓸 수 있고 상대를 엎어뜨려 관절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전에는 조용하고 정적이었던 스타일이었던 나는 내 성향에 반대인 것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격렬한 이 운동을 선택했다. 아마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떤 책에서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취미를 해보라는 내용을 보고 그랬던 것 같다.
당시 자취하던 내대지마을 근처에 있는 MMA격투기 학원에 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안 84도 여기에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운동을 하다 보니 잊고 지냈던 태권도장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다는 부끄러움이 더 컸다면 이번엔 동작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더 컸다. 이렇게 안 되는 자세를 억지로 하려다 보니 동작은 동작대로 안 나오고 손목이나 무릎이 아프거나 고관절 통증이 있는 등 부상이 잦았다.
운동을 1~2개월 열심히 하다가 아파서 며칠을 쉬고 나가고 하는 일이 반복됐다. 부상의 강도는 점점 강해졌고 쉬는 날은 점점 많아졌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자 운동을 그만두게 됐다. 이런 통증 때문에 나중엔 한의원에 침을 맞으려 다녔다.
그때 선생님이 침을 놓던 도중 내 몸이 긴장이 심해서 근육이 지나치게 수축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이 이야기가 리트머스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내부로 쑥 빨려 들어왔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뻔한 얘기가 천둥처럼 마음에 들어올 때 말이다.
아마 막연하게 생각했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신뢰 있는 누군가가 말해줘서 그런 것 같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몸을 이완해 주는 어떤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 게. 이런 내게 이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운동은 요가였다.
하지만 이때는 조건이 여의치 않았다. 주변에 요가를 배울만한 장소도 무엇보다 돈 없는 대학생인지라 이런 소망을 가만히 가슴에만 품고 있었다. 그러다 직장에 다니고 이제 회사에도 적응이 되었을 무렵 이런 생각이 가슴을 비집고 나왔다.
그럼에도 요가를 다니게 된 건 여러 달이 지난 후였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요가원으로 향하는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요가를 배우는데 돈이 든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한 시간에 이만 원은 했다. 열 명 정도 단체로 하는 것이니 싼 가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운동을 해놓는 게 나중에 싸게 먹힌다는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저자인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님 말이 위 말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줬다.
이런 생각을 극복하고 나니 요가는 통상 여자분들이 많이 한다는 두 번째 생각이 내 발길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내 친구인 D가 사실은 여자가 헬스를 해야 하고 남자가 요가를 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근력이 부족한 여자는 헬스로 그 부분을 채우고 상대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지는 남자는 요가로 이 점을 보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주변에 있는 좋은 스승들 덕분에 간신히 생각의 감옥을 탈출하고 요가원에 전화를 걸었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응대에 자신감이 생겨서 이틀 뒤에 나가기로 했다. 나름 걱정이었던 옷을 뭘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그냥 반바지 입으면 된다고 해서 고민이 해결됐다.
긴장반 설렘 반으로 요가원에 갔다.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사람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 같다. 이래서 나이가 들어도 학습해야 하나 싶다. 나이 먹을수록 가슴 뛰는 일이 적어진다. 수업은 열한 명이 들었는데 나 혼자 남자였다. 머리에 위기 사이렌이 울렸다. 예전에 대학교 때 무용과 수강신청에 들어가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덩그러니 혼자 수업을 들었던 때가 생각났다.
수많은 포식자들 속에 둘러싸여 긴장했던 그때였다. 수군거리며 웃는 이야기들이 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는 이런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수강을 취소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용기를 냈다.
수업은 12시에 시작이었는데 11시 45분부터 나머지 15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다들 친한 분위기는 아니라 각자 핸드폰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도 뻘쭘함을 감추기 위해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스트레칭하는 척을 했다.
정각쯤 선생님이 들어오고 수업은 시작됐다. 난도가 높지 않은 재활 요가였음에도 워낙 뻣뻣한 몸을 가지고 있는지라 동작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단체로 해서 그런가 호흡에 신경 써서 그런지 평소보다는 몸이 훨씬 부드러웠다. 그럼에도 반에서 가장 뻣뻣했다.
선생님 목소리에 맞춰 정신없이 동작을 하다 보니 벌써 끝나 있었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금방 갔다. 방안에는 시계도 없어서 시간이 몇 신지도 알 수 없었다. 좋은 카지노가 이런 건가.
수업을 들은 후에 들었던 생각은 모든 운동을 하기 전에 요가부터 배우면 좋을 것 같다는 점이다. 혹은 근력운동과 병행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살면서 알게 모르게 습득하거나 배웠던 스트레칭을 종합한 느낌이었다.
이런 요가를 통해 호흡을 하는 방법을 배워 몸을 부드럽게 해서 보다 강도 높은 운동을 배우면 훨씬 더 덜 다치고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상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운동의 가장 큰 적은 부상이니깐.
결론적으로 첫 요가에 대한 느낌은 아주 좋았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하루라도 빨리 시작할 걸 그랬다.
※ 이 글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나 직위들은 작가에 의하여 모두 임의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림 출처 : Ai Copi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