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잘한다는 것에 대해서 늘 동경해 왔다. 나 스스로 그렇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내가 갖지 못한 탁월함을 가진 사람이 크게 보였다. 내 동경의 대상은 시간에 따라 바뀌어 갔다. 학창 시절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우러러봤고 회사에 다니는 지금은 일 잘하는 사람이 좋아 보인다.
최근에 동기 Y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친구는 회사 내에서 일 잘하기로 평판이 높았다. 하지만 그와 육 개월 정도 같이 일하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그와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남들이 상상도 못 하는 생각을 하거나 일에 대해 접근할 때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서 해결책을 찾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남들보다도 그 문제에 대해 쏟는 시간이 많았다.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다양하게 조사해 보고 관련 법등을 알아봤다. 요컨대 하나의 일도 제대로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태도였다. 나는 이것을 최근에 겪었던 일에서 제대로 느꼈다.
우리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시설물에 누수에 대해서 점검하고 조치하는 게 일이다. 쉽게 말하면 물새는 걸 잡는 거다. 하지만 모든 물을 잡지는 않는다. 여기서 ‘어디서’ 세는지가 중요해진다. 이에 따라 담당부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이 샌다고 신고를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어디서 새냐는 것이다. 이건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내용일 것 같다.
벽에 타일 같은 외장재가 갈라져 물이 새는 거라면 건축 부서 일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깊은 골조에서 물이 샌다면 토목 일이다. 만약 수도 배관에서 새면 기계 부서가 전기 배관이라면 전기 부서에서 하는 식이다.
요즘같이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에는 이런 누수 전화를 종종 받는다. 이번에도 전화가 왔는데 조금 특이하게 전기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보통은 역무실에서 물이 샌다고 신고가 들어오는데 다른 곳에서 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내용을 들어보니 전기 배관에서 물이 새는데 그게 우리 시설물에서부터 누수가 시작되는 것 같으니 와서 같이 봐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경우는 보통 자신들이 하기 싫어서 다른 부서로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가보긴 해야 한다. 나중에 안 갔을 때 문제가 터지면 현장에 가보지 않은 우리는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Y와 내가 현장에 출동했다.
실제로 현장에 와서 보니 전기 배관에서 물이 새고 있었고 근처에 있는 우리 공조실에 물이 차 있긴 했다. 하지만 여기에 고인 물이 그쪽으로 흘러가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도면도 찾아봤는데 여기서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이럴 땐 공조실에 차 있던 물을 차수시켜서 정말 그쪽으로 물이 흐르는지 확인하면 된다. 만약 누수되는 물량이 늘어난다면 그쪽이 원인일 확률이 아주 높은 것이다.
여기서 나는 직접적으로 새는 부위는 전기 부서 관할이니 우리가 굳이 더 이상 관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고여 있는 물을 아마 굳이 수고스러운 일을 하냐는 귀찮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기 Y는 달랐다. 누수부위 근처에 있는 공조실이나 기능실들을 돌아다니면서 누수 부위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전기 부서에서 점검을 요청한 곳에도 가보려고 했다. 하지만 키가 건축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들어가진 못했다.
일단 이런 사항을 팀장께 중간 보고 하니 팀장은 우리 일이 아니니 손대지 말라는 입장이었다. 어찌 됐든 직접적으로 물이 새는 부위는 전기 부서 관할이었다. 만약 이런 일에 관여하게 되면 다른 팀에서 지속적으로 우리 팀으로 호출이 올 테고 인력이 과투입된다는 논리였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기에 우리는 여기서 접었다. 나는 속으로 ‘아싸’했는데 동기 Y는 여기에 대해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끝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다. 난 여기서 느꼈다. 나와 상반된 태도에 그와 나의 차이가 이것이구나를 말이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누수를 잡는다는 목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누수를 잡기 위해서 필요한 행동들을 했다. 반면 나는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척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정도면 충분히 우리도 할 만큼 했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한 것이다.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고등학교 때 수업을 들을 때 앞자리에 늘 앉았고 수업도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했다. 겉으로 볼 땐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전혀 달랐다. 나는 그냥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수업의 내용을 이해하기보다는 선생님이랑 아이컨택과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 넌 열심히 하는데 왜 성적이 안 오르냐는 말에 우쭐하기도 했다. 당연하다. 지식 습득보다는 커뮤니케이션에 힘썼으니깐.
이처럼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그 사람들의 지능 유무라기보다는 태도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일 좀 한다는 사람들은 책임 고하를 떠나서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서 해결해 보겠다는 마인드를 가질 필요성이 있음을 느낀다. 그래야만 어떤 문제에 대해 훨씬 잘 대응할 수 있고 이 사건을 통해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 이 글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나 직위들은 작가에 의하여 모두 임의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림 출처 : Ai Copi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