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불안>을 읽고.
십 년 전 이십 대 초반에 썼던 일기를 다시 찾아볼 때가 있다. 그때 내가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살았는지 궁금해서다. 이렇게 예전에 적은 글들은 보면 하나같이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불안'이다. 종류는 다양하다. 이때부터 고관절이 안 좋았어서 만성통증에 대한 것도 있고 미래에 어떤 것을 먹고살아야 할지에 대한 불확실함에 대한 것도 있다.
지금은 이때보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덜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진 않다. 그래서 이 번책인 알랭드 보통의 <불안>을 다시 읽게 됐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 년 전에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되어 이미 한 번 읽었던 책이다.
오래전에 좋았던 책이 다 그렇듯이 이 책도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읽었을 때 좋았던 감정이 남아있어서 언제가 다시 한번 읽어보아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했던 책이었다. 작가의 전작이었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인상 깊게 보기도 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닌지 십 주년 기념판으로 다시 발행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철학자인 알랭드 보통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가 많다. 아마 불안, 사랑, 뉴스 등등 이런 소재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독 더 와닿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안이라는 소재의 보편성 때문에 이 책은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유튜브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식욕을 다루고 있는 먹방이 인기가 많다. 누구나 현대에 살면서 느끼는 불안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느껴진다. 물론 여기에 알랭드 보통의 특징인 어려운 것을 가독성이 높게 만들어주는 능력까지 합치니 히트한 책이 된 것 같다.
이 책은 현대를 사는 우리가 왜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현재를 알려면 과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과거랑 지금이 뭐가 다른지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 원래 존재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준다. 예를 우리는 지위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데 이런 지위를 습득하는 조건은 시간에 따라 모두 달라진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호랑이 옆구리에 창을 꽂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가 걱정하고 어떤 곳에서는 신에 대한 헌신을 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며 요즘엔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한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선 평범이라는 허상에 빠져있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 같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이란 기준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사료들을 동원함에도 작가가 편집을 잘해서 알기 쉽게 전달해 준다. 이런 점이 독자로 하여금 본인이 똑똑해진 느낌을 받게 해 준다. 또한 중간중간 작가가 하는 비유들이 적절해서 전달력이 증폭되는 경험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 나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문장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책에서 내가 인상 깊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38p 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보 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역사는 남들의 경멸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에게도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텅 빈 선반에 엄청난 것들을 전시하려 했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134p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어떤 동지애가 이룩된다 해도, 노동자가 어떤 선의를 보여주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에 헌신한다 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 지위가 자신의 성과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는 것, 따라서 자신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감정적인 수준에서 변함없이 갈망하는 바와는 달리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늘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227p 높은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계속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지위에 대한 불안을 촉발하는 요인들도 바뀌어간다. 어떤 집단에서는 짐승의 옆구리에 창을 꽂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전투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신에게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자본 시장에서 이윤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한다.
306p 사회적인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더 커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이 모욕적이고, 천박하고, 초라하고, 추하다고 생각할수록, 그 삶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욕망도 강해진다. 공동체가 부패할수록, 개인적 성취의 유혹도 강해진다.
내가 겪는 이 불안이라는 감정이 구조적으로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