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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인스타를 보고 펑펑 울었다.

기록은 시간의 저항이다.

by 도냥이

일주일 전, HJ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만든 영상을 보다가 펑펑 울고 말았다. 영상은 아내의 생일날 찍은 것이었다. 그날 우리는 서울의 한 양식당에서 인당 9만 원이 넘는 스테이크 코스를 먹었다. COS 매장에서 얼룩덜룩한 검은 티셔츠를 87,000원이나 주고 샀고, 가로수길의 애플 매장을 구경했다. 그리고 근처 한강공원에 들러 사진을 찍었다. 그 모든 장면들이 라디오 헤드의 No Surprises 위로 차례차례 흘러갔다.


그 영상의 초반, 스테이크가 지글지글 익는 소리부터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평범한 소리일 뿐인데 어쩐지 감정이 요동쳤다. 아내가 횡단보도를 건너며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장면에 이르자, 마치 내게 주어진 시간이 거기서 멈춘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영화『트루먼쇼』에서 주인공이 관객들에게 그동안 감사했다며 인사를 하고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처럼. 슬픔이 물밀듯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당황한 아내는 내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의 의도는 단순했다. "나, 생일날 이렇게 행복하게 보냈어요'라는 작은 기록. 하지만 모든 책이 독자에 의해 오독되듯, 이 영상을 본 나도 그랬다. 나는 그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았고, 마지막 횡단보도 장면에 이를 때마다 여지없이 눈물을 흘렸다.


왜였을까. 영상 속 우리는 너무나 천진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내게는 이상하게 슬프게 다가왔다. 처음엔 배경 음악 때문인가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영상 안의 우리가 너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빛난다는 건, 그 빛이 언젠가 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그 찬란한 순간은 결국 지나가고, 늙고 쇠해 초라해지는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피부에 와닿았다.


허무했다.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도 결국은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 거 아닌가.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사람이든 물건이든, 순간이든 감정이든—결국엔 모두 무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감정이 조금 가라앉자, 문득 이런 순간들을 어떻게든 오래 붙잡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들 수는 없을까?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살다 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다. 영생을 꿈꾸며 기술을 개발하는 외국의 재벌들처럼 사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고, 영화 『어바웃타임』속 주인공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겪는 것들을 잘 기록하는 일밖에 없다고.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시간이 지난 뒤 되새기고 되묻는 그 과정에서야 비로소, 그 경험은 의미를 갖게 된다.


나는 원래도 저녁마다 라미 만년필에 파란 잉크를 넣어 일기를 써왔다. 가끔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간헐적이었다. 이제는 좀 더 의식적으로, 더 꾸준하게 쓰려고 한다. 마치 RPG 게임에서 세이브포인트에 중간중간 저장하듯, 내 삶도 그렇게 저장해두고 싶다.


이렇게 기록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하루가 그저 흘러가기만 했고, 그 하루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 조차 모른 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밤이 되면 막연한 공허함이 밀려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하루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것만으로도 큰 안정감이 생긴다. 마치 부유하던 내가 비로소 이 땅에 발을 디딘 느낌이다.


우리는 모두 결국 흙으로 돌아갈 운명이지만, 그 흙 속에 어떤 삶을 묻었는지는 남길 수 있다. 나는 내 하루하루를 잘 저장하고 싶다. 언젠간 그날들을 다시 꺼내 보았을 때, 지금의 내가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넸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한때 이런 사람도 이 세상을 살아갔구나'라는 작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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