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내가 임신했다.

부모가 되는 날, 준비는 없었다.

by 도냥이

점심을 먹고 거실에 쉬고 있었다. 주말의 조용함과 평온함을 즐기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던 하루였다.


아내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 전까지는. "여보 두 줄이야"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줄? 무슨 말이지?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내 표정을 본 그녀가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임신 테스트기 했는데, 두 줄 나왔어". 그녀가 단어를 내뱉는 입술 모양이 마치 유튜브 0.5배속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이내 글자들이 하나의 문장이 되어 맥락을 갖추고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내용이 이해되면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행동해 보지만, 호흡은 거칠어지고 목소리는 빨라졌다.


이런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한 호흡 가다듬고 간신히 말했다. "여보 병원 가봐야겠다." 임신을 알리는 아내에게 하기에는 다소 딱딱하고 어색한 말투였다.


훗날 임신 관련 책이나 유튜브에서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아내에게 진심으로 축하해 주라는 내용을 접했을 때, 씁쓸했던 건 내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내 감정을 잘 알지 못했다. 아내의 말이 갑작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당황했던 내가 우습다.


뜻밖의 일은 아니었다. 삼십 초반 직장인인 우리는 임신을 계획했고, 육 개월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병원까지 가서 날을 받아온 상태였다. 아이가 생길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노력까지 한 상태였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은 내게 조금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도 누군가의 아빠가 된다니. 아버지는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는데, 그는 어떻게 그렇게 담담했을까? 어떻게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었던 걸까?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마치 상자를 열고서 온갖 종류의 재앙과 불행이 빠져나오는 걸 보는 판도라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때 문득 깨달았다. 부모가 된다는 건 준비해서 되는 게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맞이하게 되는 일이라는 걸. 곧이어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내게는 생경한 감정이었다. 책임감이라는 건 내 인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혼도 책임감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서 한 것이었다. 성인 대 성인,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였다.


부모님과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삼 남매 중 막내였던 나는 언제나 자유로웠다. 일할 때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일해왔기에, 막중한 책임감은 낯설었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아이는 스스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가 선택했고 우리가 낳기로 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아이를 무사히 성인까지 키워야 할 책임이 있다.


며칠 뒤, 회사에 야간에 선로를 걷다가 차장님께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아이 소식을 들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했다고, 기쁨보다는 책임감이 먼저 들었다고. 일종의 고해성사였다.


차장님은 나를 격려해 주셨다.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 채 부모가 되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감정이 드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면서 본인도 처음엔 불안해서 이 시기를 잘 즐기지 못한 게 아쉽다고 하셨다.


나는 물었다. "그럼 저는 이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차장님은 웃으며 말했다. "도냥씨는 너무 뭘 해주려 하지 말고, 옆에서 해달라는 것만 해줘요. 너무 잘해주려다 지쳐버리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게 돼요."


그 말이 깊이 와닿았다. 연애 시절 아내와 다퉜던 이유는 결국 그 때문이었다. 뭔가를 더 잘해주려다가 스트레스를 받고, 기대만큼 되지 않으면 실망해서 싸움으로 이어졌었다.


사람은 뭘 안 해주려고 해서 싸우기보단, 뭔가를 해주려는 욕심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많다. 그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지금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쉽진 않겠지만, 이제 아이가 커가는 시간을 아내와 함께 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같이 병원에 가고,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변화하는 아내의 곁을 지키는 일.


그것이 내가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 chat gpt5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왜 아내는 내가 찍은 사진에 늘 불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