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사의 멸종>을 읽고.
2025년 10월 11일에 진행한 독서모임을 바탕으로, S회원님이 발제문을 주셨고 그에 대한 답변을 이어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적어보았습니다. 발제문 전문은 아래에 첨부하였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어떤 동사의 멸종』은 한승태 작가님이 실제로 몸으로 겪은 노동의 현장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이론이 아니라 체험에서 비롯된 문장들은 생생했고, 그 덕분에 글이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머리로 쓴 글이 아닌 몸에서 우러나온 글은 전달력이 남다릅니다. 그럼에도 한승태 작가님의 전작들이 날 것의 느낌이 더 강했다면 이번 책은 글이 더 유려합니다. 이 덕분에 좀 더 부담스럽지 않게 글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각 직업의 고됨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이들이 점점 AI에 의해 대체되어 간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직업 외에도 이 책에서 나오는 직업들에 대해서 볼드체로 표시하고 밑에 사라질 확률을 적어주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들 대다수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마치 망해가는 나라의 신하가 된 듯한, 시대의 변화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아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 등장한 여러 직업들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콜센터 상담사 편에서는 상담사에게 직접 폭언을 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척하며 폭언을 퍼붓는 고객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교묘하게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지를 실감했습니다.
특히 “상담사의 프로페셔널함은 고객을 대할 때 관심과 정성을 쏟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의 요구와 필요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는 문장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건 단지 상담사만이 아니라, 대다수 직장인들이 상사를 대할 때 보이는 태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하차 노동자 편에서는 몸을 자주 쓰는 사람들 중에 우울증이 없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몸을 쓰는 일이 힘들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게 해주는 면도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식당 조리 파트에서는 사수를 잘 못 만나면 인생 자체가 틀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20대 시절 그런 상사를 만났다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을 것 같았습니다. 요즘 20대들이 많이 찾는 최저시급 일자리가 등록금이라는 거대한 빚을 갚기 위해 굴러간다는 현실이 씁쓸했고, 식권을 나눠줄 때마다 작은 권력을 쥐는 반장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이 치사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솔직히 나라도 그 옆에 있었다면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했을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작가처럼 저 역시 예전에 했던 일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공항 면세품 인도원으로 일할 때였는데, 저는 워커힐 소속이었고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옆에는 롯데면세점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는데 , 그들 머리 위에는 몇 개의 상품을 인도했는지 숫자가 뜨는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고객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서로 그 숫자를 확인할 수 있어서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느껴졌고, 인간적인 관계라기보다는 기계적인 효율로만 평가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꽤 비인간적인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관이라는 말을 들으면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굳이 말하자면 저는 ‘담당자는 관리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리자는 여러 분야를 포괄적으로 다뤄야 하니깐, 그만큼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 깊게 알고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주는 사람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알아야 무리한 지시를 하더라도, 그 분야를 잘 알면 방어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어찌 되든 자기만의 기준과 판단을 가지고 있어야 상사도 그것을 바탕으로 더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요즘은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실제로 회사에서 ChatGPT를 자주 사용하는데, 내가 쓴 글보다 더 매끄럽고 통찰력 있게 문장을 뽑아낼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 브런치에 글을 쓸 때도 ChatGPT에게 첨삭을 부탁하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통찰을 건네줄 때가 많아 현타가 오곤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한동안 그런 생각 때문에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책으로는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을 읽어보려 한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구명조끼’ 같은 통찰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1. 책에 대한 느낌과 총평
2. 이 책에 나온 직업들에 대해 각 직업별로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3. 작가처럼 본인이 거쳐간 직업들 중 이야기하고 싶은 직업이 있다면?
4. 본인만의 독특한 직업 관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5. 사람이 하는 일을 인공지능이나 기계가 대체할 미래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나요?